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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우리 소관 아니다” … 한국GM 사태 책임 떠넘기는 정부 부처

중앙일보 2018.02.23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심새롬 경제부 기자

심새롬 경제부 기자

“구체적인 금액 등 지원 방안 논의는 산업은행이나 금융위원회 쪽에서 주최할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간부)
 

기재부·금융위 남의 일 보듯 방관
GM본사 치밀한 전략 갖고 움직여
부처 간 합심해 체계적 대응해야

“기재부는 총괄부서라 자세한 사안은 모두 주무부처(산업부)와 기관(산은)이 진행한다.” (기획재정부 간부)
 
“왜 여기에 퉁치려 하나. 담당은 산업부다. 산업부나 기재부에 문의하라.” (금융위 간부)
 
한국GM 사태가 가시화한 지 2주가 흐른 22일 아침 풍경이다. 이날 고형권 기재부 1차관과 이인호 산업부 차관은 배리 엥글 GM인터내셔널 사장을 차례로 면담했다. 앞서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9일 국회에서 GM본사의 지원 요청을 공식 인정하면서 “주무부처는 산업부고 조율은 기재부가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각 부처 고위 간부들은 앞다퉈 한국GM 문제를 ‘남의 일’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글로벌 기업에 정부 돈이 들어가는 민감한 협상을 앞두고 관료가 구체적 방안을 섣불리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GM을 둘러싼 부처 간 ‘폭탄 돌리기’ 싸움은 비밀협상 조건을 지키려는 양상을 한참 벗어났다. 한 산업부 간부는 이날 기자에게 “감당도 못 할 일을 뭐하러 가져와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주째 구체적 회생 방안이나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공장 하나가 군산에서 이미 멈췄다. 나머지 세 곳도 조만간 문을 닫을지 모른다. GM본사는 군산 뿐 아니라 부평1·부평2·창원 등 한국GM 산하 4개 완성차 공장을 모두 ‘고비용 사업장(red factory)’으로 분류했다.
 
호주·러시아·인도네시아에서 차례로 철수한 GM이 한국에서 발을 빼지 말라는 보장도, 약속도 없다. 전문가들은 GM본사의 이번 한국 철수 시도가 2013년 GM 글로벌 경영전략 발표 이후 5년 간 치밀하게 준비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가 한·미 FTA 재개정, 철강·알루미늄 관세 등 각종 통상 문제로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일부러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출격했다는 분석이다. 국제통상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한국GM의 법률 대리를 맡은 국내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지난해부터 사업재편 계획을 본격적으로 의뢰받고 미국 디트로이트 본사를 꾸준히 다녀갔다”고 전했다.
 
게다가 한국GM 철수는 비단 한 글로벌 기업의 경영 판단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워 일자리를 독식하고 자국 경제 부흥에만 힘쓰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發) 전쟁’이 이미 한반도를 무대로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미 의회에 “(공장이) 한국에서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이런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선 국정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내 건 문재인 정부가 그 희생양이 됐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정부라면 뼈아픈 현실을 깨닫고 늦었지만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정상이다. 최소한 부처 간 불협화음을 줄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게 아닌가.
 
청와대를 비롯한 경제 컨트롤타워가 이 문제를 모를 리 없다. 김 부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GM과의) 협의 과정에서 관계부처·기관 간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기재부와 산업부, 금융위가 공동 대응·공동 책임을 지고 대외적으로 발표할 사안이 생기면 산업부로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말했다. 전열을 정비한 정부의 개선된 모습을 기대한다.
 
심새롬 경제부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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