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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그리고 물결 속에 숨긴 시진핑의 ‘비수’

중앙일보 2018.02.21 19:00
설엔 덕담을 한다. 가족이 모여 구원(舊怨)을 덮고 미움도 덮고 서로를 격려한다. 새해 새출발, 그리고 만사형통을 빌고 또 빈다. 그게 설의 문화이고 전통이며 미덕이다. 중국의 춘제(春節·설) 역시 그렇다. 어지간해서는 상대에게 싫은 소리, 부담가는 소리 안 한다. 그런데 올 춘제 중국은 좀 다르다. 덕담이 덕담같지 않고 살벌한 경고처럼 들린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덕담이 그렇다.
춘제 단배사를 하는 시진핑 주석 [사진 신화망]

춘제 단배사를 하는 시진핑 주석 [사진 신화망]

춘제를 이틀 앞둔 지난 2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국무원(행정부) 단배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 시 주석이 춘제 단배사를 했다. 말하자면 중국 전통 음력설 덕담이자 신년사였다. 그 덕담엔 온통 당과 ‘중국 우선주의’로 가득했다.  

시진핑, 춘제 단배사에서 '당 우선주의' 강조
충성과 의리를 상징하는 개를 통해 교묘히 주문

 
우선 그는 개해 개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중국 전통 문화에서 개는 충성스런 동반자를 의미한다. 충(忠)과 의(義), 그리고 평안(平安)을 상징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고대부터 개를 금견(金犬), 옥견(玉犬), 의견(義犬)이라고 불렀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해석이다. 그래서 설날 자연스런 덕담인 줄 알았다. 한데 시 주석은 이 말을 하기 전에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을 강조했다.  
 
당과 군, 그리고 전국 모든 민족의 단합을 외쳤다. 종엄치당(從嚴治黨)도 거론했다. 모두가 지난해 19대 당대회를 통해 당장(黨章·당헌)에 삽입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녹음기 처럼 반복된 말이다. 그래서 충과 의를 상징한다는 시 주석의 개에 대한 해석은 당에 대한 인민과 군의 충성과 의(義)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시진핑 사상의 핵심인 종엄치당, 즉 당에 대한 엄격한 관리,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당이 국가와 인민을 통치하는 ‘당 우선주의’ 를 교묘하게 개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올해 중국 공산당의 권력 장악과 통치가 더 거세지고 정치(精緻)해질 것이라는 시사다. 이미 민영 기업은 물론 외자 기업까지 공산당 지부 설립을 압박하고 있는 중국이다.
개의 충성 이미지를 정치에 활용하는 중국 [사진 언스플래쉬]

개의 충성 이미지를 정치에 활용하는 중국 [사진 언스플래쉬]

단배사 말미에 시 주석은 국제 사회를 향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시 한 소절을 읊었다.  
“향기 가득한 숲 속엔 새순이 낙옆을 밀치고(芳林新葉催陳葉) 흐르는 물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덮치네(流水前波讓後波)”
당나라 천재 시인이자 철학자인 유우석(劉禹錫·772~842)이 친구인 백거이(白居易·772~846)에게 보낸 답시(答詩) 중 하나다. 시 주석은 이 소절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했다. “중국은 시대를 좇아가다 시대를 영도하는 위대한 추월에 성공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근대 서구 열강에 당한 치욕을 떨치고 일어나 욱일승천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시에서 말한 낙엽과 앞물결은 미국이고 새순과 뒷물결은 중국이다. 그는 덕담(?)까지 동원해 미국을 향해, 그리고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 우선주의’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날 단배사에서 “중국호라는 거함은 이제 새로운 수역으로 접어들었다. 근대 이후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던 중화민족이 백절불굴의 의지로 분투해 마침내 일어섰고 부유함에서 강함으로 비상을 시작했다. 4억의 가정과 13억 인민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 중화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할 것이다”라고 했다. 올해는 완력 과시가 아니라 필요하면 온몸의 근육도 활용하겠다는 국제 사회를 향한 참 겁나는 경고나 다름없다.
중화부흥을 노리는 중국 [사진 바이두 백과]

중화부흥을 노리는 중국 [사진 바이두 백과]

물론 시 주석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의 학자들도 중국 우선주의, 중국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맞장구를 친다. 대표적인 인물이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이다. 그는 2013년 펴낸 『역사의 관성(歷史的慣性)』에서 2023년 세계는 중국과 미국의 양극체제로 재편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것은 역사의 관성이라는 논리를 폈다. 구체적인 숫자도 제시했다.현재의 발전 속도라면 2023년 중국의 GDP는 17조 달러에 달해 미국의 GDP(19조 달러)에 육박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중심도 서구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유엔 등 미국 중심의 국제 기구의 역할이 급속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중국 주도의 왕도 정치가 현재의 국제 질서를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고대 왕도 정치의 핵심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가 간 계약으로 패권국의 ‘이신작측(以身作則)’, 즉 솔선수범을 중시한다. 중국이 국제 평화를 위해 솔선수범할 것이라는 얘기인데 개해에 세계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설날 덕담에도 중국의 비수가 횡행하는 개의 해가 밝았다. 개의 청각과 후각으로 비수를 알아채지 못하면 한국에겐 낭패다. 사드 문제도 북핵 문제도 중국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곱씹고 또 곱씹어 그 비수에 당하지 않는 개해가 됐으면 좋겠다.
 
베이징 차이나랩=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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