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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직격 인터뷰]"페미니즘 대통령 말만 말고 文, 탁현민부터 내보내야"

중앙일보 2018.02.23 00:14 종합 27면 지면보기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
장명선 교수는 ’검찰 내 성희롱 사건이나 문단과 연극계의 성폭력은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원인“이라며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장명선 교수는 ’검찰 내 성희롱 사건이나 문단과 연극계의 성폭력은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원인“이라며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진주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 26일 검찰 내부 전산망인 이프로스에 2010년 벌어진 성희롱 피해사실을 폭로하면서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검찰이라는 막강한 권력기관에서 불붙기 시작한 한국판 미투운동은 원로시인과 연출가 이윤택 등 문화권력으로 번지며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서 검사 사건의 가해자가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알려지자 발 빠르게 비난에 나섰던 정치권과 유명 지식인들은 이후 진보 진영과 가까운 인물을 향한 폭로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고 있다”며 “소위 운동권 좌파세력이란 사람들이 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이 왜 이번에는 크게 확산됐을까. 명백한 성폭력을 놓고서도 남녀간 진영간 득실만 따지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성희롱 2차 피해 구제방안 등을 연구해온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장명선 교수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페미니즘 대통령’ 구호로 그쳐
경호원 성 추문 덮은 것도 아쉬워
장관 등 침묵하는 고위직은 문제
이제라도 국정기조 바꿔야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 반성하고
공소시효 연장도 검토해야 할 때
늑장대응 여성단체 초심 잃은 탓
정부 지원금 받으니 할 말 못 해


 
서지현 검사가 촉발한 미투운동이 거세게 번지고 있다. 2년 전 문단에서 비슷한 고발이 나왔을 때와 다르다. 왜일까.
“우선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해에 이미 페미니즘 이슈가 크게 떠오르지 않았나. 대통령 스스로 페미니즘 대통령이라고 할 만큼. 하지만 무엇보다 ‘현직 검사’가 ‘TV’ 뉴스 생방송에 출연해 검찰 조직 내부의 문제를 고발했다는 점이 가장 컸다. 현직 검사가 폭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스스로도 8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런 어려운 일을 라디오도 아니고 얼굴을 내밀고 공개적으로 한 게 반향이 컸다.”
 
미투운동이 계속 확산할까.
“반반이다. ‘나도 당했다’로 이어지는 미투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피해자─가해자 구도에만 주목하면 더 이상 확산이 어려울 수도 있다. 가해자 몇 명 처벌하고 끝나선 안 된다.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 남자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미 퍼스트, 더 나아가 성평등 사회운동으로 번져야 한다. 아니면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동안 시끄럽다가 북핵 등 다른 중요사안이 터지면 금세 묻혀버릴 테니까. 이참에 시스템화하고 정책화하고 모니터링 해야 한다. 과거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관련 부처에서 대책 마련한다고 부산 떨다가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도 그게 염려된다. 미투운동을 촉발한 성범죄는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없어진다. 그러려면 여자든 남자든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얘기다. 단 피해자에게 더 밝히라고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미투운동 확산 와중에도 말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오죽하면 그럴까.”
 
이윤택 관련 폭로 내용이 충격적이다. 그런데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처벌이 어렵다.
“현행법으로 처벌 못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미진한 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정비해야 한다. 국회가 안 나서면 정부가 정부입법을 선제적으로 하면 된다. 무엇보다 사법부가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와 입법부·사법부 모두 제 역할을 못 했다. 사실 이미 관련 규정 있다. 1994년 성폭력방지 특별법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탓이다. 1988년 강간범 혀를 잘랐다가 과잉 방어로 유죄판결 받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름만으로’ (※공교롭게도 이윤택이 각본을 썼다)에 주연배우 원미경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법정에 안 섰을 것’이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찬가지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똑같은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라서 그렇다. 가해자─피해자를 넘어 남녀 모두가 그동안 입 다물고 있었던 것도 공범이라고 생각하고 나서야 한다.”
 
공범 죄의식은커녕 피해자를 손가락질하고 꽃뱀 프레임으로 엮는 게 다반사다. 2차 피해가 고발도 어렵게 만든다.
“피해자가 고발하면 오히려 조직 내 왕따가 되어 사표 쓰고 나가야 한다. 피해사실에 대한 팩트 확인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가한다. 서 검사도 폭로하자마자 바로 2차 피해를 당하지 않았나. 이를 막기 위해 2017년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했지만 법이 있다고 전부 막을 순 없다. 이젠 정말 사법부가 똑바로 해야 한다. 피해자를 향한 무고죄나 명예훼손죄 등을 성인지적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 또 엄벌주의가 만능은 아니지만 이젠 위계에 따른 성범죄는 엄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몇 건만 엄벌해도 분위기가 바뀔 거다. 사법기관이 반성해야 한다. 검찰·법원이야말로 남성중심적인 권력기관 아닌가.”
 
여성 판검사가 느는데도 왜 사법부는 여전한가.
“여전히 여성의 대표성이 너무 낮다. 유럽연합 대사 인터뷰를 본 적 있다. 12년간 모신 상사가 전부 여자였는데 한국 부임 후 6개월 동안 만난 한국인 모두가 남성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검찰·법원은 그나마 30~40% 인데 고위직으로 가면 점점 적어지는 가파른 피라미드다. 내 목줄 쥔 게 모두 남성이라면 말을 할 수가 없다.”
 
피해자가 두려움 이겨내고 고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공소시효 연장이나 폐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더 연구는 필요하겠지만 성폭력이 남녀의 불균형한 권력관계 구조 속에서 주로 일어나고 그 수준이 심각한 만큼 공소시효 없애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살인죄는 없애지 않았나. 성평등사회로 가는 길에 도움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다. 하위법보다 이번 개헌 논의에서 다뤄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헌법에 ‘실질적 성평등’이라는 문구를 넣고 국가운영기조에도 반드시 넣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스웨덴 등 성평등 선진국들도 다 그렇게 한다. 성평등 사회가 되면 GDP가 올라간다는 게 정설이다. 남녀를 떠나 모두가 더 편해진다. 안 할 이유가 뭔가.”
 
미투운동이 번진다고 갑자기 사람들이 각성하진 않는다. 갑자기 헌법에 조항을 넣을 리도 만무하고. 어떤 동력이 필요할까.
“대통령만 바라보고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움직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반대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대통령이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 점에서 실망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 100대 과제에 들긴 했으나 약하다. 올 초 연두 기자회견에선 언급도 없었다. 이젠 대통령이 이 문제를 내걸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라도. 그런데 현실은 페미니즘 대통령이라는 것도 구호로 그쳤다. 사실 상징적 인물인 탁현민도 청와대에서 나가는 게 맞다.”
 
이윤택은 문 대통령 지인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미투운동이 가장 활발한 문화예술계를 관장하는 문화체육부 도종환 장관 등이 침묵하고 있는데.
“고위직이라면 이런 사안에 대해 당연히 발언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방미 수행에 나선 청와대 경호원 성추행 사건이 아쉽다. 누구나 다 올바르게 행동할 수는 없다. 문제는 처리다.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먼저 얘기하고 시스템, 다시 말해 인사를 통해 제재하는 걸 보여줬어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들켜서 찔끔 털어놨다. 성평등 인식을 구현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대통령도 성평등을 위해 이번 사건 직후 얘기했어야 한다.”
 
이제라도 압박하는 효과적 수단이 뭘까.
“우선 여성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여성단체가 목소리를 안 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이 이미 발표를 하긴 했으나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지금까지 여성 이슈를 끌고 온 여성단체가 어느 순간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여성 관련 사건이 터지면 정파를 넘어 여성이 한목소리를 냈어야 하는데,그러지 못했다. 다들 국회의원 되고 나서 후계자를 못 키운 탓인가. 어떤 면에선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문제일 수도 있다. 지원을 받다 보면 할 말을 못 한다.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고 이슈에 대해 뭉치지 못 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의 부상과 달리 여성단체는 그다지 신뢰를 못 받는 느낌이다.
"그간 어떻게 했는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비단 여성단체뿐 아니라 여성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같이 먼저 뭉치는 모습을 보이고 그 다음 여성단체와도 한목소리를 내야 사법부나 청와대도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성폭력상담소가 ‘판례뒤집기’ 등의 자료를 통해 사법부의 문제를 수차례 지적했지만 꿈쩍 안한다. 뭉치지 못하고 파편화했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던 거다.”
 
성범죄를 줄이는 다른 방법은 뭘까.
"교육이다. 특히 사법부를 포함해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이 성인지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법문도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어떤 시각이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또 어릴 때부터 성평등 인식을 심어주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조직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해도 엄벌은커녕 그냥 넘어가니 달라지질 않는다. 성희롱 발생 시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 특히 공무원 조직 내에선 인사 등 시스템으로 제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런데 왜 이런 후진적 성범죄가 여전할까. 특히 배우이자 교수인 조민기는 비교적 최근이고 내용도 충격적이다.
"조민기는 폭로 후 ‘가슴으로 연기하라며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음해한다’고 변명했다. 세상에, 그 가슴이 그 가슴이냐. 세상이 바뀌고 여성들의 인식도 달라졌는데 남성들 의식은 그만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남자 중심 사회 속에서 자라 잘못된 걸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번 해봤는데 아무 문제(제재)가 없으니 그 다음엔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맘 놓고 저지르는 측면이 더 크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나도 남도 계속하는 구조다. 망신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한다. 그 배경은 역시 솜방망이 처벌이다. 처벌받는다는 걸 알면 안 한다.”
 
강남역 사건으로 여성혐오 이슈가 부각하면서 거꾸로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남혐’도 튀어나왔다. 성별간 평등과 존중이 오히려 후퇴하는 것 아닌가.
"난 그래도 나아지는 과정으로 본다. 누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도 반론이 나오면서 소통과 설득이 이뤄진다. 여혐도 후퇴가 아니라 완전 무관심하다 이제야 표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 여혐을 똑같이 따라하는 미러링 등도 성평등 사회가 되면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다.” 
 
장명선 교수(59·법학 박사)는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이 성인지적 관점에서 법률을 바라보는 젠더법학의 학문적 발전과 사회적 실천에 기여하고자 2008년 설립한 젠더법학연구소 교수. 국회 입법지원위원과 여성가족부 권익증진정책 평가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젠더법학연구소는 여성법률상담센터와 젠더폭력상담소도 운영 중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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