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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소반에 반하다

중앙일보 2018.02.08 00:01 강남통신 2면 지면보기
작고 아담하다. 예쁘다. 단정하게 놓인 소반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다. 요즘 소반을 탐내는 이들이 많다. 찻상으로 쓰고, 사이드 테이블로도 쓰는 등 활용방법도 다양하다. 사진 기반 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소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만 건에 육박한다. 수많은 공예품 중 왜 하필 소반일까. 소반을 가까이 두고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1인 1상의 정갈한 선비문화, 현대인의 일상에 스며들다

소반이 다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소반 콜렉터이자 애호가인 도예가 이정은씨는 집에서 오래된 소반을 쌓아 선반이나 사이드 테이블로 사용한다. 현대 가구인 소파와도 제법 잘 어울린다. 오종택 기자

소반이 다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소반 콜렉터이자 애호가인 도예가 이정은씨는 집에서 오래된 소반을 쌓아 선반이나 사이드 테이블로 사용한다. 현대 가구인 소파와도 제법 잘 어울린다. 오종택 기자

 
소반, 아파트 실내로 들어오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사는 도예작가 이정은씨의 집 거실 한쪽 벽면에는 서른 개 남짓의 소반이 자리하고 있다. 많게는 다섯 개씩 쌓아놓은 소반은 선반처럼 보이기도, 장식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외인 건 분명 한옥이 아닌 아파트인데도 제자리인양 실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정은씨의 거실 한편에는 약 서른 개의 소반이 쌓여 있다. 그냥 쌓아뒀을 뿐인데 멋스러워 보인다.

이정은씨의 거실 한편에는 약 서른 개의 소반이 쌓여 있다. 그냥 쌓아뒀을 뿐인데 멋스러워 보인다.

이씨의 소반은 대략 60~1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물건들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소반을 모으던 것을 옆에서 보고 자라면서 그 취미를 이씨가 물려받은 것이다. 그릇 빚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소반에 더욱 빠져들었다고 한다. 2013년 열린 전시 때는 모던한 도자 화병을 만들고 밋밋한 전시대 대신 소반 위에 올려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씨는 “소반은 그냥 쌓아두기만 해도 멋스러운 오브제가 되지만 실제로 사용할 때 더 아름다운 실용 공예품”이라며 “두어 개를 쌓아 의자 옆이나 침대 머리맡에 두고
사이드 테이블처럼 쓰거나, 음식을 옮길 때 쟁반으로 활용하거나, 보조 식탁·개인 찻상으로 쓰는 등 용도가 다양해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도자 브랜드 광주요에서 2월 중순 출시하는 원형 상판의 호족반. [사진 광주요]

도자 브랜드 광주요에서 2월 중순 출시하는 원형 상판의 호족반. [사진 광주요]

푸드 스타일리스트 문희정씨 역시 최근 소반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지난해 봄 리빙 페어에서 열린 소반 기획전을 보고 상판 지름 30㎝ 정도의 원형 호족반(원형 상판에 호랑이 다리 모양)을 하나 들였다. 밥·국·반찬 등 전통적인 1인상을 연출하기에도 좋고, 들깨탕 등의 한 그릇 음식을 올려도 고급스러운 매력이 풍겨 음식 촬영 때 자주 사용한다.
문씨는 “한국적인 느낌을 보다 깊숙하게 낼 수 없을까 고민할 때 소반을 만났다”며 “1인 1상의 깔끔하고 정갈한 우리 선조들의 식문화가 반영돼 있어 소반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흔한 레스토랑 풍경을 바꾸다
한식 주점 ‘설후야연’ 전경. 소반으로 꾸며진 홀이 인상적이다. 엄가람 인턴기자

한식 주점 ‘설후야연’ 전경. 소반으로 꾸며진 홀이 인상적이다. 엄가람 인턴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한식 주점 ‘설후야연’ 홀에는 18개의 소반이 2개 혹은 4개씩 짝을 지어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와 함께 놓여 있다. 이곳의 권우중 셰프가 1년을 공들여 청계천과 답십리 고가구 상가에서 모아 수리한 소반들이다. 대부분 12각 호족반(12각형 상판에 호랑이 다리 모양)이다. 권 셰프는 “한식을 하다 보니 이를 담아내는 본래의 좋은 우리 기물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높아졌다”며 “특히 소반은 선조들의 품격이 깃든 1인 독상의 고급 식문화를 재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설후야연'의 소반 차림. 능이탕·가자미 식혜 등의 전통 요리가 1인 1상으로 서비스된다. 엄가람 인턴기자

'설후야연'의 소반 차림. 능이탕·가자미 식혜 등의 전통 요리가 1인 1상으로 서비스된다. 엄가람 인턴기자

‘설후야연’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식당 ‘1인 1상’에서도 작고 아담한 소반에 펼쳐진 우리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음식은 파스타·스테이크 등 서양풍이지만 1인 소반에 담아내 색다른 분위기를 낸다.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의 디저트 카페 ‘아라리오브네’에서는 커피·케이크 등을 소반에 낸다. 작고 귀여운 모양의 화형 호족반(꽃모양 상판에 호랑이 다리 모양)에 놓인 케이크가 제법 정취를 풍긴다.
 
전통 소반에 현대적 터치 가미
“한 번은 신혼부부가 찾아와서 침대맡에 놓을 소반을 찾더라고.”
지난 2월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국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만난 30년 경력의 이종덕 소반 장인의 말이다. 인간문화재였던 고 이인세 선생의 아들로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다. 이 소반장은 “요즘 1~2년 사이 전통 소반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며 “식탁 문화가 정착되면서 한동안 관심이 끊기는 과도기를 거쳤다가 요 몇 년 새 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소반에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종덕 소반장은 소반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다는 해주반을 주로 만든다.

이종덕 소반장은 소반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다는 해주반을 주로 만든다.

정교한 문양이 돋보이는 이종덕 장인의 해주반. [사진 일상여백]

정교한 문양이 돋보이는 이종덕 장인의 해주반. [사진 일상여백]

이종덕 장인은 소반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다는 해주반을 주로 만든다. 봉 형태의 다리가 아니라 두 개의 판각으로 상판을 받치는 구조다. 넓은 판각에 꽃과 나비 등 정교한 조각을 새겨 넣는다. 소반은 지역에 따라 통영반·나주반·해주반 등으로 나뉜다. 통영반은 아래위 두 개의 중대가 있고 다리가 곧다. 나주반은 중대가 하나에 보다 단순하고 간결하다. 이 장인은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사용했던 소반에 향수를 느끼고, 3040 젊은 층은 소반의 매력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 삼성동 국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의 이종덕 소반장 공방.

서울 삼성동 국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의 이종덕 소반장 공방.

실제로 최근에는 전통 소반 디자인을 여러 방면으로 실험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다. 파주에서 공방 ‘반김 크래프트’를 운영하는 양병용 작가가 대표적이다. 소반 디자인의 ‘신고전주의’라는 평이 나올 만큼 전통 소반에 현대적 터치를 넣어 호평을 받고 있다. 화려한 문양이나 음각을 배제하고 단순하고 간결한 선으로 소반을 짓는다. 획기적으로 변형시키기보다 원형의 모습을 지키며 현대적인 맛을 추구한다. 양 작가는 “2010년 즈음부터 판매가 많이 되기 시작했다”며 “일단 소반을 보면 작고 예쁘니 하나쯤 갖고 싶어진다. 소반이 가진 디자인적 매력은 이처럼 아주 직관적”이라고 말했다.
전통 소반에 현대 미학을 더해 주목받고 있는 양병용 작가의 작업실 겸 전시장인 ‘반김 크래프트’의 소반 풍경. 그의 소반들은 단순하고 간결한 디자인이 매력이다. 유지연 기자

전통 소반에 현대 미학을 더해 주목받고 있는 양병용 작가의 작업실 겸 전시장인 ‘반김 크래프트’의 소반 풍경. 그의 소반들은 단순하고 간결한 디자인이 매력이다. 유지연 기자

 
유럽 가구와도 찰떡궁합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전통문화 선물 상점 ‘해브빈서울’에는 소반을 만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전시돼 있다. 철재로 만든 소반(박보미)부터 상판을 청화 백자로 덧댄 청화소반(양웅걸), 갓끈 모양의 장식을 단 양반소반(이정훈) 등이다. 반응도 꽤 좋은 편이다. 해브빈서울의 남연정 팀장은 “짧은 철제 다리를 붙여 트레이(쟁반)처럼 활용할 수 있는 남미혜 작가의 소반은 주문 후 3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였다”며 “손님 접대를 위한 조그만 찻상이나 나만을 위한 찻상 등 여러모로 실용적인 데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았다”고 했다.
원반에 청화 백자를 덧대 현대적으로 풀어낸 양웅걸 작가의 청화소반.

원반에 청화 백자를 덧대 현대적으로 풀어낸 양웅걸 작가의 청화소반.

원반에 갓끈 모티브의 장식을 단 이정훈 작가의 양반소반. [사진 해브빈서울]

원반에 갓끈 모티브의 장식을 단 이정훈 작가의 양반소반. [사진 해브빈서울]

디자인 가구 스튜디오 컨테이너오다시일의 팔각소반. 간결한 철제 다리 위에 팔각 목재 상판을 댄 혁신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디자인 가구 스튜디오 컨테이너오다시일의 팔각소반. 간결한 철제 다리 위에 팔각 목재 상판을 댄 혁신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공예 편집숍 ‘일상여백’을 운영하며 이종덕 장인의 소반을 비롯해 다양한 소반을 소개하고 있는 마인드디자인의 권완수 팀장은 “크기가 작은 소반은 부담 없이 들이기 쉬운데다 찻상이나 1인 책상·밥상 등 용도가 다양하다”며 “그저 놓고 보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용 공예품이라는 점이 소반의 결정적인 인기 비결”이라고 했다.
소반은 일상에 두었을 때 더 아름답다. 양병용 작가의 작업실 한쪽 부엌에서 사용하는 구족반.

소반은 일상에 두었을 때 더 아름답다. 양병용 작가의 작업실 한쪽 부엌에서 사용하는 구족반.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잘 어울린다는 점도 한몫 한다. 다시 말해 믹스매치가 가능하다. 한옥이 아닌 아파트에도, 현대적으로 꾸민 집에도 소반은 무리 없이 스며든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양병용 작가의 소반을 판매하는 리빙 편집숍 챕터원꼴렉트의 김세린 팀장은 “모던한 유럽 가구들 사이에 홀로 소반이 놓여있어도 굉장히 멋스럽다”며 “소반 자체가 현대적인 디자인 DNA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해브빈서울 남 팀장은 “전반적으로 차(茶) 문화에 대한 관심,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반 등 한국 전통 기물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진 것 같다”며 “집에 손님을 초대하고 그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것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면서 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이유”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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