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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암호화폐 규제와 수용 모두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8.02.08 01:46 종합 29면 지면보기
오두환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오두환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된 암호화폐와 관련한 현재의 논의는 규제가 암호화폐가 기반을 두고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컴퓨터 공학 기술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일까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암호화폐의 화폐적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재정 정책 무력화 위험 있어
개별 국가 규제가 불가피한 상황
유통 금지할 마땅한 방법은 없어
정부, 비트코인 실체를 인정해야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몇 가지 화폐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인터넷상에서 이동하므로 국제 이전의 거래 비용이 줄어든다. 암호화폐는 국제간 거래에, 특히 개인 대 개인의 거래에 편리한 특별한 효용을 지닌 교환의 매개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에 일찍감치 눈 뜬 개인들이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결제수단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커져왔다. 둘째, 암호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때 공급이 쉽게 증가한다면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는데, 비트코인 등은 채굴량이 이론적으로 제한되어 있어 오히려 공급 부족 상황에서 소액 화폐로의 세분화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론 경쟁적 암호화폐들이 등장하고 있다. 셋째, 비트코인은 국제화폐인데도 그 계산 단위가 하등의 실물 가치와 연계되지 않고, 추상적 단위인 ‘비트코인’으로 확립돼 있다. 이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구촌의 발전에 기반하고 있다.
 
넷째, 비트코인은 처음부터 국민국가의 주권 통제를 벗어난 불특정 개인들이 발행한 화폐다. 발명자도 있고, 전문 채굴업자도 있지만, 민간이 발행하는 화폐이다. 다섯째, 비트코인은 국가의 부채로 발행되거나 개인의 부채로 발행되어 사회적 순계(純計)가 제로인 부채증서 화폐가 아니고, 컴퓨터에서 채굴한 데이터로 존재하는 가상현실 화폐다. 혹자는 이것을 디지털 재화로 부르기도 하지만 사용가치는 없다. 또 혹자는 가상화폐를 자산의 한 종류라고도 하나, 화폐로 사용될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산의 실체가 없고, 이자나 배당도 없는 가상현실의 재화다. 여섯째, 비트코인은 개별 국가에서 장시간에 걸쳐 성립된 중앙은행제도에 의한 화폐발행 독점권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주권 국가의 금융·재정 정책을 무력화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것이 국가에 의한 규제가 필요한 사회적 마찰의 근본 문제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비트코인이 자금세탁이나 해외로의 자금 유출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고 있으나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러한 용도로 사용이 확대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시론 2/8

시론 2/8

암호화폐는 세계적으로 커다란 지불공동체가 형성되도록 했고, 한국에도 그러한 공동체에 편입된 인구가 300만 명에 이른다. 그리고 암호화폐에 대한 수요는 거래적 수요가 아닌 자본적 혹은 투기적 수요가 훨씬 더 커진 상태가 됐다. 특히 젊은층이 가격 변동의 위험에 노출되는 사회 문제를 낳았다. 해킹 문제도 대두됐다.
 
이러한 암호화폐 거래에 규제를 가하여 불편하게 하면 수요는 감소하고, 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암호화폐의 효용에 기초한 국제적 지불공동체가 존재하면 유통을 금지하기가 쉽지 않다. 가상화폐의 장점에 주목하여 영국·중국 등의 여러 주권 국가들이 직접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정부 발행의 가상화폐를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것이 현실화하여 다양한 암호화폐가 등장하면 복잡계 화폐가 전개되고, 그들 사이에 유통영역 확장을 위한 세계적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국가는 국가라는 상대적으로 폐쇄된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고, 화폐 경제의 가격 정보를 단순화하기 위해 주권국가가 발행하지 않은 본질적으로 무정부적 세계화폐나 외국 중앙은행의 암호화폐가 국내에서 유통되는 것을 규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서 암호화폐가 근절될 수는 없고, 다양한 암호화폐가 주권 국가의 법정화폐와 보완 혹은 경쟁 관계를 갖으며 그 틈새에서 유통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정부가 암호화폐를 단순히 사회악으로 보는 것은 암호화폐의 세계 화폐적 효용 가치와 글로벌 사회의 발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국민국가로서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의 영역을 잠식하는 것을 방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위험한 세계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해 보이지만 글로벌화된 세계의 네크워크 연결이 심화하는 현실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에서 정부는 앞서가는 민간의 자발적 암호화폐의 지불공동체를 규제하는 동시에 암호화폐의 실체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절충적인 묘안을 짜내야 할 것이다.
 
오두환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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