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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뤄하오차이 중국 중한우호협회 명예회장

중앙일보 2018.02.13 17:28
 
뤄하오차이(羅豪才·사진 오른쪽 두번째) 전 중한우호협회 회장이 지난 2012년 8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수교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귀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이규형 당시 주중 한국대사,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 뤄 전 회장, 양제츠 당시 중국외교부장. [사진=중앙포토]

뤄하오차이(羅豪才·사진 오른쪽 두번째) 전 중한우호협회 회장이 지난 2012년 8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수교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귀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이규형 당시 주중 한국대사,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 뤄 전 회장, 양제츠 당시 중국외교부장. [사진=중앙포토]

중한우호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중국의 저명한 법학자 뤄하오차이(羅豪才) 전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이 12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숨졌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84세.
 
뤄하오차이 부주석은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창립된 중한우호협회 회장을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역임했다. 지난 2007년 주중 한국대사관과 중국 인민 대외우호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수교 1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중국 정부를 대표해 축사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수교 20주년 기념식에도 상무위원급인 시진핑(習近平) 당시 국가부주석과 함께 참석했다(사진).
 
1934년생인 뤄하오차이 부주석은 19세 때 가족과 미얀마를 거쳐 싱가포르로 떠난 화교 출신이다. 어린 시절 일본 제국주의점령하의 싱가포르에서 생활했다. 1951년에는 싱가포르 영국 식민당국에 체포돼 15개월간 수감생활을 겪기도 했다.
 
1956년 베이징대 법학과에 응시 합격하면서 법학자 생활을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했던 뤄 부주석은 졸업 후 당시 베이징대 법학과에 개설된 동남아 법률과정 조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강사→교수→부학과장→부총장을 거치며 법학자로 활약했다. 1995년 6월 뤄 부주석은 한국의 대법원 격인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에 취임해 행정심판 업무를 총괄했다. 그는 당시 중국 대법관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치공당 당수로 소수 정당인 민주당파 인사였다.
뤄하오차이(羅豪才·사진 오른쪽 두번째) 전 중한우호협회 회장이 지난 2012년 8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수교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귀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이규형 당시 주중 한국대사,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 뤄 전 회장, 양제츠 당시 중국외교부장. [사진=중앙포토]

뤄하오차이(羅豪才·사진 오른쪽 두번째) 전 중한우호협회 회장이 지난 2012년 8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수교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귀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이규형 당시 주중 한국대사,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 뤄 전 회장, 양제츠 당시 중국외교부장. [사진=중앙포토]

 
뤄 부주석은 중국에서 ‘연성법(soft law)’ 이론을 개척한 법학가다. 2005년 베이징대 법학원에 ‘연성법 연구센터’ 성립 당시 명예 주임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인권 연구에 주력했다. 2007년 중국 인권연구회 초대 회장에 당선됐다. 그는 중국에서 인권 분야의 교육 강화와 인권 관련 입법 업무에 힘써왔다.
 
뤄 부주석의 제자인 선쿠이후이(沈巋回) 베이징대 법학 교수는 “뤄 선생님은 학자로서, 베이징대 법학과 부학과장 겸 베이징대 부총장으로서,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으로서, 중국 치공당 중앙주석으로서, 전국 정협부주석으로서, 중국 인권연구회 회장으로서 일생의 매 단계마다 모두 중국의 법학 이론과 대학교육, 법치 사업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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