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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코리아 R&D 패러독스,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을

중앙일보 2018.02.08 00:02 경제 7면 지면보기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몇 년 전 스웨덴 과학한림원 사무총장 일행이 필자가 근무하는 KIST를 찾은 적이 있다. 적극적 연구개발(R&D) 투자와 뛰어난 기초과학 역량에도 혁신성과가 이웃한 독일은 물론 덴마크에까지 뒤처진다는 소위 ‘스웨덴 패러독스’의 극복방안을 찾겠다는 취지였다. 요즘은 ‘코리아 R&D 패러독스’가 회자한다. 국내총생산액(GDP) 대비 R&D 투자 세계 1·2위를 다투는 양적 규모에도 연구성과가 혁신의 동력으로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이다. 도대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에서 혁신이 사라졌다는 자조적인 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생물학자 벤 베일른은 지속소멸의 법칙이라는 이론을 통해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체의 99%가 멸종한 이유를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생명체는 스스로의 진화 속도와 무관하게 결국은 멸종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R&D 혁신체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등만이 살아남는 그야말로 무한 기술경쟁의 시대에 다른 경쟁 주체보다 더 빨리 진화하지 못하는 것은 곧 소멸을 의미한다.
 
수년 전부터 혁신적 R&D 방식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 프로그램이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주도한 R&D에서는 실리콘 밸리에서나 나올 법한 파괴적 혁신성과가 나오기 어려웠다. 그러나 DARPA는 인터넷·스텔스기·GPS·다빈치로봇 등 파괴적 혁신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DARPA의 성공 DNA, 그 본질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적 목표를 목표 지향적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도전적 연구는 구체적 목표 설정 자체가 어렵다는 통념을 깨는 역설적 접근이다. DARPA의 대표적 성과들은 이런 무모한 도전의 산물이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만나 꽃피운 것들이다. 모든 국가 R&D를 이러한 방식으로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지만, 기존 기술·지식의 점진적 향상을 추구하는 현재 국가 R&D 방식에 분명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9일 개막하는 평창겨울올림픽을 응원하는 국민적 열기가 뜨겁다. 우리 겨울 스포츠 기량의 전반적 향상과 함께, 특히 쇼트트랙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력 향상 배경이 눈에 띈다. 쇼트트랙 방식의 코너링 훈련 등 타 종목의 노하우를 꾸준히 접목한 것이 그 비결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한국의 R&D에도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 국가 R&D 과제 성공률 98%라는 타성을 깨기 위한 역설적 발상전환 없이는 누구나 패러독스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혁신의 냉엄한 본질이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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