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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시애틀의 역설’ 반복하는 한국

중앙일보 2018.02.08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시작에 불과하다.”
 
일자리를 보존하려고 버티던 국내 최고(最古) 섬유공장이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83년 만에 폐쇄했다고 보도하자, 중앙일보 독자(Robe****)가 남긴 글이다.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 문을 닫았다는 제보도 여럿 들어왔다. <중앙일보 1월 9일자 종합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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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제학 원론만 들춰봐도 이런 부작용쯤은 예견할 수 있었다. 노동시장론에 따르면, 노동시장이 완전경쟁구조일 때 최저임금이 시장균형을 초과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노동수요가 감소해 실업자가 증가한다. 기업 생산비용 상승→물가 상승→설비투자·소비위축→고용 축소→실업자 증가→소비심리 위축→생산비용 상승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현실 사례도 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는 최저시급 인상 실험을 진행 중이다. 2015년 10.5달러(약 1만1400원)였던 최저시급을 2016년 13달러(약 1만4100원)로 23.8%나 인상했다. 예카테리나 자르딘 미 워싱턴대 공공정책학과 교수팀은 이 최저시급 인상이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다. 연구진이 지난해 6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시급 인상은 임금인상 효과보다 일자리 축소, 근무시간 감소 등 부작용이 더 컸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2016년 평균 월급(1772달러)이 2015년(1897달러) 대비 125달러(약 13만6000원) 감소(-6.6%)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보고서는 또한 기업들이 고용을 축소하면서 약 5000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한국도 예외일 리 없다. 국회예산정책처·통계청·박명재 의원실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0.16%포인트(4만2918명·추정)의 일자리가 감소한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대로 영세자영업자에게 일자리 안정자금(3조원)을 지급할 경우 0.12%포인트(3만2188명·추정)의 일자리가 늘어나긴 한다. 그래도 순수하게 1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향후 3년 동안 사라진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근본 목적은 저임금 근로자 소득을 올려 삶의 질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인상 명분은 충분하다. 문제는 급진적인 인상률(16.4%)이다. “최저임금을 적절히 올릴 필요는 있지만, 올해처럼 급격히 올리면 오히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의 조언을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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