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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 오륜기와 닮았나요

중앙일보 2018.02.23 00:31 종합 23면 지면보기
견학온 학생들에게 문경주조 내부를 안내하는 홍승희 대표. [사진 문경주조]

견학온 학생들에게 문경주조 내부를 안내하는 홍승희 대표. [사진 문경주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9일. 각국 고위급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만찬에서 샴페인잔에 선홍빛 술이 채워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은 이 술로 건배를 하며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했다.
 

경북 문경주조 홍승희 대표
올림픽 개막식 만찬주 ‘오희’ 제조

건배주로 쓰인 술은 경북 문경시 특산물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막걸리 ‘오희’였다. ‘다섯가지 맛의 즐거움’이란 뜻의 오희는 전통 막걸리보다 투명하고 탄산 맛이 강한 발포주다. 맛이 달고 상큼해 외국인 입맛에도 잘 맞다.
 
오희는 문경시 동로면 산골 깊숙이 자리한 양조장 ‘문경주조’에서 만들어졌다. 문경시청에서도 차를 타고 5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일교차가 크고 사계절 금천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 때문에 오미자의 품질은 물론 술을 빚는 데도 최적화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홍승희(60) 대표는 개막만찬 이후 10여 일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엄청 기분 좋았죠. 지인으로부터 만찬주 선정 공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 없이 오희 샘플을 보냈는데 전국 250여 종의 술을 뚫고 덜컥 선정됐다니까요.” 오희는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만찬 건배주로 뽑혔다.
 
홍 대표는 “오미자의 붉은 빛깔이 보기에 좋고 무엇보다 오미자의 속뜻이 올림픽 오륜기를 닮아 오희가 만찬에 오른 것 같다”고 추측했다. 오미자(五味子)는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껍질은 시고 살은 달고 씨는 맵고 쓰며 전체적으로는 짠맛이 난다.
 
지난 9일 올림픽 개막 만찬 참석자들이 건배하는 모습. 왼쪽부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9일 올림픽 개막 만찬 참석자들이 건배하는 모습. 왼쪽부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오희가 만찬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문경주조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평소보다 10배가 넘는 주문이 쏟아져서다. 오희와 함께 생산되는 문경 오미자 생막걸리, 문희(햇찹쌀 수제 전통주), 맑은 문희주(청주) 등도 덩달아 판매량이 늘었다.
 
홍 대표는 “막걸리는 흔히 ‘농주’ ‘배고플 때 먹는 술’이란 인식이 강한데 그걸 깨고 싶었다. 젊은층이 많이 먹는 와인이나 맥주, 탄산이 들어간 소주 등을 참고해 청년들도 즐겨찾는 막걸리를 개발하려고 애쓰다 보니 정성이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을 술과 함께 했다. 오빠가 강원도 횡성군에서 양조장을 운영해 어릴 때부터 술과 친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면서 홀짝홀짝 마시다 주전자 바닥이 드러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 주량으로는 젊은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다. 30대에 오빠가 만든 막걸리를 판매하며 주류 유통업에 뛰어들었고 2008년부턴 직접 막걸리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엔 일반 막걸리와 전통주 판매에 주력했다.
 
개막식 만찬에 건배주가 된 ‘오희’. [사진 문경주조]

개막식 만찬에 건배주가 된 ‘오희’. [사진 문경주조]

세월이 흐르면서 홍 대표는 ‘특별한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전한 것이 오미자 생막걸리. 쉬울 줄 알았던 오미자 생막걸리 개발은 예상하지 못한 장벽을 만나게 됐다. 약재나 과일을 사용하면 살균작업을 거친 막걸리로만 판매가 가능하다는 주세법 때문이었다.
 
홍 대표는 “살균을 하면 막걸리 속 효모를 다 죽인다는 말인데 이건 막걸리라고 볼 수 없다”며 “담당 부서인 국세청 기술연구소에 찾아가 따지고 설득하고 싸우기를 반복해 결국 주세법 개정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이후 홍 대표는 2011년 전국 최초로 오미자 생막걸리를 개발하고 특허도 냈다. 지금은 유자나 무화과처럼 과실이 들어간 생막걸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아가 홍 대표는 황토방 발효실을 지어 전통 방식의 수제 막걸리 ‘문희’도 만들었다. 문경의 옛 이름인 ‘문희’에서 이름을 딴 이 술은 황토방에서 100일간 발효해 만든다. 인공 감미료를 쓰지 않고 유기농 햇찹쌀과 전통누룩, 천연 암반수로 빚는다. 문희를 2년간 숙성시키면 침전물이 바닥에 가라앉아 ‘맑은 문희주’가 된다.
 
홍 대표는 두 아들을 데리고 문경주조의 고집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는 “제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원재료가 좋지 않으면 안 된다”며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술은 ‘작품’이다. 대를 이어 좋은 작품의 맥을 이어나가 고객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경=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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