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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신과 함께 나눠 먹는 신성한 황소 한 마리…넙도 내리 당제와 설 음식

중앙일보 2018.02.23 00:01
넙도 내리 당제에 희생으로 바친 소의 머리와 족이 제물로 당에 올라가자 일찍 나와 작업을 하던 주민들은 고기를 구워 아침 대신 먹었다. 1시간쯤 전에는 살아있던 소의 고기 맛은 잡내 없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우러나는 야성미 그 자체였다.

넙도 내리 당제에 희생으로 바친 소의 머리와 족이 제물로 당에 올라가자 일찍 나와 작업을 하던 주민들은 고기를 구워 아침 대신 먹었다. 1시간쯤 전에는 살아있던 소의 고기 맛은 잡내 없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우러나는 야성미 그 자체였다.

원시 제천의식 원형질 간직한 마을 제사  

독자들 관심이 많지 않은 기사를 쓴다. 알면서 감수하고 쓴다. 온 마을이 함께 당제(堂祭)를 지내고 희생으로 바친 소를 나눠 먹으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의 설 풍습이 살아 있는 섬마을 얘기다. 이처럼 원시 제천의식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제의(祭儀)공동체’는 소멸하고 있다. 전국에 몇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도 앞날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그 가운데 원시성이 살아있는 전남 완도군 노화읍 내리(넙도) 당제가 있다.
뱃전에 전복 양식장 넘어 보이는 섬들. 왼쪽부터 노화도 옆 노록도, 보길도, 넙도, 서넙도. 오른쪽 색이 진한 작은 섬은 말 안장을 닮은 마안도다.

뱃전에 전복 양식장 넘어 보이는 섬들. 왼쪽부터 노화도 옆 노록도, 보길도, 넙도, 서넙도. 오른쪽 색이 진한 작은 섬은 말 안장을 닮은 마안도다.

섬 가까이서 본 넙도 내리 마을. 동네 왼쪽 언덕(사진 중간) 숲에 당할머니를 모신 당이 있다.

섬 가까이서 본 넙도 내리 마을. 동네 왼쪽 언덕(사진 중간) 숲에 당할머니를 모신 당이 있다.

당 앞에서 본 노화도·소안도·보길도(왼쪽부터). 멀리 희미한 소안도 앞으로 주황색 보길대교가 보인다.

당 앞에서 본 노화도·소안도·보길도(왼쪽부터). 멀리 희미한 소안도 앞으로 주황색 보길대교가 보인다.

당제는 외부인을 꺼리고, 특히 넙도는 설날 자정에 당제를 지내기 때문에 취재가 쉽지 않다. 마침 기회가 닿아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기자가 재능기부 삼아 취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14~16일에 다녀왔다. 사라져가는 민속문화에 관한 내용이니 재미는 없겠지만 의미는 중요해 자세히 기록을 남기려고 쓰다 보니 기사가 길다. 독자의 양해를 다시(지난주에 이어) 구한다.

 
미리 밝히지만 넙도 당제에 황소 한 마리를 희생으로 바치는 것은 실정법으로는 불법이다. 그러나 100년 넘게 이어온 전통이고, 그런 풍습 자체가 소중한 문화유산이므로 관(官)에서도 용인해왔다. 양쪽 입장을 감안해 표현을 최대한 순화했고, 현장 사진도 자극적인 것은 쓰지 않는다. 이 문제로 다른 시비가 없기를 기대한다. 
 
정월 초하루 자정 할머니 모신 당에 지내  
태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시각, 마을이 모두 잠든 정월 초하루 자정에 두 남자는 당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상에는 남자들이 만든 음식이 차려진다. 삶은 소 머리 고기와 족, 가죽도 있다. 18시간 전까지는 살아있던 소다. 섣달그믐날 동틀 무렵 일을 맡은 남자 4명이 황소 희생(犧牲)을 처리해 두피족(頭皮足)은 당에 제물로 올리고, 나머지 고기는 마을 129가구에 똑같이 분배했다. 소고기를 받은 주민들은 국 끓이고 산적 만들어 그믐 저녁에 설 차례를 지냈다.
당 너머 고갯마루에서 본 넙도 내리 당숲. 이번 당제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시설을 확충했다.

당 너머 고갯마루에서 본 넙도 내리 당숲. 이번 당제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시설을 확충했다.

민속조사보고서에 나오는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지난 설날 전후 내리 마을에서 지켜본 풍경이다. 이런 세시풍습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제 제수와 설 차례 음식이 궁금해 지난 14일 해남 땅끝에서 넙도로 가는 막배(오후 4시 30분)를 탔다. 신과 나눠 먹는 음식은 변화가 느리다. 시간의 층이 거듭 쌓인 음식의 원류가 흐른다. 그걸 보고 싶었다. 배에 타기 직전 전화로 인사를 나눈 현지인을 만났다. 올해 넙도 내리의 당제 유사(제관)를 맡은 박기태(52)씨다. 해남 장에서 제수를 사서 넙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해남 땅끝에서 넙도로 가는 배에서 당제 제수 준비한 내용을 점검하는 유사(제관) 박기태씨.

해남 땅끝에서 넙도로 가는 배에서 당제 제수 준비한 내용을 점검하는 유사(제관) 박기태씨.

배가 출항하자 그는 물목을 적은 메모지를 꺼내놓고 빠트린 물건은 없는지, 돈 지출은 아귀가 맞는지, 한 남자와 열심히 점검했다. 남자는 함께 유사를 맡은 용현택(67)씨였다. 나를 초대한 박씨는 11대째 넙도에 사는 밀양 박씨 청제공파 후손으로, 입도조(入島祖) 산소 앞에 컨테이너 집을 짓고 산다.
 
섬의 두 마을 같이 황소 한 마리 희생 바쳐
넙도는 내리와 방축리 모두 매년 정월 초하루에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며 풍어와 주민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다. 내리 당은 마을 가운데 봉긋한 산언덕 숲에 있다. 당산에는 한 아름이 훨씬 넘는 곰솔(해송)·팽나무·후박나무·생달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들 수령이 200년은 넘어 보였다. 당을 모신 세월도 그쯤 된 것이다.
  
제물로 쓰는 소를 예전에는 몇 달 전에 섬으로 들여와 방목해 길렀다. 소가 농작물을 뜯어먹어도 몰아내지 않고 일을 부리지도 않았다. 신성하게 여기고 잘 키워서 제사에 썼다. 그만큼 토속신앙이 강했다. 하지만 점차 기간이 짧아져 당제 보름 전에 유사를 뽑을 무렵 들여오다가 이번에는 이틀 전 넙도에 도착했다.
박기태 유사 집에 걸린 금줄.

박기태 유사 집에 걸린 금줄.

넙도에서 처음 만난 당제 풍경은 금줄이다. 외부인이나 부정 탄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줄이 유사인 박씨 집 입구에 걸려있었다. 당제 이틀 전(13일) 유사 두 사람은 당에 올라가 깨끗이 청소하고 당 숲 입구와 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대문간 처마에 금줄을 쳤다. 유사의 집 출입문에도 친다. 금줄은 왼새끼에 하얀 창호지를 접어 당에는 7개, 유사 집에는 5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꽂았다.  

희생 제물로 육지에서 들여온 황소. 1220㎏짜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는 600~700㎏이다.

희생 제물로 육지에서 들여온 황소. 1220㎏짜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는 600~700㎏이다.

동네 남쪽에서 당으로 올라가는 길, 커다란 곰솔 밑동에 희생(犧牲)이 매여있었다. 내가 60년 동안 본 소 가운데 가장 몸집이 컸다. 수소인데 1220kg짜리를 ㎏당 1만원 주고 사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소의 체중이 700㎏ 전후인 데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커 보통 소는 아닌 듯하다. 소를 사왔다는 주민은 “청도 싸움소였는데 한 번 우승하고 뿔이 빠졌다. 뿔이 자라는 동안 씨소로 쓰다가 소임을 마친 소”라고 자랑했다. 씨소로 썼다고 하나 우랑은 빈약해 거세우처럼 보였다. 다른 주민은 “해마다 큰 소를 찾지만 다 되는 것은 아니고, 지난해엔 큰 소를 썼다. 그런데 올해는 더 크다”며 기꺼워했다.

 
당 숲 입구와 유사 집에 출입 막는 금줄 쳐
천지와 종묘 제사의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일컫는 희생은 글자 자체가 소를 뜻한다. 한자로 쓸 때 두 글자 앞에 소 우(牛) 변이 붙는 이유다. 희(犧)는 털에 다른 색이 섞이지 않아 얼룩이 없는 소, 생(牲)은 살아있는 소 또는 길함을 얻지 못해 죽이는 것을 뜻한다. 희생양은 scapegoat를 번역한 말인데, 소와 양이라는 뜻이 돼 내용상 내부충돌이 된다. 사람의 죄를 대신해 벌 받는 속죄양이라고 번역해야 문맥상 맞다. 
박기태 유사가 지난 15일 오전 6시 목욕재계하고 당제를 모시기 위해 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희생으로 준비한 황소 옆을 지나고 있다.

박기태 유사가 지난 15일 오전 6시 목욕재계하고 당제를 모시기 위해 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희생으로 준비한 황소 옆을 지나고 있다.

섣달그믐 새벽 박 유사는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신 뒤 깨끗한 옷 한 벌, 소금 한 봉지, 여러 잔 분량의 인스턴트 커피를 챙겨 5시 50분 당으로 올라갔다. 30시간 넘게 자지 않고 당에 있어야 하므로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준비한다. 그로부터 30여분이 흐르자 마당에 매어둔 개가 기척을 했다. 희생이 매여있는 쪽으로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이다.  

뿔은 소나무에 묶이고 뒷다리가 밧줄에 묶였다. 당할머니 제사의 제물이 되기 직전이다.

뿔은 소나무에 묶이고 뒷다리가 밧줄에 묶였다. 당할머니 제사의 제물이 되기 직전이다.

오전 7시 남자 4명이 희생에서 제물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산도 들도 아닌 수풀 가운데였다. 그들은 당제를 위해 뽑힌 ‘소 도축 유사’다. 해마다 이장이 사전교섭을 해서 지명한다. 이들에게는 마을 예산에서 1인당 15만원씩 수고비를 준다. 사용한 도구는 20~30년 자란 것으로 보이는, 살아있는 소나무 2그루, 해머, 도끼, 칼, 10여m 길이 밧줄 2가닥뿐이었다. 솜씨는 능숙했다. 제의에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물려받은 기술일 것이다. 
 
소 두피족(頭皮足)은 제물…고기는 분배
희생은 15분만에 뿔과 뒷다리가 결박된 채 모로 누웠다. 30분이 지날 무렵 제물로 쓸 머리와 족 4개를 차례로 분리했다. 잠시 후 이장은 “반장들 모여라. 현장으로 오라”고 방송한 후 당제 제물로 쓸 소의 두피족(頭皮足), 즉 머리·가죽·족을 전달하기 위해 현장으로 왔다. 제물을 마련하는 동안에는 유사 말고 현장에 사람이 있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실제 도축 유사 중 한 명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도, 미안하지만 나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장이 제물을 싣고 당으로 올라갈 무렵 분배하는 고기를 받아가기 위해 8개 반 반장들이 트럭에 큰 바구니들을 싣고 모였다. 아침 7시 47분 이장은 당 마당에서 당제 유사에게 제물을 인계했다. 이장도 당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넙도 내리 이장이 당제 제물로 쓸 소 머리와 4개의 족을 유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넙도 내리 이장이 당제 제물로 쓸 소 머리와 4개의 족을 유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제물이 당으로 올라가자 한쪽에서는 일찍 나온 사람들을 위해 날고기도 썰고, 들판에서 땔감을 주워 모아 화톳불 지피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트럭 적재함을 주방 겸 술상 삼아 야생의 파티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처음 차돌양지를 날로 잘라 소금 찍어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기 시작하더니 바로 넓적한 고깃덩어리를 떠내다가 석쇠에 올려 구웠다. 구운 고기는 도시의 음식점 고기에 비해 질겼지만 씹을수록 감칠맛이 우러났다. 익은 고기 사진을 본 장흥 대덕읍 ‘풀로만목장’의 조영현(64) 대표는 “온도체(溫屠體) 소고기가 가장 맛나다”는 댓글을 달았다. 온도체란 도축했지만, 체온이 남아있는 가축의 몸체를 말한다. 

도축 현장에서 바로 살을 떠내 구운 고기. 주민들은 고기의 부위별 명칭은 몰라도 맛있는 부분은 정확히 알았다.

도축 현장에서 바로 살을 떠내 구운 고기. 주민들은 고기의 부위별 명칭은 몰라도 맛있는 부분은 정확히 알았다.

즉석에서 나무들을 주워 모아 일군 화톳불에 잘 구워진 고기.

즉석에서 나무들을 주워 모아 일군 화톳불에 잘 구워진 고기.

고기 부위를 물어봐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소량만 나오는 특수부위, 맛있는 살은 학습을 통해 잘 아는 듯했다. 70대로 보이는 주민이 고기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맛이 기가 막히네요”라고 대답하니 “그러면 버버리(벙어리) 되지” 하고 받는다. 술을 자꾸 권하기에 “해장술에 취하면 아버지도 몰라본다 하던데요” 하자 다른 주민이 “아버지 있소?” 하고 물었다. “돌아가셨죠” 했더니 “그러면 뭐가 걱정여” 한다. 조금 전에 만난 외지인이건만 격의(隔意) 없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바로 분위기에 융화됐다.

  
모인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얘기를 모으면, 섬에서 김이나 전복 양식을 모르던 시절에는 어렵게 살아 고기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50년 전만 해도 그랬다. 이렇게라도 1년에 한 번은 소고기를 먹으려고 했다. 당제의 역사는 아무리 못 돼도 100년은 넘었을 것으로 본다.
제물을 당에 올려 보내고 남은 고기는 마을 8개 반이 가구수에 맞춰 공평하게 나눈다. 이장이 안내방송을 하자 반 대표자들이 트럭을 몰고 모였다. 사람과 트럭 수가 거의 같았다. 가운데 왼쪽 트럭에서는 고기를 분배하고, 오른쪽에서는 고기를 잘라 굽고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산은 보길도다.

제물을 당에 올려 보내고 남은 고기는 마을 8개 반이 가구수에 맞춰 공평하게 나눈다. 이장이 안내방송을 하자 반 대표자들이 트럭을 몰고 모였다. 사람과 트럭 수가 거의 같았다. 가운데 왼쪽 트럭에서는 고기를 분배하고, 오른쪽에서는 고기를 잘라 굽고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산은 보길도다.

8개 반으로 고기를 분배하고 있다.

8개 반으로 고기를 분배하고 있다.

고기 가구마다 같은 양...설 차례상에 올려
제물을 올리고 희생의 뒤처리는 오전 9시 40분에 끝났다. 이보다 10분 앞서 반별로 고기 분배가 시작됐다. 반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느매기를 하니 공평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가족 수 관계없이 가구마다 똑같이 나눈다. 분배 방식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마을의 오랜 규칙이어서 시비하는 사람은 없다. 8개 반 반장들이 대표로 받아가서 반별로 주민들이 모여 다시 몫을 나눈다. 
 
129가구가 사는 내리는 8개 반 가구 수가 거의 같다. 반마다 16가구가 살고 5반만 17가구다. 5반에는 고기를 한 몫만큼 더 준다. 반마다 정육 53kg과 갈비, 등뼈 2토막, 내장, 자투리 고기가 돌아갔다. 고기를 일부 남겨 노화읍 넙도출장소, 육·해경, 목사가 상주하지 않는 동네 교회 등에도 나눠줬다. 반별 분배는 1시간이 걸렸다. 성기와 우랑은 이장 몫으로 하는 게 관례다.
 17가구가 사는 내리 5반의 가구별 분배 현장.

17가구가 사는 내리 5반의 가구별 분배 현장.

설 전날인 지난 15일 낮 5반 주민들이 각자 쇠고기 몫을 받아 집으로 가고 있다. 이 고기로 국 끓이고 산적 만들어 이날 저녁에 설 차례를 지낸다.

설 전날인 지난 15일 낮 5반 주민들이 각자 쇠고기 몫을 받아 집으로 가고 있다. 이 고기로 국 끓이고 산적 만들어 이날 저녁에 설 차례를 지낸다.

5반 분배현장에 가봤다. 오전 11시부터 주민 4~5명이 참여해 열일곱 몫으로 노느매기하고 있었다. 가구마다 정육 3㎏(5근)과 갈비·뼈 등이 돌아갔다. 11시 35분에 분배가 끝났다.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나눈 고기를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보다 작업 진행이 좀 늦은 반도 보였다.

당제의 희생이 된 소 고기를 나눠 받은 ‘부두민박식당’에서 꼬치 산적을 만들었다. 차례상에 올리고 설날 아침 동네를 도는 농악대 술상에 안주로 내기도 한다.

당제의 희생이 된 소 고기를 나눠 받은 ‘부두민박식당’에서 꼬치 산적을 만들었다. 차례상에 올리고 설날 아침 동네를 도는 농악대 술상에 안주로 내기도 한다.

동네는 집집이 나눈 고기로 설을 쇤다. 차례에 쓸 국부터 끓인다. 국에는 소고기와 두부가 들어간다. 여러 부위 소고기와 뼈까지 넣고 국을 끓이니까 맛이 시원하다고 한다. 어렵게 살던 시절에는 영양 보충도 됐다. 조금 갖추고 사는 집은 살코기를 떼어내 꼬치 산적을 만든다. 고기 음식은 차례 지내고, 가족들 먹고, 다음날 마당밟이 하는 군고패(풍물패) 대접하는 술상에 올리기도 한다. 고기를 받은 주민들이 서둘러 집으로 가는 이유는 설 차례 준비가 급하기 때문이다.

 
서남해안 설 차례 섣달그믐 저녁에 지내
이곳은 여느 서남해안과 도서 지역 대부분이 그러듯이 설 차례를 섣달그믐 저녁에 지낸다. 이유를 물어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장흥군 해안마을 회진에서도 설 전날 차례를 지낸다. 그 이유를 “조선 시대 수군 만호가 주둔한 회령진성이 그곳에 있다. 예전 해안지역에는 설날 왜구 습격이 잦았다. 그래서 차례를 미리 지내고 설날 방비를 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고 장흥군 관산읍에 사는 신호웅(54)씨는 전했다. 회진은 넙도에서 직선거리로 50㎞쯤 떨어진 마을이다.
  

설 전날 점심때가 지나면서 당 숲에 들어간 유사들도 당제 음식 준비에 바쁘다. 유사는 당제 15일 전에 이장이 사전 교섭해 지명한다. 생기복덕 운수를 가려 뽑는다. 생기복덕은 당제 지내는 날의 일진과 나이를 팔괘에 배정하여 효(爻)의 변화를 보고 생기일과 복덕일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원칙대로 다 따지면 제관을 맡을 사람이 거의 없어, 대개는 부정(不淨) 타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 뽑는다.
박기태·용현택 유사가 제사 절차를 마친 뒤 제사 지낸 복장으로 대기실에 앉아있다. 이들은 앞으로 1년 동안 모든 애경사와 다른 궂은 자리에 가면 안 된다.

박기태·용현택 유사가 제사 절차를 마친 뒤 제사 지낸 복장으로 대기실에 앉아있다. 이들은 앞으로 1년 동안 모든 애경사와 다른 궂은 자리에 가면 안 된다.

넙도 내리 당제의 유사를 뽑을 때 가장 가리는 부정은 피[血]다. 유사로 정한 뒤 당제 지낼 때까지 가족 중 누가 달거리를 하면 부정하다고 본다. 그래서 가임 연령의 여성이 있는 집에서는 유사 맡기를 피한다. 당제를 지내러 당에 올라간 유사가 음식을 준비하다 다쳐 피가 나면 바로 내려와야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예전에는 예비 유사를 뽑았는데 요즘은 유사 하려는 사람이 적어 그렇게 못한다. 피를 꺼리는 것은 당주가 할머니여서 그런 것 같다는 게 박 유사의 생각이다.  

 
유사(제관)는 1년 동안 애경사에 못 가
유사를 하면 제한받고 지켜야 할 일이 많으므로 모두들 피하려고 한다. 여러 이유를 들며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 젊은 여성 있는 집을 제외하고 생기복덕 맞는 사람 뽑기는 어렵다. 많을 때는 200가구가 넘게 살았고, 현재는 129가구가 사는 마을인데 유사 뽑아서 당제 모시면 이장의 1년 임기(3연임까지 가능) 중 임무 80%는 수행했다 말할 정도다.
 

일단 유사를 맡은 뒤에는 제를 잘못 모시면 본인과 가족에게 해가 돌아올까 염려해 부정 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한다. 제의 시간 동안 금줄 친 구역의 출입 금기도 엄격히 지킨다. 반면 황소 한 마리를 똑같이 희생으로 바치는 이웃 마을 방축리는 모든 과정을 개방한다고 한다.
 
본당 유사에게 정해진 이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2명의 직분을 따져 나누면 본 유사와 보조 유사다. 본 유사가 음식 준비와 상차림을 모두 맡으면 보조 유사는 그 과정을 거든다. 유사가 준비할 음식은 소 두피족(頭皮足) 삶기, 국 끓이기, 나물 무치기, 떡 하기 등이다. 예전에는 막걸리도 당에서 담가 제주로 썼으나 요즘엔 병으로 사다가 쓴다. 소머리와 족은 몸통에서 분리해 바로 당에 올라가면 유사들이 털을 제거하고 삶아야 한다. 솥이 아주 크지는 않으므로 머리는 4등분 해 두 번 나눠 삶는다. 머리를 삶기 전 살코기를 일부 떼어놨다가 제상에 올릴 국을 끓인다. 국에는 고기·두부만 들어간다.
마을회관 마당에서 소가죽의 털을 그을리는 주민. 작업이 끝나면 건너 쪽에 보이는 당에 제물로 올려준다. 소 머리·족·가죽만 제물로 쓴다.

마을회관 마당에서 소가죽의 털을 그을리는 주민. 작업이 끝나면 건너 쪽에 보이는 당에 제물로 올려준다. 소 머리·족·가죽만 제물로 쓴다.

제사음식은 당 숲 별채에서 제관이 준비

가죽은 소 도축 유사들이 털을 그을려서 오후 1시쯤 올려준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회관(행복한 쉼터) 한쪽에서 소가죽 그을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죽은 유사들이 한 뼘 넓이로 자르고 돌돌 말아 열에 녹지 않는 끈으로 묶은 다음 소다를 푼 물에 삶는다. 희생의 고기가 아니라 두피족만 제물로 쓰는 것은 머리와 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죽은 한 마리를 입증하는 데 필요하다.
당제 제상에 올릴 떡은 유사들이 직접 만든다. 김 위에 쌀가루, 다시 김 위에 쌀가루 얹기를 거듭해 네 쪽의 떡을 찐다. [사진= 박기태 유사]

당제 제상에 올릴 떡은 유사들이 직접 만든다. 김 위에 쌀가루, 다시 김 위에 쌀가루 얹기를 거듭해 네 쪽의 떡을 찐다. [사진= 박기태 유사]

머리와 족을 삶고 나면 떡을 한다. 불린 쌀을 절구에 빻아 체로 쳐서 김 위에 가루, 김 위에 가루 순서로 4단 쌓아 찜기에 찐다. 떡을 올릴 상이 네 개다. 섬에서 많이 나던 김을 떡고물 대신 쓴다. 올해는 쌀가루를 사다가 떡을 했다. 나물은 삶은 고사리·콩나물·도라지를 소금으로 간해서 무친다. 과일은 사과·배·귤을 꼭지 따서 통으로 올린다. 명태·김도 준비한다.  

 
제례의 내용과 형식은 원형을 지키려는 구심력이 강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신성한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변질 또는 불경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제례의 의미와 규모가 클수록 완고하다. 종묘제례나 석전대제는 원형 유지가 가치를 갖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내리 당제에 쓰는 음식과 제례 절차도 처음 제를 지낼 때와 본질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누적된 현재여서 의미가 있고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당에서 준비 중 대변 보면 목욕 다시 해야 
지금도 당제를 준비하다가 대변을 보면 유사는 목욕을 다시 해야 한다. 소변을 보면 손을 씻고, 담배를 피우면 이를 닦아야 한다. 박 유사는 당에 들어가는 전날부터 고형식품 섭취를 억제했다. 변이 생기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제수 준비를 하면서 물도 거의 안 마신다. 담배를 자주 피우는 그는 “지난번 유사 때는 이가 닳을 걸 걱정할 만큼 여러 번 이를 닦았다”고 했다. 그는 2001년 이장을 지냈고, 2011년과 2013년에는 보조 유사를 맡았다.
 
유사는 종일 제사 준비를 하고 밤 11시가 되면 당에서 물을 데워 다시 목욕한다. 보조 유사는 집에서 출발할 때 목욕을 하고 올라와 제사 전에 세수만 한다. 씻은 다음 장 볼 때 제물 준비하면서 산 속옷·양말·신발을 갈아입고 신는다. 준비를 마치면 제상을 차리고 산신상, 본당(당주할머니와 작은할머니), 문지기상 차례로 제사를 지낸다. 오후 11시 30분부터 산신상에 지내고, 당주할머니는 11시 50분에 상을 차리고 자정에 제사를 지낸다. 오전 1시면 문지기상 제사와 퇴식(退食)까지 모두 끝난다.  
4개의 상 가운데 가장 먼저 차리는 산신상은 당 숲의 큰 나무 아래 차린다. 제물은 당주할머니상과 같다. [사진=박기태 유사]

4개의 상 가운데 가장 먼저 차리는 산신상은 당 숲의 큰 나무 아래 차린다. 제물은 당주할머니상과 같다. [사진=박기태 유사]

산신상은 상을 차린 나무 밑동에 퇴식한다.

산신상은 상을 차린 나무 밑동에 퇴식한다.

당에는 두 개의 상을 차린다. 당주할머니와 작은할머니상이다. 제수는 같지만 작은 할머니상에는 명태를 놓지 않는다. 4개의 상 가운데 당주할머니상에만 촛불과 향을 피운다. [사진=박기태 유사]

당에는 두 개의 상을 차린다. 당주할머니와 작은할머니상이다. 제수는 같지만 작은 할머니상에는 명태를 놓지 않는다. 4개의 상 가운데 당주할머니상에만 촛불과 향을 피운다. [사진=박기태 유사]

당할머니에게 올린 제물을 당 숲 큰 나무 아래 퇴식했다.

당할머니에게 올린 제물을 당 숲 큰 나무 아래 퇴식했다.

산신상은 당 바깥의 나무 아래 차린다. 밥·국·고기·나물·떡·김·명태·술 등 준비한 제물을 모두 올린다. 명태는 통으로, 술은 상마다 1병을 올린다. 산신상에는 절을 하지는 않는다. 상을 차려 두는 거로 제사를 가름한다. 다음엔 당 안에 차리는 당주할머니와 작은할머니상 제사다. 당주할머니상에는 모든 제물을 다 차리고, 유일하게 촛불과 향을 피운다. 작은할머니상은 다 같이 차리되 명태를 올리지 않는다. 음식을 다 차리면 술을 올리고 두 유사가 재배한 다음 숭늉을 올린다. 잠시 밖으로 나가 문지기상 제사를 지낸다. 당의 담 귀퉁이에 놓아둔 넓적한 돌판 옆에 상을 차린다. 당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차리는 상이다. 산신상처럼 절은 하지 않고 술을 따른다. 마치고 당으로 들어가 당주할머니상을 물리면서 소지를 올린다.

당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올리는 문지기상. [사진=박기태 유사]

당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올리는 문지기상. [사진=박기태 유사]

문지기상은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만들어둔 구덩이에 묻고 돌판으로 누른다.

문지기상은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만들어둔 구덩이에 묻고 돌판으로 누른다.

제사 끝나는 오전 1시엔 주민 출입 허용 

퇴식은 산신상은 상 차린 나무 아래, 당주할머니상은 당집 앞 큰 나무 아래 버린다. 문지기상은 상을 차린 돌판 아래 만든 얕은 구덩이에 넣고 돌판으로 눌러놓는다. 이때까지 당에는 유사 2명 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2013년 이 당제를 취재한 목포대 송기태 교수는 “넙도 당할머니는 해남 땅끝 당하리에서 건너와 좌정했다고 한다. 내리와 방축리 당할머니는 자매 관계다. 내리가 언니, 방축리가 동생”이라고 했다(교수신문 2013년 4월 1일). 하지만 박 유사는 해남에서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방축리 당할머니와 자매라는 것에 대해선 부인했다. 내리 당에 할머니가 두 분 있기 때문에 방축리와 자매가 아니라고 했다. 당제 때 상을 큰할머니, 작은할머니 따로 차린다. 당에 할머니 형상의 몸체(상)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복·버선 두 벌이 신격(神格)을 상징한다. 옷장도 2칸이다. 평소에는 왼쪽에 큰할머니 옷을 고이 접어 넣어두고, 작은할머니 옷은 오른쪽 옷장에 보따리로 싸 놓는다. 제사 때는 큰할머니 옷과 버선만 꺼내 횃대에 걸고, 옷 보따리가 있는 칸은 문을 약간 열고 보따리는 절반만 풀어놓은 채 지낸다.  
제사가 끝난 직후의 당 내부. 큰할머니를 상징하는 옷과 버선 한 벌을 개어서 옷장에 넣어 뒀다가 제사를 지낼 때는 꺼내서 횃대에 걸어둔다. 옷장 안에 있는 보따리는 작은할머니 옷이다. 제사 때 내걸지 않고 보퉁이 일부만 풀고 옷장 문을 연다. 고무신은 한 켤레만 있다.

제사가 끝난 직후의 당 내부. 큰할머니를 상징하는 옷과 버선 한 벌을 개어서 옷장에 넣어 뒀다가 제사를 지낼 때는 꺼내서 횃대에 걸어둔다. 옷장 안에 있는 보따리는 작은할머니 옷이다. 제사 때 내걸지 않고 보퉁이 일부만 풀고 옷장 문을 연다. 고무신은 한 켤레만 있다.

제사가 끝나고 정리를 마친 당 내부. 설날 자정에 제사를 지낼 때 말고는 늘 이 상태로 있다.

제사가 끝나고 정리를 마친 당 내부. 설날 자정에 제사를 지낼 때 말고는 늘 이 상태로 있다.

보따리 옷 갈피에는 봉투 하나가 끼어 있었다. 박 유사는 “누가 넣었는지 모르지만 5000원권 10장이 들어있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 구전에 따르면 보따리는 작은할머니 옷이다. 5년 전 송 교수는 “한복 두 벌이 걸려있고 그 밑에 고무신 두 켤레가 놓여있다. 한 벌은 봄가을에 입는 옷이고, 한 벌은 겨울에 입는 옷”이라고 했는데 박 유사의 설명과는 다르다. 고무신은 당시 사진에 두 켤레가 보였는데 이번에 보니 한 켤레뿐이었다.

설날 오전 1시 30분, 불이 환하게 켜진 당 숲. 제사 절차가 끝나면서 출입이 가능해졌다.

설날 오전 1시 30분, 불이 환하게 켜진 당 숲. 제사 절차가 끝나면서 출입이 가능해졌다.

오전 1시쯤 제사가 끝나면 당 출입 금기가 풀린다. 나는 이 시간에 들어가 당 숲 일대를 살피고 사진을 촬영했다. 숲 안에 작은 대문과 담이 둘러싼 1칸 크기 당집이 있고, 그 뒤로 2칸짜리 주방 겸 샤워실 건물(이름은 따로 없다)이 있다. 당 숲 일대는 2017년 크게 정비했다. 주방 채를 새로 짓고, 마당에 짚을 깔고 차리던 헌식(獻食)상 자리에 대리석으로 기다랗게 상을 만들었다. 숲 아래 동네 쪽으로 주차장도 크게 닦았다.

 
새벽 6시엔 객귀 위한 헌식상 길게 차려 
유사들은 제사를 마친 뒤에도 설거지하고 덜 삶은 소가죽을 삶으며 날을 샌다. 박 유사는 “제사가 끝나면 이장이 소주와 커피를 가지고 올라온다. 제물로 쓴 고기에 소주 한잔하면 핑 돈다. 군고패가 마을회관에 모여 100m 언덕길을 올라오는 시간이 2시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설날인 지난 16일 오전 6시 당 앞마당의 헌식상에 객귀를 위한 음식이 차려졌다. 밥과 나물·과일을 그릇에 담지 않고 모닥모닥 놓았다. 고기는 없이 소머리 뼈만 놓았다.

설날인 지난 16일 오전 6시 당 앞마당의 헌식상에 객귀를 위한 음식이 차려졌다. 밥과 나물·과일을 그릇에 담지 않고 모닥모닥 놓았다. 고기는 없이 소머리 뼈만 놓았다.

설날 새벽 6시가 되면 마지막으로 당 앞마당에 설치한 대리석상에 헌식상을 차린다. 상에 짚을 깔고 소머리뼈들을 띄엄띄엄 놓은 다음 당제와 별도로 지은 밥 15그릇과 나물·과일을 그릇에 담지 않고 모닥모닥 펼쳐 놓는다. 찾아갈 당이나 후손 없이 넙도에 떠도는 혼백들을 대접하는 상이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인데 이웃 다른 마을들에는 없는 절차라고 한다.  

박기태 유사가 쓰고 남은 제물 앞에서 뒤처리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소 정강이는 유사 2명이 2개씩 나눠 갖고, 발굽은 농악대에서 서열에 따라 나눠준다.

박기태 유사가 쓰고 남은 제물 앞에서 뒤처리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소 정강이는 유사 2명이 2개씩 나눠 갖고, 발굽은 농악대에서 서열에 따라 나눠준다.

제물로 쓴 소가죽은 소다를 넣고 삶았다. 먹어보라며 한 토막을 잘라놨다.

제물로 쓴 소가죽은 소다를 넣고 삶았다. 먹어보라며 한 토막을 잘라놨다.

그러고도 유사들은 당에서 나갈 수 없다. 군고패(농악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전 8시 26분 이장이 군고패 모이라고 독려하는 방송을 했다. 10분 뒤 먼저 모인 사람들이 풍물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 마치고 모이기 시작한 군고패는 이장이 첫 방송을 한 뒤 1시간 만에 마을회관에서 100m쯤 위에 있는 당산으로 향했다. 당에 도착하자 마당과 당집 둘레를 몇 바퀴 돌며 당굿을 펴 당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마당으로 나가 헌식상에 굿을 친 다음 주방 채 앞으로 왔다. 이때 군고패의 굿은 민간신앙의식으로 농악을 치는 당산굿 성격을 띤다. 여기서 ‘굿’은 무당의 제의가 아니라 농악 치는 것을 말한다.

 
유사들, 농악대 올라올 때까지 당에 대기
군고패의 연령은 60~70대가 주력이었다. 젊은이는 5~6명이 영기를 들거나 북을 치며 따라다니고 일부는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도왔다. 참여한 젊은이는 대개 마을에서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섬은 여느 농어촌에 비해 젊은이가 많은 편이다. 여성도 참여한다는데 올해는 보이지 않았다. 군고패가 이동하는 동안 악기를 다루는 재비는 10명 안팎을 들고 났다. 대열 편성은, 상모놀이꾼은 없이 포수 1, 영기 2, 깽매기(꽹과리의 현지어) 5, 징 2, 북 2, 장구 1, 소고 1, 서무(집집이 내는 돈·쌀 수거) 1명과 트럭이 3대였다.
당제를 마친 다음 당 숲 입구의 금줄을 걷었다.

당제를 마친 다음 당 숲 입구의 금줄을 걷었다.

설날 아침 농악대가 당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새해 좋은 기운을 받아 동네 집집에 전하는 전령 역할을 한다. 유사들은 농악대가 올 때까지 당에서 나올 수 없다.

설날 아침 농악대가 당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새해 좋은 기운을 받아 동네 집집에 전하는 전령 역할을 한다. 유사들은 농악대가 올 때까지 당에서 나올 수 없다.

농악대가 당을 3바퀴 돌며 당할머니 기운을 받으면서 하직을 고하고 있다.

농악대가 당을 3바퀴 돌며 당할머니 기운을 받으면서 하직을 고하고 있다.

군고패가 당도하자 두 유사는 제물로 술상을 차려 내고 남은 제물을 분배했다. 제물 중 소 정강이 4개는 유사 2명이 나눈다. 발굽 8개는 군고패 상쇠에게 앞발굽을 주고 소임 순서대로 소가죽·머리 고기와 함께 나눠 준다. 남은 고기와 가죽은 군고패와 주민들에게 분배한다. 군고패가 제물을 나눠 음복하는 동안 당 숲에서 건너다보이는 보길도 정자리 이장이 동네 방송을 했다. 그 소리가 바다를 건너와 생생하게 들렸다. 음복을 마친 군고패는 당집을 두른 담 안으로 들어가 3바퀴(예전엔 12바퀴 돌았다 한다) 돌며 당할머니에게 1년 후를 기약하며 하직을 고하고 마당으로 나와 몇 바퀴 돌며 마무리 굿을 올리고 마을로 내려갔다. 당에서의 모든 과정은 30분쯤 소요됐다.

 
이어 군고패는 두 명의 유사 집부터 시작해 이장 집, 신청자 순으로 집돌이를 하며 마당밟이를 한다. 당할머니에게 새해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온 마을에 나누고 집집이 나쁜 기운을 내쫓아 정화해주러 가는 것이다. 군고패가 내려가는 걸 본 유사들은 당집 정리와 남은 설거지를 하고 내년 당제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주방 채를 정리한 다음 집으로 간다. 신성 공간에 격리돼 머문 지 31시간 만이다.
 
유사는 1년 동안 궂은 자리에 가면 안 돼
유사는 지명된 날부터 다음 유사가 정해질 때까지 부정을 피해야 한다. 친척·친지 애경사도 가면 안 된다.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보상이 있다. 예전에는 동네 앞바다 솔섬[松島] 주변 해산물 채취권을 두 유사에게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앞까지 방파제가 놓여 별로 수확이 없다고 한다. 대신 마을 예산에서 현금을 150만원씩 준다. 
 
이 마을에서 부르는 군고패라는 이름에 대해 박 유사는 여러 개의 북이라는 뜻으로 군고(群鼓)라 했다. 이는 징·꽹과리와 같은 쇠붙이로 된 악기와 북·장고 등이 합주하는 음악이라는 뜻의 금고(金鼓)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박 유사는 당제에 대해 “박정희 시대 미신 타파한다며 당제 지내는 걸 좋게 안 봤지만, 우리 마을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소를 바치며 지냈다. 섬에 주민이 살기는 400년은 된 것으로 보고, 당을 조성해 제를 지내는 것도 300년쯤 된 것으로 본다. 족보를 통해 짐작한다. 우리 집안은 11대 조가 들어왔으니까 얼추 계산해도 330년 아닌가. 고려 말~조선 초기에 섬에 사람이 살지 않도록 시행하던 공도정책이 풀리면서(16~17세기) 본격적으로 입도했을 테지만, 그 전에도 일부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준비할 물건을 세세히 적은 물목.

준비할 물건을 세세히 적은 물목.

박기태 유사가 당제 상차림 때 빠트리지 않으려고 필요한 내용을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메모지. 그는 이번에 유사를 세 번째 맡았다. 당제 절차를 정리한 별도 기록은 없다고 했다.

박기태 유사가 당제 상차림 때 빠트리지 않으려고 필요한 내용을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메모지. 그는 이번에 유사를 세 번째 맡았다. 당제 절차를 정리한 별도 기록은 없다고 했다.

"마을 생긴 지 400년, 당제는 300년쯤 된 듯"  

당제는 유서가 깊지만 시행 교범은 따로 없다. 제례 준비와 절차, 상차림 등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근년에 어느 해 누가 유사를 맡았는지 명단조차 없다. 모든 걸 체험·기억·구전으로 이어오고 있다. 유사들도 일생에 한두 번, 몇 년에 한 번 맡으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당제 유사를 세 차례나 맡은 박씨조차 금줄 만드는 왼새끼를 꼴 줄 모른다.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농악대는 집돌이를 유사의 집부터 시작한다. 농악대 길잡이인 포수가 용 유사 집에 친 금줄을 걷고 있다.

농악대는 집돌이를 유사의 집부터 시작한다. 농악대 길잡이인 포수가 용 유사 집에 친 금줄을 걷고 있다.

용현택 유사 집에서 차려둔 정화수상. 쌀과 돈봉투는 농악대가 가지고 간다. 걸립 농악의 흔적이다.

용현택 유사 집에서 차려둔 정화수상. 쌀과 돈봉투는 농악대가 가지고 간다. 걸립 농악의 흔적이다.

용 유사 집에 군고패가 도착하자 선두에 선 포수가 금줄을 걷고 집으로 들어갔다. 용씨의 부인은 마루 앞 평상에 상을 놓고 돈 봉투를 꽂은 쌀과 정화수를 올렸다. 군고패가 마당으로 들어서 풍물을 치며 대열을 정리했다. 잠시 후 상쇠부터 차례로 4명이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수도를 틀어놓고 ‘잡귀 액운 물러가라’는 짧은 사설을 하며 굿을 했다. 
상쇠·부쇠 등 4명이 부엌으로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조왕굿을 치고 있다. 물이 귀한 섬의 특성이 스민 의식으로 보인다.

상쇠·부쇠 등 4명이 부엌으로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조왕굿을 치고 있다. 물이 귀한 섬의 특성이 스민 의식으로 보인다.

농악대가 용현택 유사 집에서 마당밟이를 하고 있다.

농악대가 용현택 유사 집에서 마당밟이를 하고 있다.

수돗물을 흘려보내는 까닭은 물이 마르지 말라는 기원으로 보였다. 물이 귀한 섬의 특성이 반영된 의식이겠다. 샘굿과 조왕굿이 합쳐진 형태다. 이어서 마당에 나와 정화수 올린 상 앞을 두어 바퀴 돌면서 가락을 연주하자 안주인이 술상을 내왔다. 마당굿과 성줏굿이 합쳐진 의식으로 보인다. 상에는 삭히지 않은 홍어와 삶아 김이 나는 삼겹살 제육, 묵은지, 말렸다가 찐 문어, 고사리·숙주나물, 지역 막걸리와 소주가 차려졌다. 상쇠의 신호에 따라 사람들이 상 주위에 모였다. 술은 첫 잔을 영기의 깃대 아래 뿌렸다.   

농악대에게 차려낸 주안상. 삭히지 않은 홍어, 삼겹살 제육, 묵은 김치, 고사리나물, 숙주나물을 차렸다.

농악대에게 차려낸 주안상. 삭히지 않은 홍어, 삼겹살 제육, 묵은 김치, 고사리나물, 숙주나물을 차렸다.

이어 트럭 3대에 나눠 타고 동네를 돌아 박 유사의 집으로 갔다. 유사가 없는지 군고패 중 한 명이 집에 들어가 쌀과 물을 그릇에 담아 나와 집 앞에 놓고 풍물을 쳤다. 사각 영기(令旗)를 들고 다니던 기수가 내게 오더니 쌀에 돈 1만원만 꽂으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봉투에 넣지도 않고 꽂았다. 혼자 사는 박 유사는 당에서 미처 내려오지 않았는지 군고패를 맞이하지 못했다.
 
당제 제수 살 때 물건값 부르는 대로 지불
군고패의 집돌이는 주민들이 내는 돈과 쌀을 모아 당제 비용을 충당하던 예전에는 제수 비용을 마련하는 걸립 목적도 있었다. 집집마다 분담 의무가 있어 2~3일에 걸쳐 온 마을을 다 돌았다. 그래도 끝나지 않으면 정월 대보름에 마저 돌았다. 그때는 잘 사는 집에서는 30만원, 또는 100만원까지 내놓기도 했다. 요즘은 마을의 1종 공동어업권 수익금 일부를 마을 예산으로 떼어놨다가 당제 비용으로 쓴다. 1종 공동어업권이란 마을 관할 해역에 자라는, 양식하지 않은 해조류 채취 권한을 말한다. 넙도에서는 주로 톳을 채취한다. 양식 해조류는 2종 공동어업권이다. 요즘 집돌이에는 주민들이 5만~10만원씩 기부금을 내는데, 모아뒀다가 5월 20일 이민(里民)의 날 행사 비용으로 쓴다.
 
제수를 준비하는 장보기는 유사 둘이 한다. 물품을 살 때는 흥정하지 않고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른다. 비용 집행은 유사 전권으로 하며 제례에 쓸 정해진 품목을 빠트리지만 않으면 결산보고는 하지 않는다. 박 유사는 “살 걸 다 사면 10만원쯤이 남아 유사가 나눠 가졌는데 올해는 물가가 올라 6만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간이계산 메모를 보여줬다. 올해 당제 비용은 소 1220만원, 유사 2명 수고비 300만원, 소 도축 유사 4명 수고비 60만원, 제사용품 50만원, 비품 19만원(신축 주방 준비물) 등 약 1700만원이 들었다.  
농악대가 일반 주민의 집으로는 처음 ‘부두민박식당’에 들렀다. 주안상에는 전날 차례상에 올린 제수가 고루 차려졌다.

농악대가 일반 주민의 집으로는 처음 ‘부두민박식당’에 들렀다. 주안상에는 전날 차례상에 올린 제수가 고루 차려졌다.

다시 트럭을 타고 카페리 선착장에 내리면 마을 입구 첫 집인 ‘부두 민박·슈퍼·식당(전화 061-553-4214)’으로 갔다. 1통 1반 첫 집이다. 전날 그 집에서 밥을 사 먹으면서 알게 된 여주인 김정매(64)씨는 “일반 주민 집으로는 해마다 군고패가 처음 오는 집”이라 했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 그는 이 섬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다.

 
설 차례 상차림, 조상보다 성줏상이 우선
설 전날 보니 이 집에서는 소고깃국에 봄에 잡아 냉동해 둔 우럭조개 살을 넣고 끓였다. 섬 앞에 물이 많이 빠지면 드러나는 넓은 모래톱을 파면 잡히는, 아기 주먹만 한 조개라고 한다. 보통은 소고깃국에 두부만 넣지만 조갯살을 넣으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한 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음식을 지킨 김씨는 내리에서 이렇게 음식을 하는 것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김정매씨가 차례상에 올릴 소고깃국을 끓이고 있다. 소고기 여러 부위와 뼈까지 들어가 국물이 시원하다고 한다.

김정매씨가 차례상에 올릴 소고깃국을 끓이고 있다. 소고기 여러 부위와 뼈까지 들어가 국물이 시원하다고 한다.

김정매씨는 소고깃국에 우럭조개 살을 많이 넣었다. 우럭조개는 봄이면 이 섬 앞 펄에서 많이 잡힌다. 김씨는 소고깃국을 이렇게 끓이는 것은 섬에서 자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김정매씨는 소고깃국에 우럭조개 살을 많이 넣었다. 우럭조개는 봄이면 이 섬 앞 펄에서 많이 잡힌다. 김씨는 소고깃국을 이렇게 끓이는 것은 섬에서 자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국에서 건지를 건져 올리니 소고기와 우럭조개가 섞여있다.

국에서 건지를 건져 올리니 소고기와 우럭조개가 섞여있다.

국이 끓는 동안 떡을 자르는 김정매씨. 넙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국이 끓는 동안 떡을 자르는 김정매씨. 넙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섣달그믐 설 차례를 예전에는 밤늦게 지냈지만 요즘은 초저녁, 심지어 오후 5시에도 지낸다고 한다. 차례상 차림을 보고 싶어서 김씨에게 부탁했다. 15일 오후 5시 20분 “차례상 보려면 얼른 와라”고 전화가 왔다. 안방에 들어가니 제상이 두 개 차려져 있다. 왼쪽에 모든 제수가 올라간 독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다섯 위를 모신 상이 놓였다. 

 
왼쪽은 성주신에게 바치는 성줏상이고, 오른쪽은 조상께 드리는 제상이다. 상을 차릴 때는 성줏상이 우선이다. 민속에서, 성주신은 집을 다스리고 수호하며, 가신(家神) 가운데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믿는다. 이런 차례상 차림 구성과 서열은 설 전날 차례를 지내는 지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떡국은 제상에 올리거나 챙겨서 준비하지는 않는다. 설날 아침에 끓여 먹기도 하지만 필수 음식은 아니다.  
넙도 ‘부두민박식당’ 주인 김정매씨가 준비한 설 차례 음식. 해산물이 푸짐하다.

넙도 ‘부두민박식당’ 주인 김정매씨가 준비한 설 차례 음식. 해산물이 푸짐하다.

설 전날 오후 5시 30분 김정매씨 집 안방에 차려진 차례상. 왼쪽 독상은 성줏상이고, 오른쪽은 조상을 모신 상이다. 이 부근 도서지역에서는 제상에 귤이 빠지지 않았다.

설 전날 오후 5시 30분 김정매씨 집 안방에 차려진 차례상. 왼쪽 독상은 성줏상이고, 오른쪽은 조상을 모신 상이다. 이 부근 도서지역에서는 제상에 귤이 빠지지 않았다.

두 상의 제수는 같았다. 밥, 쇠고기 우럭조개 국, 김, 통 삼겹살 제육, 문어와 갑오징어찜, 소고기 꼬치 산적, 육전·명태전, 햄·게맛살 꼬치전, 갑오징어 튀김과 도넛, 감생이(감성돔)·참돔·삼치 구이, 고구마잎줄기·고사리·도라지 나물, 반건조 민어·농어·우럭찜, 사과·배·감·한라봉(귤), 곶감, 딸기, 콩나물·숙주나물이 차려졌다. 생선은 구이보다 약간 말려서 찐 것을 정성이 더 들어간 것으로 친다고 한다. 양쪽을 비교해보니 나물과 과일은 정해진 위치나 순서가 없었다. 상마다 물 한 컵을 올리고, 술(소주)은 성줏상에 한 잔, 밥을 5그릇 올린 조상들 상에는 2잔이었다.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다.
 
공동체 결속 다지는 신인공식(神人共食)

군고패가 당도하자 김씨와 며느리는 준비한 듯 정화수상과 음식상을 차려 내왔다. 정화수상 쌀에는 5만원권 2장을 봉투에 넣지 않고 꽂았다. 차례에 쓴 음식과 과일을 고루 차린 음식상에는 양주 조니워커 블루 라벨 병이 함께 나왔다. 술 색깔도 영락없이 위스키였다. 마셔보니 약초 침출주였다. 소고기 꼬치 산적도 올라왔다. 몇 점 안 되지만 소 한 마리를 당할머니와 나눠 먹는 신성한 음식이니 양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이 같은 신인공식(神人共食) 의식은 숭배 대상에게 바친 제물을 나눠 먹음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숭배 대상과 생명의 융합을 이룬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이 빠진 내리 마을 앞바다. 보길도 쪽으로 넓은 개펄이 드러난다. 지금 도로인 부분도 길이 나기 전에는 모래톱이었다고 한다.

물이 빠진 내리 마을 앞바다. 보길도 쪽으로 넓은 개펄이 드러난다. 지금 도로인 부분도 길이 나기 전에는 모래톱이었다고 한다.

넙도 남쪽인 내리~방축리 사이 바닷가는 물이 빠지면 넓은 개펄이 열린다. 섬 동쪽도 보길도 방향으로 넓은 개펄이 드러난다. 펄이 넓어 이름이 넙도가 되지 않았을지 생각해봤다.

넙도 남쪽인 내리~방축리 사이 바닷가는 물이 빠지면 넓은 개펄이 열린다. 섬 동쪽도 보길도 방향으로 넓은 개펄이 드러난다. 펄이 넓어 이름이 넙도가 되지 않았을지 생각해봤다.

내리 마을이 깃든 넙도는 마을 앞 동쪽으로 보길도를 지척에 마주하고 있는 섬이다. 면적 4.11㎢, 해안선 길이 12.5km로 크지는 않다. 인구는 내리 408명, 방축리 214명이다(2017년 12월 31일 노화읍 일반현황 기준). 약 170년 전 김씨가 보길도 정자리 우두에 묘를 쓰고 풍수지리상 넙도가 소의 먹이에 해당한다 하여 ‘풀섬’이라 했다 전한다. 지금도 한자로는 풀섬이라는 뜻의 잉도(芿島)라고 쓴다. 그 후 지형이 게를 닮아 ‘넙게’라 부르다가 ‘넙도’가 됐다는 유래가 전한다. 하지만 처음 가본 내 눈에는 ‘게’가 아니라 ‘넓은 개[浦]’라는 뜻이 더 맞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물이 빠지면 내리에서 보길도 방향으로 드넓은 개펄이 열리고, 넙도초·중학교 앞 내리~방축리 사이 해안 개펄도 아주 넓다.

바다에 물이 가득 찬 시각의 내리 마을 앞. 길가에 전복양식에 사용하는 가두리가 널려있다.

바다에 물이 가득 찬 시각의 내리 마을 앞. 길가에 전복양식에 사용하는 가두리가 널려있다.

사람이 살기는 1600년대부터인 듯하다. 공씨가 처음 들어왔으나 살기 어려워 해남으로 나가고 이후 김·이·박·용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 한다. 일찍부터 김 양식을 해 부자 섬이 됐다. 요즘 섬 주민의 주 수입원은 전복·파래 양식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김이 유명했지만 이제는 하지 않고, 대신 파래를 많이 한다. 잘되면 파래로 한 해 1억~2억원의 소득을 올린다. 가구 절반은 생업을 하고 나머지는 활동능력이 없어 어업권을 위임한다. 위임 대가는 1년에 100만원 정도다.



비용 1700만원…재정·노동력 있어야 전승 

넙도 내리의 당제와 설 차례를 돌아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국에서 드물게, 크지 않은 섬에서, 오랜 세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큰 소 한 마리를 바쳐 당제를 지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좋게든 나쁘게든 결정적 요인의 경제력 아닐까. 예전에는 가난해서 쇠고기를 1년에 한 번이라도 먹어 보자는 의욕이 모여 큰 제물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풍속은, 섬이 부자가 된 덕분에 계승이 가능했다. 큰 제물을 준비하려면 돈과 젊은 인력이 필요하다. 넙도에는 그게 다 있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건대 언제까지 전승될지에 대해서는 선뜻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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