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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일본 사회 지배하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

중앙일보 2018.02.09 18:01
 
 『공기의 연구』. 일본에서 1977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일본론이다.

『공기의 연구』. 일본에서 1977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일본론이다.

공기의 연구: 일본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하여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박용민 옮김, 헤이북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joongang.co.kr
 
일본인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KY’라는 단어가 있다. “공기를 읽지 못한다(쿠키 요메나이)”는 뜻의 이 단어는 2007년 유행어대상에 오른 신조어다. ‘눈치가 없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의 뜻을 갖는 KY는 일본사회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 중 하나다.  

 
이 ‘공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바로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1921~1991)다. 명문 아오야마가쿠인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평론가다. 평생 서점을 운영하며 일본사회와 문화, 일본인을 연구하며 평생 저술활동에 집중했다. 지금도 일방적인 외교공세나 기업에 대한 탄압이 벌어질 때면 신문 해설기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논리가 바로 야마모토의 ‘공기’이론이다. 1977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일본을 이해하는데 유효한 일본론으로 꼽히는 이유다.  
 
야마모토는 공기를 “매우 강력하고 거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판단의 기준’으로,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거역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이라고 규정한다.  객관적 정세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공기’에 순응해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결국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니 “일본인은 논리적 판단의 기준과 공기적 판단의 기준이라는 이중기준에 근거해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기’가 사회를 지배한 전형적인 사례로 든 것이 태평양전쟁이다. 대학졸업 후 하급장교로 참전한 저자가 보고 느낀 일본의 패전 과정은 이렇다. 전시 중 군 수뇌부의 판단은 과학적인 수단과 논리적인 분석 모두를 무시한 ‘공기’에 의해 결정됐다. “전함 야마토(大和) 는 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냉담한 공기를 읽은 군 수뇌부는 제공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무리한 출격을 결정했고, 당시 일본 해군의 상징이던 ‘야마토’는 힘을 써보기도 전에 미군에 의해 폭침됐다.  
 
저자는 “공기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강력한 규범이 되어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현상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공기’의 지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저자에 따르면 ‘공기’를 깰 수 있는 건 바로 ‘물’이다. ‘찬물을 끼얹다’는 말이 똑같이 일본어에도 있다. 저자는 잘못된 움직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고, ‘찬물을 끼얹어’ 그 성질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까발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자원인 ‘공기와 물’의 관계를 보완하는 일본의 독특한 상황 논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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