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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부 눈치 보느라 이름도 마음대로 못 바꾸는 전경련

중앙일보 2018.02.13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김도년 산업부 기자

김도년 산업부 기자

지난 9일 강원도 용평리조트 그린피아콘도 1층 그랜드볼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올림픽 사전 리셉션에는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장·중견기업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 수장들도 초대됐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곳도 있었다. 지난해 ‘최순실 사태’에 휘말린 전국경제인연합회다. 전경련은 지난달 2일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도 참석이 배제됐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행보는 전경련을 사실상 경제단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리셉션, 신년 인사회에
잇따라 초대받지 못하자 잔뜩 긴장
행여 해체 여론 커질까 나서기 꺼려
“잘못 반성하고 쇄신할 기회 줘야”

정부는 전경련의 법인 설립을 취소할 심산인가, 아니면 잠시 과오를 충분히 반성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길들이려는 것인가. 짐작하기 어려운 정부의 태도에 전경련 쇄신안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어버이연합의 관제 데모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금을 회원사로부터 모금한 혐의가 드러난 전경련은 단체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는 쇄신안을 추진했다. 재벌 등 특정 ‘경제인’만이 아니라 국내 기업 전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였다.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이어졌다. 임직원 급여는 30% 줄었고, 직원 숫자도 60%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오는 13일 열리는 전경련 총회에선 대표적인 쇄신안 중 하나였던 명칭 변경안은 회의 안건에 오르지도 않게 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원사들과 학계 등에 의견을 구한 결과, 명칭 변경보다 내실을 다지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표면적 이유는 “회원사의 반대”인 셈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전경련 회원사 관계자는 “경제단체 명칭을 바꾸려면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전경련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 기조상 승인받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름 변경조차 승인받지 못하면 ‘전경련 해체’ 여론도 더욱 커질 수 있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라리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정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든 부정부패에 가담한 사람이 있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처벌하되 기업을 해체하진 않는다”며 “전경련도 해산할 생각이 아니라면 경제단체의 지위를 인정하고 쇄신할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경련 명칭 변경안을 심사하는 정부는 전경련이 이와 관련된 실무 협의를 해온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완기 산업부 산업정책과장은 “전경련 측 문의도 없었고 관련 안건이 제출되지도 않아 특별한 의견이 없다”며 “명칭 변경안이 제출되면 그때부터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잇따른 ‘전경련 패싱(Passing)’으로 사기가 크게 떨어진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스스로 약속한 쇄신안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재계의 ‘맏형’ 대우를 다시 받기란 요원하다. 전경련과 소통을 하지 않는 정부를 원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잘못은 반성하되 다시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김도년 산업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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