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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등심·사우나에 푹 빠진 1000만 달러 사나이, 숀 화이트

중앙일보 2018.02.14 00:33 종합 14면 지면보기
개회식에 참석해 미국대표팀 동료 거스 켄워디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숀 화이트 인스타그램]

개회식에 참석해 미국대표팀 동료 거스 켄워디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숀 화이트 인스타그램]

출발선에서 깊은숨을 들이쉰 숀 화이트(32·미국)가 힘차게 하프파이프로 질주를 시작했다. 반원통형 슬로프를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동안 총 다섯 번 시도한 점프는 모두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점프 평균 높이는 5.7m. 출전 선수 전체 평균(4.5m)에 비해 1.2m나 높았다. 막판 두 번의 점프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더블 맥 트위스트 1260(손으로 보드를 잡은 채 몸을 비틀어 세 바퀴 반을 회전하는 기술)’을 잇달아 성공시킨 그는 연기를 마친 뒤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차분하고 여유 있는 동작에서 ‘하프파이프의 왕’다운 자신감과 품위가 느껴졌다. 전광판에 아로새겨진 숫자는 98.50. 만점에 1.5점이 모자랐다. 그는 두 차례나 100점 만점을 받은 적이 있어 ‘미스터 퍼펙트’로 불린다.
 
13일 평창 휘닉스 스노우 파크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프리스타일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예선 1·2차전은 ‘숀 화이트 우승 전야제’ 같았다. 예선 1차에서 93.25점으로 전체 2위를 기록한 화이트는 예선 2차에서 98.50점을 기록해 선두를 되찾았다. 고난도의 화려한 기술로 라이벌 스코티 제임스(호주·96.75점), 히라노 아유무(일본·95.25점)를 제압했다. 자신의 통산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자신의 스탭들과 함께 한국전통문화 체험에 나선 숀 화이트(왼쪽에서 두 번째). 스노보드의 제왕답게 조선시대 왕족의 복장을 선택했다. 송지훈 기자

자신의 스탭들과 함께 한국전통문화 체험에 나선 숀 화이트(왼쪽에서 두 번째). 스노보드의 제왕답게 조선시대 왕족의 복장을 선택했다. 송지훈 기자

화이트는 지난해 10월 훈련 도중 높이 점프했다가 중심을 잃고 머리부터 떨어졌다. 얼굴이 찢어져 62바늘을 꿰매야 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공포심은 남았다. 화이트는 “부상으로 인한 공포를 없앨 순 없다.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라면서 “부담감을 갖지 않고 매 순간을 즐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선수단은 평창올림픽 대회 기간 중 선수촌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선에 위치한 하이원리조트 한 동을 통째로 빌려 선수단 숙소로 쓰고 있다. 설상 종목 선수들의 훈련을 위해 미국 선수 전용 슬로프 한 면을 함께 확보했다. 전문 경호업체를 통해 숙소 주변에 철통 보안 시스템도 갖췄다. 대회 기간 중 혹시나 발생할 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화이트는 미국 선수단과의 ‘동거’를 거부했다. 대신 경기장소인 휘닉스 스노우파크 내 콘도 세 채를 빌려 이른바 ‘캠프 화이트’를 만들었다. 삼엄한 경비와 통제된 생활 대신 평창 생활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그리고 이동 시간을 줄여 불필요한 체력 낭비를 막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휘닉스 스노우파크 내 올림픽 경기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휴식을 즐기는 숀 화이트. [숀 화이트 인스타그램]

휘닉스 스노우파크 내 올림픽 경기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휴식을 즐기는 숀 화이트. [숀 화이트 인스타그램]

지난 8일 숙소에 입주한 직후부터 ‘화이트의 유쾌한 평창 탐구생활’이 시작됐다. 짐을 풀자마자 화이트가 간 곳은 숙소 인근 D생고기 전문점이었다. 식당 관계자는 13일 중앙일보에 “평창에 온 이후 화이트와 관계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온다”면서 “화이트는 늘 신선한 생등심을 주문해 한국식으로 능숙하게 구워 먹는다. 외국인들이 대개 1인분만 먹는 것과 달리 종종 ‘사장님 1인분 더’를 외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열린 개회식도 참석했다. 추운 데 오래 있으면 아플지도 모른다고 스태프들이 만류했지만 “괜찮다. 재미있게 즐기다 오겠다”며 강행했다는 후문이다. 화이트는 개회식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원봉사자, 다른 종목 선수들과 사진을 찍었다.
 
유명 수제 버거집을 직접 찾아 손님과 사진도 찍었다. 숀 화이트는 언제 어디서든 팬들과 활발히 교류해 인기가 높다. [사진 송영기씨 제공]

유명 수제 버거집을 직접 찾아 손님과 사진도 찍었다. 숀 화이트는 언제 어디서든 팬들과 활발히 교류해 인기가 높다. [사진 송영기씨 제공]

‘평창에 끝내주는 수제 햄버거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직접 먹어보기도 했다. D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송영기 씨는 “숀 화이트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잠깐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세상이 느리게 움직였다”면서 “식사하는 동안 알아본 팬들이 몰려들었는데, 불쾌한 내색 없이 한 명 한 명 사인해주고 사진 찍어주며 친절하게 응대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식 사우나 문화에도 푹 빠졌다. 경기장에서, 트레이닝장에서 운동을 마친 뒤 사우나를 찾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숀 화이트와 사우나에서 마주쳤다는 한 평창 주민은 “한국 사람처럼 냉탕과 온탕을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최고 스타 숀 화이트도 경기장에 입장할 땐 검문검색을 피할 수 없다. 왼쪽 모니터에 숀 화이트의 신상등록정보가 선명히 보인다. 송지훈 기자

평창올림픽 최고 스타 숀 화이트도 경기장에 입장할 땐 검문검색을 피할 수 없다. 왼쪽 모니터에 숀 화이트의 신상등록정보가 선명히 보인다. 송지훈 기자

화이트는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스노보드 스타로, ‘설상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한 해 수입 1000만 달러(108억원)로 평창올림픽 참가 선수 중 몸값이 가장 높다. 이런 화이트가 혼자 움직이지는 않는다. ‘캠프 화이트’에는 JJ 토마스 코치와 훈련 파트너인 17살 스노보드 유망주 토비 밀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언론담당관과 물리치료사도 가까운 거리에 24시간 대기한다.
 
화이트는 평창올림픽에 우주복과 비슷한 디자인의 경기복을 착용한다. 미국 스노보드대표팀의 의류협찬사인 버튼이 예전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옷이다. 이와 관련해 버튼은 “화이트를 비롯한 미국 스노보드 대표팀 선수들이 평창에서 새로운 기술과 도전정신으로 선구자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평창=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훈련장에서 만난 한국 스노보드대표팀 김호준(맨 오른쪽)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사진 찍은 숀 화이트(맨 왼쪽). 가운데는 화이트의 코치 JJ토머스. [김호준 인스타그램]

훈련장에서 만난 한국 스노보드대표팀 김호준(맨 오른쪽)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사진 찍은 숀 화이트(맨 왼쪽). 가운데는 화이트의 코치 JJ토머스. [김호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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