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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덕후' 신입사원, 어떻게 10년 만에 사장이 됐나

중앙일보 2018.02.08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논설위원이 간다]'덕후' 신입사원은 어떻게 10년만에 사장이 됐나
 

대졸 평사원의 무모한 12년 플랜
망해가던 만화를 글로벌 콘텐트로
네이버웹툰에서 만나는 '일의 미래'
김준구 대표의 키워드는 재미&동기
주어진 일 말고 하고 싶은 일
강요 대신 선택의 자유가 핵심

스타 웹툰 작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 캐릭터 벽그림이 걸려있는 분당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11층 네이버웹툰 사무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문구는 이 회사 기업문화를 잘 보여준다. 최승식 기자

스타 웹툰 작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 캐릭터 벽그림이 걸려있는 분당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 11층 네이버웹툰 사무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문구는 이 회사 기업문화를 잘 보여준다. 최승식 기자

가장 네이버다운 동시에 가장 네이버답지 않은 회사. 네이버의 웹툰 사업부문에서 2017년 자회사로 독립한 네이버웹툰 얘기다.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2004년만 해도 회사 안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만화 덕후'인 스물일곱 살 먹은 대졸 신입사원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당시엔 2년 앞서 시작한 다음 포털의 '만화 속 세상'이 대세였다. 그런 서비스가 지금은 국내 웹툰 생태계를 만든 압도적 1위 플랫폼(불법 사이트 제외)인 동시에 전 세계 이용자(MAU·월순사용자) 4000만명(해외는 220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웹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똘끼' 충만한 이 평사원은 국내에만 직원 100여 명을 두고 1년에 절반은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누구라도 "해보고 싶다"고 손 들면 하게 해주고, 가능성이 보이면 제대로 일 할 수 있게 권한을 주는 네이버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선 네이버의 조직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회사인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네이버답지 않은 회사이기도 하다. 뉴스 편집권이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관련업계와의 상생보다 자사 이익에 더 관심 있는 거대 독점기업이라는 기존 네이버 이미지와 달리 출발부터 파트너인 웹툰 작가의 수익을 우선 목표로 세워 윈윈하는 협력관계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네이버웹툰 한 직원 자리. 파티션 위에 피규어거 가지런히 놓여 있다. 최승식 기자

네이버웹툰 한 직원 자리. 파티션 위에 피규어거 가지런히 놓여 있다. 최승식 기자

재밌는 건 의도했든 아니든 네이버웹툰, 그리고 10여 년 만에 사원에서 사장이 된 김준구(41) 대표(명함엔 CEO&Founder라고 쓰여있다)가 일해온 방식이야말로 과거의 '돈벌이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진짜 일'의 미래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곳에선 자발적인 동기로 뭔가 하고자 하면 말단 신입사원이라도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고, 정해진 대로만 하라고 강요받는 대신 선택해서 일할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서로 깎아내리는 경쟁 대신 협업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다. 가령 김 대표가 '재미'를 좇아 열정적으로 일했더니 포브스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인'(2014년)이라는 글로벌한 인정을 받은 것처럼. 
굳이 AI(인공지능)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술이 급속도로 인간을 대체해 직업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진짜 일'의 모습을 네이버웹툰에서 찾아보려는 이유다. 

'일의 미래'를 만나다 
네이버웹툰 사무실 입구의 웹툰 캐릭터 앞에 김준구 대표(가운데 빨간 옷)와 직원들이 모였다. 최승식 기자

네이버웹툰 사무실 입구의 웹툰 캐릭터 앞에 김준구 대표(가운데 빨간 옷)와 직원들이 모였다. 최승식 기자

이번 겨울 유난히 차가운 날씨에 칼바람을 맞으며 분당 네이버 본사인 그린팩토리 11층 네이버웹툰 사무실에 두 번 찾아갔다. 2010년 529억원이었던 국내 웹툰시장 규모는 2016년 5846억원, 그리고 곧 1조원(KT경제경영연구소)을 바라볼 정도로 웹툰은 이미 대세 콘텐트 비즈니스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10~20대가 주 소비층인 '어린' 문화이다 보니 위상만큼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이런 무관심을 뚫고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을 모은 웹툰이 하나 나왔다. 네이버웹툰의 인터랙션툰 '마주쳤다'이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자마자 독자가 곧바로 웹툰 캐릭터로 등장하는 신기한 웹툰으로, 6회에 5000만 누적 조회라는 큰 성공을 거뒀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네이버웹툰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도 어찌 보면 2004년 대졸 신입사원으로 네이버 개발팀에 입사한 김준구 대표로부터 비롯됐을지 모른다. 
진짜 일은 자발적 동기로부터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 자리. 책상 뒤에 책꽂이가 하나 더 있는 것 말고는 대표 자리라고 별로 다를 바 없다. 다른 직원과 똑같이 이름이 쓰여진 종이 명패 하나가 놓여져 있다. 최승식 기자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 자리. 책상 뒤에 책꽂이가 하나 더 있는 것 말고는 대표 자리라고 별로 다를 바 없다. 다른 직원과 똑같이 이름이 쓰여진 종이 명패 하나가 놓여져 있다. 최승식 기자

네이버웹툰의 기업문화를 얘기할 때 준구님(네이버는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네이버의 만화 서비스를 맡았다. 당시 네이버는 출판만화를 디지털화해서 디지털로 바꿔 내보냈는데 안팎의 관심은 시들했다. 그런데 기획자도 아니고 개발자로 입사한 스물일곱 먹은 괴짜가 손을 들었다. 때마침 담당하던 선배가 "손 털려고 했는데 잘 됐다"며 넘겨줬다.  
"까짓거 내가 책임지지 뭐". 누구 허락도 없이 다른 업무 예산을 일부 돌려서 2004년 말 디지털 만화 서비스가 아닌 네이버의 첫 웹툰을 만들었다. 이젠 네이버웹툰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김규삼의 '정글고'는 그렇게 나왔다. 만화책 8000여 권을 모은 덕후답게 '촉'을 발휘해 웹에 맞을 것 같은 콘텐트를 제안한 게 먹혔다. 뒤늦게 알고보니 김규삼 작가는 당시 잡지 연재가 끊겨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의 촉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김규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를 출발점으로 하루 3시간만 자는 고강도 업무가 시작됐다. 하루 종일 개발자로 주어진 업무를 하고 웹툰 관련 업무는 사무실에서 퇴근 후 진행했다. 누가 시키면 죽어도 못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좋아하던 작가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퇴근 후 새로운 일이 시작돼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자다가도 작가 전화 오면 같이 수다 떨고 마감 안 하고 게임하러 다니는 작가 추적하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오죽하면 조석이나 이말련 같은 스타 작가 작품 속에 '쪼는' 편집자 캐릭터로 등장할 정도다. 

누구라도 부여받는 책임과 권한
조석의 웹툰 '마음의 소리'에 등장한 김준구 대표(왼쪽). [웹툰 캡처]

조석의 웹툰 '마음의 소리'에 등장한 김준구 대표(왼쪽). [웹툰 캡처]

웹툰에 김준구 대표가 등장하는 건 주로 마감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나올 때다. 웹툰 캐릭터(왼쪽)와 실물의 싱크로율은? [사진 네이버웹툰]

웹툰에 김준구 대표가 등장하는 건 주로 마감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나올 때다. 웹툰 캐릭터(왼쪽)와 실물의 싱크로율은? [사진 네이버웹툰]

이말련 작가 작품에 또 다른 스타 작가 기안84 천적으로 등장한 김준구 대표. [웹툰 캡처]

이말련 작가 작품에 또 다른 스타 작가 기안84 천적으로 등장한 김준구 대표. [웹툰 캡처]

본인의 열정과 달리 정작 주변 반응은 달랐다. 당시 웹툰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작가들마다 "제아무리 네이버라도 1~2년 하다 접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맹랑한 신입사원은 작가들과 만날 때마다 3-3-3-3의 4단계로 이뤄진 12년 플랜을 떠들었다. "3년 투자기를 거쳐 3년 성장기를 지나면 3년의 성숙기가 오는데…." 위에서 누가 가이드라인을 준 게 아니다. 1인 담당자로서 이 정도의 포부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밀어붙였을 뿐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지금까지 그 플랜은 착착 다 이뤄졌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쉬웠을 리가 없다. 지금 네이버웹툰을 만든 대표적인 작가발굴 서비스인 '도전 만화'와 '베스트 도전'도 무모하게 태어났다. 2006년 도전 만화를 처음 런칭했지만 텅 빈 게시판에 아무도 작품을 올리지 않았다. 미끼가 필요한데 마케팅 예산은 전혀 없었다. 결국 준구님이 사비 700만원 들여 프린터 등 경품을 내건 작은 공모전을 했다. 이를 계기로 공전의 히트작인 조석의 '마음의 소리'도 탄생할 수 있었다.  

준구님이 사내독립기업(CIC)장을 거쳐 2017년 자회사 대표가 되기까지 줄곧 시도하고 있는 수퍼패스는 원래 좋은 콘텐트 발굴을 위한 제도다. 하지만 동시에 대표 본인이 누린 책임과 권한을 직원들도 똑같이 가질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20~30명의 기획자들이 모여 어떤 새 작품을 시작할지 회의를 한다. 모두 "안 된다"고 해도 누군가 "내가 책임지고 해보겠다"라고 선언하면 CEO라도 비토할 수 없다. 그렇게 1년에 2~3건의 수퍼패스가 나온다. 물론 실패도 있지만 '연놈' 같은 히트작은 순전히 이 제도 덕에 세상 빛을 봤다. 

경쟁보다는 협력이 우선
네이버웹툰 사무실에서 김준구 대표(가운데 빨간 상의)가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네이버웹툰 사무실에서 김준구 대표(가운데 빨간 상의)가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준구님이 처음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세운 첫번째 목표는 신인이 꾸준히 발굴되는 창작 생태계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플랫폼 정착보다도 이곳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순위였다. 작가가 좋은 수익을 올린다는 건 콘텐트가 사랑받는다는 것이고 소비자가 선호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작가의 창작환경이 좋아져서 좋은 콘텐트를 생산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걸 통해 궁극적으로 회사도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지금도 "사용자가 얼마 늘었는지 하는 것보다 작가들이 원하던 집 사고 자동차 샀다고 알려올 때가 더 기쁘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협력은 중요한 키워드다. 2014년 7월 글로벌웹툰 서비스인 라인웹툰 출시해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중국어 등으로 현지 작품과 국내 번역작을 서비스하고 있는데 각 나라별로도 한국과 비슷한 신인작가 발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강요 아닌 선택의 자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다 시키는대로 셀카를 찍으면 내가 웹툰 속 캐릭터로 등장하는 '마주쳤다'.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완성도를 높이느라 다들 퇴근을 반납하고 '노가다'를 자처했다. [사진 네이버웹툰]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다 시키는대로 셀카를 찍으면 내가 웹툰 속 캐릭터로 등장하는 '마주쳤다'.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완성도를 높이느라 다들 퇴근을 반납하고 '노가다'를 자처했다. [사진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은 워커홀릭으로 소문이 난 김 대표뿐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느끼기에 재밌는 회사다. 하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회사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업무 강도가 매우 센 회사다. 그런데도 다들 "스트레스 안 받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좋아하고 재밌는 일을 하니까".  

가령 셀카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하일권 작가 캐릭터로 변환하는 AI 딥러닝을 활용한 '마주쳤다'를 출시하기 직전엔 정말 말 그대로 퇴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표 생각에 한 1000번만 돌려도 될 걸 2000~3000번 돌리며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서다.  

이 프로젝트 기획자인 정진 매니저는 "캠프모바일이나 밴드 등 네이버 다른 부서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도 이곳 업무 강도가 정말 센 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불만은 없다. 이승훈 매니저는 "일이 많아서 힘들진 않다"며 "대기업 계열이었던 그전 회사도 야근은 많았는데, 똑같은 야근이라도 어쩔 수 없이 강제로 하느냐 아니면 자발적으로 하느냐가 천양지차"라고 했다. 이렇게 재미가 있어야 본인은 물론 회사에도 긍정적인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기에 김 대표가 새로 사람을 뽑을 때마다 늘 첫 질문은 "웹툰 좋아해요?"로 시작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근무시간 단축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찾고자 워라밸을 외치지만 역설적으로 워라밸을 외치는 직업이야말로 곧 소멸하거나 대체될 직업일 가능성이 크다. 살아남을 미래의 진짜 일이 무엇인지, 네이버웹툰이 우리에게 그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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