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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김연아도 겪었다…피겨 선수들의 목숨 건 다이어트

중앙일보 2018.02.17 00:05
“체중조절 때문에 먹고 싶은 걸 다 먹을 수가 없다” “빵을 좋아하는데, 마음껏 먹어보고 싶다.”
현역 선수시절 김연아가 언론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10 밴쿠버 겨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중앙포토]

2010 밴쿠버 겨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중앙포토]

 
피겨스케이팅은 중력과의 싸움
빙상에서 고난도의 기술을, 그것도 가볍고 우아하게 연기해야 하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과 다이어트는 어찌보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피겨스케이팅의 주요 기술 중 하나인 점프는 중력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가벼울수록 점프는 물론, 스핀이나 턴 등 연기하기가 쉽고 아름답다. 체중이 무거울 경우 넘어졌을 경우 부상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
적정 체중 유지를 위해 엄격하게 식단을 관리해야 하는 피겨선수들에게 거식증 등 식이장애는 흔한 ‘직업병’이다. 
체중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선수들은 시리얼과 요구르트, 과일 등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체중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선수들은 시리얼과 요구르트, 과일 등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맞춰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오랜 다이어트로 인한 섭식장애와 영양부족 실태를 보도했다. 사례로 든 선수가 미국 대표로 평창에 온 아담 리폰(29)이다. 평창 올림픽 피겨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확보한 그는 16일 치러진 쇼트 프로그램에서 87.95점으로 7위를 기록했다. 
 
과도한 다이어트로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 지난해 부상을 당한 리폰은 영양사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식사를 시작헀다고 한다.

과도한 다이어트로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 지난해 부상을 당한 리폰은 영양사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식사를 시작헀다고 한다.

아담 리폰, 하루 식빵 3장으로 버티기도
리폰은 항상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심적 압박을 받아왔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서 근육이 붙은 하체가 피겨 선수로는 과도하게 비대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6년에는 하루 통틀어 먹은 음식이 통밀 식빵 3장과 커피뿐이었다고 한다. 식빵에는 버터도 바르지 않았다.
리폰 선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지러워진다”고 말했다. 
 
여성 선수들의 다이어트로 인한 식이장애는 더 심각하다.
섭식장애로 빙상을 떠난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섭식장애로 빙상을 떠난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던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는 섭식장애로 은퇴를 선언했고, 미국 피겨계의 바비인형으로 불린 그레이시 골드는 섭식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김연아, 아사다 마오와 함께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했던 일본의 스즈키 아키코는 섭식장애와 우울증을 극복하고 현역에 복귀한 케이스다.  
한때 체중이 32kg까지 줄어들었으나 재기해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의 스즈키 아키코.

한때 체중이 32kg까지 줄어들었으나 재기해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의 스즈키 아키코.

로이터 통신도 지난달 스즈키 선수의 예를 들며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섭식장애 문제를 지적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00년대 초 데뷔한 스즈키는 점프가 성공적으로 뛰어지지 않자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코치의 지적을 받았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거식증에 걸렸고, 두달 동안 체중의 3분의 1이 빠졌다고 한다. 161cm 키에 32kg까지 체중이 떨어지자 치료를 받았고, 수년간의 재활 끝에 2008년 링크로 복귀했다.  
 
이렇듯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코치와 심사위원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스스로 더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 생활하고 있다.
 
1980년대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

1980년대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

80년대 브라이언 오서와 라이벌 관계였던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 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보이타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심사위원들에게 더 체중을 줄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건강하게 뺀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코치도 혹독한 다이어트를 요구한다고 한다.  
 
옛소련팀의 코치 출신으로, 아담 리폰을 지도하고 있는 라파엘 아르투니안은 과거 선수들에게 “살쪘다. 살쪘다”며 수시로 체중을 줄일 것을 독려했다고 한다. 아르투니안은 이런 혹독한 다이어트가 선수들에게 결코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평창올림픽에 출전중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19)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포츠는 자기관리”라며 “하루하루 자신을 컨트롤해야 한다. 자칫 약해지면 자기비하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조니 위어, 은퇴 후에도 하루 한끼
2018 평창올림픽에서 미국 NBC 방송의 피겨스케이팅 해설을 맡은 조니 위어(오른쪽). 왼쪽은 전 미국 피겨 챔피언인 타라 리핀스키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미국 NBC 방송의 피겨스케이팅 해설을 맡은 조니 위어(오른쪽). 왼쪽은 전 미국 피겨 챔피언인 타라 리핀스키다.

이런 선수들의 식사와의 전쟁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습관처럼 남아있다고 한다. NBC 해설자로 평창올림픽에 참가중인 전 미국 대표인 조니 위어는 지금도 하루에 한끼, 그것도 오후 5시 이전에 식사를 마친다고 한다. 이밖에는 커피 한잔이 전부다. 조니 위어는 NYT에 자신의 최고의 호사는 한 조각의 다크 초콜릿, 혹은 캐비어(철갑상어알) 한 스푼이라며 “이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담 리폰 선수가 식생활을 바꾼 건 2017년 다리 골절을 겪으면서다. 영양사의 도움을 받아 자연식과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식단을 바꿨다는 리폰은 “내 몸이 이렇게 지쳐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식생활을 바꿈으로써 음식이 내 몸의 연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에서 미국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남자 싱글 경기에도 출전하고 있는 아담 리폰.

평창 올림픽에서 미국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남자 싱글 경기에도 출전하고 있는 아담 리폰.

 
전미섭식장애협회(NEDA)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 3000만 여명이 지금까지 섭식장애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다. 이중 여성이 2000만명에 달한다.
김나현 기자 respi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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