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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어설픈 북·미 악수 이벤트는 악수(惡手)다

중앙일보 2018.02.07 01:12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1월 29일 일본 요코타 주일미군 공군기지. 기지를 출발한 미군 항공기에 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간부가 타 있었다. 목적지는 일본이 아닌 한국의 오산 주한미군 공군기지. 주한미군 주재로 일본·호주·캐나다 책임자가 참석하는 극비 회담이 열렸다. 주제는 한반도 전쟁 발발 시 공동철수 연합작전 마련. 한국 눈에 띌까 봐 JAL 등 민간기를 타지 않고 미군기를 타고 한국에 잠입하는 007작전을 벌인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듯 멀쩡해하는 우리와 달리 이들 나라는 왜 조급해하는 것일까. 우리가 문제인가, 그들이 문제인가.
 

북·미 악수 유도는 미국엔 굴욕
평창 이후 미 불만, 불신 폭발할 수도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낙마를 둘러싸고 온갖 설이 난무한다. 그중 하나가 임박한 한국 내 미국인 대피 문제를 놓고 백악관 핵심부와 의견이 틀어졌다는 견해다. 그 진위를 떠나 워싱턴 기류가 “평창올림픽까지만 참는다”로 흐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장면 두 가지.
 
열흘 전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에서의 한·미 국방장관 회담. 매티스 장관은 송영무 장관에게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시작한다. 규모 축소 따윈 없다”고 몰아세웠다 한다. 특히 한반도를 관할하는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이 가장 강경했다. 이 자리에서 한·미 군사훈련 재개는 사실상 결정이 났다. 송 장관이 이틀 뒤 “핵무기를 사용하면 북한 정권은 지도에서 아마 지워질 것”이라 한 것도 사실 하와이에서 해리스 사령관 입에서 나왔던 말이었다.
 
또 하나는 3주 전 밴쿠버에서 열린 20개국 외교장관 회담. 비공개로 진행된 만찬에서 참석자들은 매티스의 연설에 싸늘해졌다 한다. 외교장관끼리의 회담에 국방장관이 연단에 선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당시 관계자 증언.
 
“매티스의 요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남북대화 기운이 고조되고 있는 건 오케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최대한의 압박’과 별개다.” 둘째, "여기 총명하신 외교관들이 딱 떨어지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국방장관들이 모여 군사 카드를 모색할 것이다. 우리는 전쟁 계획을 갖고 있다.” 누구를 겨냥한 건지는 명확하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내일 서울에 온다. 최대 관심사는 펜스-김영남 회동 여부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인사는 "‘쇼’는 안 하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정치적 역동성이 발휘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만남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반면 미국은 단호하다. 펜스는 북한에서 의식불명에 빠졌다 숨진 웜비어의 부친을 동행시키고, 천안함 추모관을 가고, 탈북자까지 만난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러 오는지 명확하다.
 
난 이 대목의 동상이몽이 ‘평창 이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도발도 문제지만 아시아나 전세기 투입, 만경봉호 입항 허용 등 기껏 힘들게 구축해 놓은 대북제재망의 ‘예외’만 찾아 북한에 선사하는 한국 행보에 대한 미국의 불만과 불신은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에 한마디 없이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의 내정을 철회하고, 탈북자 지성호씨를 국정연설에 등장시킨 것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만남을 원하지 않음에도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지원국 대표 김영남과 악수를 하게 하는 굴욕을 줘선 안 된다. 설령 만난다 해도 펜스의 입에선 우리가 바라는 발언이 아닌, 북한을 자극할 발언이 나올 공산이 크다.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단편적 생각에 어설프게 악수(握手)를 유도하는 악수(惡手)를 두지 않길 바란다. ‘이벤트’로 될 일이 아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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