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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2030이 경계해야 할 어른들

중앙일보 2018.02.08 01:49 종합 28면 지면보기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젊은이 편임을 자처하는 어른들을 일찍이 세 부류로 나눈 작가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 『그리스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다. 첫 번째는 장삿속으로 젊은이들 기분 맞춰주는 어른들. ‘젊음의 특권’ 같은 카피 문구를 내세운 상혼이다. 두 번째는 신문·방송이나 저술을 통해 청년을 거드는 데 익숙한 어른들. 진정성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은연중에 따뜻한 마음씨를 드러내길 즐기다가 이미지 세일 냄새를 풍기곤 한다.
 

입버릇처럼 젊은이 돕겠다는 어른들은 위험
청년지원 정책 봇물에 도전정신 잃어선 안돼

더 위험한 존재는 제3의 부류다. 진정으로 젊은이들 편이길 바라고 그들과 공감하려는 어른들. 치부(致富)나 매명(賣名)보다 ‘나야말로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다. 종종 잘못된 도움을 주지만 독선과 확증편향에 빠져 확신범 소리까지 듣는다. 이런 어른들의 ‘잘한다’ ‘열심히 하자’ 소리에 취하고 떠밀려 가다 이룬 것 없이 ‘서른 즈음에’를 노래방에서 열창하고 있다면 젊음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30년 가까이 된 ‘젊은이에게 고함’이라는 수필을 짧지 않게 인용한 건, 오늘날 헬조선의 흙수저·n포 세대가 경계해야 할 어른들이 적잖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말들을 자주 하는 이들은 일단 의심해 보는 게 좋다. 대기업 말고 지방 중소기업은 구인난이라는데 왜 안 가나, 해외에는 일자리 널렸다던데, 취직 궁리만 말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라, 그러면 세금으로 보조해 주겠다, 하지만 실적이 저조하면 “요즘 젊은 애들 도전정신이 우리 때와는 딴판”이라고 질타한다.
 
선의와 불통이 결합한 정부 정책도 적잖다. 젊은 세대의 절규가 ‘아프니까 청춘’에서 ‘비트코인 하니까 청춘’으로 바뀐 지 오랜데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방침을 덜컥 내놨다가 코인세대를 들끓게 한 일,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들면 젊은 세대의 박수를 받을 거로 믿었다가 의외의 역풍을 맞은 일 등이다. 청년들 투기 리스크를 줄여주겠다는 선의라지만 “절망에서 탈출할 계층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는 원성만 되돌아왔다.
 
‘젊은이에게 고함’을 쓴 1989년은 일본 경제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장기불황과 청년 일자리 절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세대 갈등의 조짐도 일었다. 오늘날 우리와 흡사하다.
 
2030의 주류인 밀레니얼 세대는 내일보다 오늘을 중시하는 욜로(Yolo)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올해의 2030 트렌드다. 국가와 민족, 평화와 안보 같은 대의명분보다 나와 가족·친지의 작은 행복이, 또 우리 주변의 작은 일부터 공정성과 정의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외환위기(1997년)를 겪으면서 집안이 기우는 걸 봤고, 취직하려니까 금융위기(2008년)가 와 취업절벽을 맞은 세대다. 2030 민심의 향배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성, 정의로운 결과’라는 문재인 대통령 통치 철학의 시금석이 됐다.
 
내일 개막하는 ‘평화 올림픽’도 2030의 심사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급조된 단일팀이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거둔다면 적잖은 덤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남북은 하나’ 같은 언사를 동원하며 너무 들뜰 필요는 없겠다. 어렵사리 이룬 단일팀이지만 이를 김정은과 남한 정부 갑질의 합작품쯤으로 여기는 2030이 정서가 남아있다.
 
청와대 핵심브레인 장하성 정책실장이 교수 시절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보면 분노할 대상은 날로 심해지는 소득 불평등이다. 하지만 SNS를 통한 작금의 2030 결집을 보면 이들은 불평등 못지않게 불공정에 화를 낸다는 것이 확인됐다.
 
핵심지지층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2030의 반란, 이에 놀란 청와대는 부랴부랴 다음 달 범정부적인 청년 살리기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2030으로부터 공정과 정의를 배우지 못하면 일자리·저출산 종합대책처럼 또 다른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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