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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뛰어넘은 정, 김선태-윤철 남북 쇼트트랙 감독

중앙일보 2018.02.13 10:13
한국 쇼트트랙 코칭 스태프. 조항민 코치, 변우옥 장비담당 코치, 김선태 감독(왼쪽부터). 오종택 기자

한국 쇼트트랙 코칭 스태프. 조항민 코치, 변우옥 장비담당 코치, 김선태 감독(왼쪽부터). 오종택 기자

20년 전의 정(情)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만난 한국 쇼트트랙 선수 김선태(42)와 북한 선수 윤철(45). 두 사람은 평창올림픽에서 나란히 감독이 되어 만났다.
 

98 나가노올림픽에서 선수로 만난 인연
20년 만에 남북 감독으로 재회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첫날 경기가 열리기 전인 8일과 9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북한 대표팀과 함께 훈련했다. 당초 스케줄상으론 두 팀의 훈련 일정이 엇가렸지만 이틀 연속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북한팀이 8일 오전 한국 훈련시간에 함께 해도 되느냐고 물어왔다"고 전했다. 선수들은 함께 계주 밀어주기를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연습했다. 북한 정광범(17)이 한국 김예진(19)에게 "못 생겼다"는 농담을 던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감독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가진 훈련에서 북한 정광범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릉=뉴스1]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감독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가진 훈련에서 북한 정광범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릉=뉴스1]

 
북한은 9일에도 오전에 영동대 연습 링크에서 훈련을 소화한 뒤 추가로 한국선수들과 달렸다. 사실 북한은 최은성(26)이 지난 2일 첫 연습에서 다쳐 제대로 훈련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3일 훈련에선 정광범 혼자 달리고, 윤철 감독이 연습을 도와주기도 했다. 김선태 감독은 "원래 잘 알던 분이다. 나가노 올림픽에 함께 나갔다. (8일 훈련 결과가)좋았는지 또 함께 하자고 하기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남북을 떠나서 아는 사이니까 부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기회가 흔치않다.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주고 우리가 도움 받을 게 있으면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게 올림픽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과 윤 감독의 인연은 20년 전 시작됐다. 김선태 감독은 국가대표 시절 김동성·채지훈 등과 함께 98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했다. 윤철 감독은 당시 북한 선수단의 기수로 나서기도 했으나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다. 당시 2관왕에 올랐던 전이경 SBS 해설위원은 "그때는 지금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훈련도 같이 하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 전했다. 합의 끝에 공동응원은 결렬됐지만 남북 응원단이 한데 섞여 태극기와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하기도 했다. 
북한 쇼트트랙 대표 정광범(왼쪽)과 윤철 감독(오른쪽 둘째)이 6일 강릉선수촌 내 선수식당에서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정광범 손에 들린 맥도날드 종이 팩이 눈길을 끈다. [강릉=연합뉴스]

북한 쇼트트랙 대표 정광범(왼쪽)과 윤철 감독(오른쪽 둘째)이 6일 강릉선수촌 내 선수식당에서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정광범 손에 들린 맥도날드 종이 팩이 눈길을 끈다. [강릉=연합뉴스]

 
20년 전 선수로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재회는 강릉에서 한 번 더 이뤄졌다. 북한은 올해 월드컵 3,4차 대회에 불참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지만 남북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합의에 따라 와일드카드로 평창에 올 수 있게 됐다. 김선태 감독은 "사실 특별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가정은 어떻게 꾸렸는지, 돈은 잘 버는지, 건강은 어떤지' 같은 일상적인 얘기다.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얘기도 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드러나는데서 친한 모습을 보이긴 어렵지만 선수촌 안에선 남북 선수들도 편하게 지낸다. 식사도 같이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세 살 차다. 취재진이 "윤 감독의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줄 알았다"고 말하자 김 감독은 "그 형은 정상적인데 내가 좀 동안이다"라며 웃기도 했다.
김선태 감독의 국가대표 시절. [중앙포토]

김선태 감독의 국가대표 시절. [중앙포토]

 
사실 나가노 올림픽은 김선태 감독에게 아픈 과거다. 무릎 부상으로 정작 경기엔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듬해 강원 아시안게임 5000m 계주 동메달을 끝으로 은퇴했다. 김 감독은 "선수는 감이라는 게 있다.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4년간 빙판을 떠나 일반 회사를 다니고, 홍대 앞에서 주점 영업을 하기도 했다. 2003년 '1호 장비담당'을 맡은 김 감독은 해외팀 코치를 지내다 지도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까지 맡았다. 2015년 11월엔 대장암 진단을 받아 6개월간 대표팀을 떠나기도 했다. 김선태 감독은 "많은 국민들이 쇼트트랙을 사랑해주시는 걸 느낀다. 많은 이들에게 선수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저는 그 선수들에게 기억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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