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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넘기면 세금·규제 폭탄 … 지주사 설립 서두르는 재계

중앙일보 2018.02.07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재계 25위 효성이 지난달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현대시멘트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운 한일시멘트도 지난달 지주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롯데·현대산업개발·현대중공업·SK케미칼 등 줄줄이 이어져 온 지주사 도입이 해가 바뀌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지배구조 바꾸기 바람 왜

계열사 정리 때 생긴 양도차익 세금
2018년까지만 납부 유예 혜택
문재인 정부 개혁 의지 강한데다

지주사 요건 강화 법안들 입법대기
일각 “지주사 돼도 편법승계 가능”

기업들은 왜 지배구조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을까. 재계는 크게 3가지를 원인으로 꼽는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기업 개혁 과제로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력 확장 억제,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해소 등을 꼽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기업들에 “자발적으로 변해달라, 시간이 많지 않다”고 재촉하고 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주사 전환은 대통령이 언급한 개혁과제들을 한꺼번에 푸는 방법이다. 국내 기업들의 지배력 문제는 주로 순환출자에서 비롯된다. 대기업 오너가 A계열사의 주식은 확보하고 있지만 B·C의 주식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 A사가 B사의 지분을 사고, B사는 C사의 지분을, C사는 다시 A사의 지분을 사는 ‘A→B→C→A형 순환고리’를 만들어 지배력을 유지해 왔다. 지금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롯데의 경우 2014년까지만 해도 수십 개 계열사들 사이에 순환출자 고리가 400개가 넘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못한 삼성의 경우 현재 21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조를 지주 체제로 바꾸면 지주사와 지주사의 계열사로 단순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지주회사(持株會社)는 말 그대로 ‘주식을 가진 회사’가 돼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의 주식은 40% 이상 확보해야 한다. A사가 B·C의 주식을 상장 유무에 따라 20% 또는 40%를 확보하면 계열사로 아래에 둘 수 있다.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서 합법적으로 지배구조의 정점을 차지하는 것이다.
 
지주사 체제에선 일감 몰아주기 문제도 사라진다. 지주사 체제가 되면 공정거래법상 같은 지주사 아래에 있는 회사들끼리는 거래가 금지된다. 하나금융투자 오진원 연구원은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공정성 시비는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환에 대한 혜택이 올해 끝나기 때문이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핵심 계열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눠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때론 자회사를 합병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이처럼 분할이나 합병 시엔 모든 자산에 양도차익이 발생하고 기업은 이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목돈이 생길 때까지 양도차익 부담을 유예해주는 ‘과세이연’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제도가 올해 말에 일몰된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지난달 신년사에서 “2018년은 지주사 전환의 최적기”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밖에 국회에 지주사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이 줄줄이 입법대기 중인 점도 배경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지주사 전환시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막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금은 예를 들어 A사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15% 보유한 경우,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기업을 분할해 지분을 맞교환하면 지주사는 사업회사에 대해 15%만큼의 의결권을 갖는다. 국회에는 상장 20%, 비상장 40%인 지주사 지분 요건을 상장 30%, 비상장 50%로 강화하는 법안도 올라 있다. 법무법인 테크앤로 구태언 변호사는 “주가가 높은 기업의 경우 지분율 1%를 확보하는 데에만 수천억이 들 수 있다”며 “지분 요건 10% 강화는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조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돼도 오너 일가의 편법 승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주사 체제 밖에 있는 관계사, 다시 말해 지주사가 20%이나 40% 지분을 확보하지 않은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와 주가 띄우기, 이를 통한 지주사 지분 늘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엔 몇몇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승계에 나섰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갈수록 시장을 들여다보는 눈이 많아지고, 일감을 주는 과정도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등 투명성 강화 요건이 많아져 편법 상속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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