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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땀’ 보고 싶은데, 아직도 ‘금’만 보는 빙상연맹

중앙일보 2018.02.22 00:54 종합 15면 지면보기
한국의 박지우·노선영·김보름(왼쪽부터)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7~8위전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선수들은 서로 밀어주며 경기를 펼쳤으나 3분07초30으로 8개 팀 중 8위를 했다. 예선에서 마지막에 들어온 노선영의 기록보다 3초54가 뒤졌다. [연합뉴스]

한국의 박지우·노선영·김보름(왼쪽부터)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7~8위전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선수들은 서로 밀어주며 경기를 펼쳤으나 3분07초30으로 8개 팀 중 8위를 했다. 예선에서 마지막에 들어온 노선영의 기록보다 3초54가 뒤졌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예선 경기는 대한민국 빙상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팀’으로 달려야 할 노선영(30·콜핑), 김보름(25·강원도청), 박지우(20·한국체대)가 ‘따로국밥’ 레이스를 펼쳤다. 영국 BBC는 “노선영은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흘렸지만 김보름과 박지우는 그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또 캐나다 더 글로브앤드메일은"팀동료를 배신한 한국 스케이트 선수들의 실망스러운 순간”이라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도 “50만 명 넘는 사람이 청와대 청원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왕따 논란’을 제기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선수 사이의 갈등’, 그리고 ‘성적 지상주의’다.
 

‘왕따 논란’ 여자 팀추월의 교훈


팀원 희생 강요, 선수 간 갈등 불러
 
◆선수 간 감정싸움= 김보름과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은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레이스 막판 노선영이 뒤로 빠진 건 사전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선영은 인터뷰를 통해 “뒤로 처지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김보름과 노선영 사이에 감정 대립이 있다는 것이다. 두 선수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지난해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는 함께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 파벌 다툼에서 비롯됐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다. 3명 모두 한국체대 동문이다.
 
문제는 노선영이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 착오로 평창올림픽 출전이 불발되면서 시작됐다. 노선영은 선수촌에서 퇴촌당한 뒤 “다시는 국가대표가 되지 않겠다. 빙상연맹이 날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훈련장이 달라 팀추월 훈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노선영의 말은 일부만 사실이다. 남자부 이승훈(대한항공), 정재원(동북고)과 여자부 김보름은 태릉스케이트장이 아닌 한국체대에서 훈련했다. 메달 확률이 높은 매스스타트 출전 선수들이 코너링 비중이 큰 쇼트트랙 훈련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국체대에서 특별 과외를 한 것이다. 팀추월만 바라보던 노선영은 올림픽 출전이 불발되자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별도 훈련을 한 선수들이 특별대우를 받은 것처럼 주장했다. 해당 선수들의 감정도 상했다. 하지만 노선영의 말처럼 팀추월 훈련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월드컵 등을 앞두고는 팀추월 훈련을 했다.
 
선수 간의 감정싸움은 어느 종목에서나 있다. 쇼트트랙 대표팀 내에도 갈등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양보하고 화합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팀추월’ 대표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별도 훈련은 효율인가 특혜인가= 노선영은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주도로 셋(이승훈·정재훈·김보름)이 따로 훈련한다. 메달을 딸 선수들을 미리 정해 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전 부회장은 ‘쇼트트랙의 대부’다. 1987년부터 15년간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09년엔 부회장직을 맡았다. 그 사이 한국 쇼트트랙은 올림픽 금메달 21개를 따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부진을 이유로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던 그는 지난해 2월 복귀했다.
 

파벌싸움 논란 연맹은 수술 불가피
 
서먹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노선영(왼쪽)과 김보름. [오종택 기자]

서먹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노선영(왼쪽)과 김보름. [오종택 기자]

특별 훈련은 ‘성적’만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선택이다. 확률이 높은 종목에 집중하고, 낮은 종목의 연습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할 수 있다. 촌외 훈련을 하는 선수가 3명만은 아니다. ‘빙속 여제’ 이상화도 홀로 캐나다와 독일에서 훈련을 했다. 하지만 이런 점에 대해선 어떤 비판도 나오지 않는다. ‘메달 획득’이란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빙상연맹은 수술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도 해당 선수가 올림픽 출전자격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노선영처럼 소외받는 선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파벌 논란’이다. 이승훈과 김보름은 한국체대 출신이다. 코칭스태프도 김선태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체대 출신이다. 쇼트트랙에서도 특정 선수만 따로 불러 외부에서 ‘모의 경기’ 훈련을 실시했는데 역시 한국체대 출신 선수가 중심이 됐다. ‘대한민국의 금메달’이 아닌 ‘한국체대의 금메달’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반전명규파'가 의도적으로 빙상연맹 내부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연맹 내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다. 이래저래 빙상계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밀어주기, 압축성장의 어두움=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팀 스케이팅’ 덕분이다. 수년 전만 해도 쇼트트랙 대표팀은 에이스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다른 선수가 외국의 경쟁자를 막아주는 전략도 불사했다. 메달 획득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 것이다. 그 이후 다른 나라들도 따라할 정도로 당시엔 획기적인 전술이었다.
 
문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 빙상인은 “코칭스태프가 금메달이 제일 유력한 선수를 정한 뒤 밀어주라고 했다.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때로는 특정 선수를 위해 규정을 바꾸거나 선발전 방식을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의 대립이 격화됐다.
 

외신도 “한국 팀추월 실망스러워”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팀’이나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한 빙상 관계자는 “이번 ‘노선영 사태’를 계기로 국민의 인식도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왕따 논란’으로 특정 선수를 비난하는 건 쇠고기(금메달)만 좋아하던 사람들(국민)이 잔인한 도축 과정(빙상연맹과 훈련 방식)을 지켜본 뒤 욕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21일 폴란드와의 7~8위 팀추월 결정전에 앞서 선수들은 논란을 의식한 듯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레이스 도중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밀고 끌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예선 때보다 3초54나 뒤진 기록(3분07초30)으로 골인, 8위에 그쳤다. 경기 후 선수들은 공동취재구역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퇴장했다.
 
오늘의 올림픽(22일)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준준결승·준결승·결승
(황대헌·서이라·임효준), 오후 7시
여자 1000m 준준결승·준결승·결승
(김아랑·최민정·심석희), 오후7시14분
남자 5000m 계주 결승, 오후 9시·스노보드
 
●아이스하키
여자 결승(캐나다-미국), 오후 1시10분
 
●알파인스키
남자 회전 결선(정동현), 오후 1시30분
여자 복합 회전 결선
(린지 본, 미케일리 시프린), 오후 3시
 
●바이애슬론
여자 계주 4x6㎞ 결선, 오후 8시15분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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