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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민생법안 스스로 발목잡은 집권당에 정쟁 판 키운 제1야당

중앙일보 2018.02.08 06:00
제천·밀양 화재참사 이후 신속한 처리가 요구됐던 소방안전 관련 법안, 소득이 없는 대졸자의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유예하도록 하는 법안, 현장실습생에게 부당행위를 하는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 학교에서 카페인 함유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
 
모두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심의 후 처리하기로 했던 민생 법안들이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하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붙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예정된 87개의 안건은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계류됐다.  
 
문재인 정부의 민생·개혁을 위한 법안 처리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집권 여당이었다.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가 시작하자 마자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권성동 법사위원장(자유한국당)의 사퇴를 요구하며 회의장을 퇴장했다.  
 
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법사위원장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사퇴을 요구하며 퇴장했다. 임현동 기자.

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법사위원장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사퇴을 요구하며 퇴장했다. 임현동 기자.

 
법사위 회의가 열린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파행을 빚자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조명균 통일부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은 씁쓸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갔다.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던 정부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선 "보이콧할 거면 왜 부른 거냐"는 불만스런 목소리가 나왔다.
 
2월 임시국회가 '빈손 국회'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권 위원장은 법사위 회의를 마무리하며 "여당이 회의 파행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는 한 법안 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여당 입장에 변화가 없는 한 법사위 파행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향한 곳은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이었다. 이들은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채용비리, 수사외압 의혹에 대해 철저히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의 주장대로 권 위원장에 대한 의혹은 검찰, 특검, 법원 등 사법의 영역에서 밝혀낼 과제다. 그런데 입법의 영역에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법안 처리를 중단하는 바람에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판이다.
 
이는 민주당이 그 동안 여러 차례 주장해온 것과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정기국회 때부터 권 위원장이 고의로 법안 처리를 미뤄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해왔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2월 임시국회에서 민생개혁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다"며 '정쟁 중단'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7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권 위원장이 자신에 대한 조사의 방패막이로 법사위를 이용한다"고 오히려 정쟁의 공세를 높였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법사위 보이콧은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야당도 아닌 집권 여당이 먼저 법사위를 회의를 거부하면 명분이 없어진다"며 "법안 처리를 먼저 하고 권 위원장의 거취는 여야 간사가 합의해서 처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7일 한국당은 앞으로 남은 모든 상임위 논의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법사위를 보이콧했기 때문에 남은 상임위에서 법안 논의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권 위원장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무기한으로 상임위를 보이콧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장 8일 예정됐던 국방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회 법안소위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그러자 민주당은 다시 제윤경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한국당의 국회 일정 거부는 명분이 없고 국민들 지지를 받을 수도 없다. 2월 민생입법 처리를 위한 상임위 법안소위를 막는 것은 국민들에게 부여받은 입법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무책임한 일"이라며 한국당을 비판했다.
 
집권당과 제1 야당 간 소모적 정쟁에 민생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국민 피해만 커지게 됐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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