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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빅데이터는 당신의 댓글을 알고있다

중앙일보 2018.02.06 11:24
 우리 사회는 이미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 보고 싶은 사실이 우선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영에 따라 혹은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들의 목적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벌어져도 자신들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바로 개입해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 온라인 영역에서 댓글 공간은 실체적 사실과 대안적 사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보고 싶은 사실, 텍스트로서의 사실과 해석된 사실이 격돌하는 전쟁터다. 이 전쟁터는 사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 수준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2008년 광우병 시위에 등장한 촛불.이제와서 보면 근거없는 주장에 불과했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분열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중앙포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2008년 광우병 시위에 등장한 촛불.이제와서 보면 근거없는 주장에 불과했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분열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중앙포토

 
 요즘, 설혹 명확한 사실이지만 어느 누가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조롱하거나 편의대로 왜곡한다고 해도 이것이 자신이 속한 서클 안에서 충성심을 증명하고 입지를 강화할 수단이 된다면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되는 경향이 보인다. 이럴 경우 서클 밖 ‘적’들의 반응이 문제인데, 만일 예상되는 적들의 반응이 나치 부역자를 추적하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처럼 정확하고 집요할 것으로 예상되면 사실을 비틀어보려는 욕망은 쉽사리 시도되기 어렵다. 누군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데 모르는 척 어깃장 놓는 행위를 계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잘못된 대처로 결정타를 입고 결국 탄핵의 길을 걸은 박근혜 전대통령.중앙포토

세월호 침몰 이후 잘못된 대처로 결정타를 입고 결국 탄핵의 길을 걸은 박근혜 전대통령.중앙포토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익명의 그늘에 숨었기에 망정이지 양지에서 떳떳하게 제 이름을 걸고 해보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댓글을 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떼로 몰려다니며 인터넷 여론광장을 오염시키는 키보드 워리어의 만용은 온라인 공간에 스며든 중금속이 된지 오래다. 이들의 거침없는 만용의 원천은 말할 것도 없이 표현의 자유라는 장막 뒤에 숨은 익명성이다. 현재 온라인 공간에 구정물을 뿌려대는 댓글은 ‘무슨 말을 해도 너희는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는 확신의 산물이다. 지금까지는 이 믿음이 유효했다.  
앞으로는?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빅데이터는 이제 분당 서현동에 사는 김종근씨(43.가명) 소유의 차량이 매일 아침 8시30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방향 양재 IC에 서있는 광고판 밑을 지나갔다가 오후 8시 같은 길 하행선 달래내 고개 인근의 광고판 밑을 지나가는 패턴을 알게 될 날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만간 김씨가 해당 광고판을 지나가는 그 시간에 고속도로 광고판 운영업체 관계자는 김씨가 자주 이용하는 식당에서 결제한 신용카드 정보로 획득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김씨에게 최적화된 광고를 내보냄으로써 김씨의 소비를 유혹할 것이다.  
 
성주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사드는 국내적으로는 보수,진보 진영 간에,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등이 포함된 안보전략 전반에 심각한 이견이 대립하는 빌미로 작동하고 있다.중앙포토

성주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사드는 국내적으로는 보수,진보 진영 간에,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등이 포함된 안보전략 전반에 심각한 이견이 대립하는 빌미로 작동하고 있다.중앙포토

 
 네이버는 이미 김씨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온라인에 접속하여 어떤 컨텐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지, 어떤 컨텐트를 클릭하여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어떤 댓글을 남기고 떠났는지 기록하여 데이터로 축적하고 있다. 이런 데이터를 통해 네이버는 김씨 자신보다 김씨를 더 잘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김씨에게 특화된 컨텐트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생활은 더 이상 사생활이 아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신용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하며, 수많은 CCTV 밑을 지나가는 한, 나만의 사생활은 존재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카카오,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SK텔레콤, KT, LG U플러스 등 통신업체,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제조업체,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신용카드회사·금융기관, 홈쇼핑 채널, 에스원 등 보안업체 등등이 빨아들이는 데이터들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이미 위의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한 상태다.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관련 실무회담에서 230여명 규모의 북한 응원단 파견에 합의했다. 사진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반도기를 흔드며 응원전을 펼치는 북한 응원단.중앙포토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관련 실무회담에서 230여명 규모의 북한 응원단 파견에 합의했다. 사진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반도기를 흔드며 응원전을 펼치는 북한 응원단.중앙포토

 
 아직 시도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누가 누구와 만나 어디에서 무엇을 먹으며 무슨 말을 하는지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되고 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어떤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통해 네이버나 다음에 접속해 무슨 내용의 댓글을 남겼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고, 그 아이디로 박근혜, 문재인, 제천·밀양 화재, 삼성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선고,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등의 이슈에 어떤 댓글을 달고 있는지 알 수도 있다. 
 
 
 동일한 아이디로, 혹은 아이디는 다르지만 동일한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남긴 댓글들 역시 디지털 배기가스 수집업체의 안테나에 걸려 일생의 이력서로 남을 게 분명하다. 오늘날 익명의 그늘에 숨어 오염물질을 쏟아내는 디지탈 전사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만천하에 정체가 드러나 두고두고 책임 문제에 시달릴 수 있다.
 
 
 빅데이터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살았는지 알고 있다. 익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곧 닥쳐올 이 미래를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키보드를 내려놓고 먼저 영혼을 정화하는 편이 좋겠다. 
 
 김춘식 중앙일보플러스 사진부문장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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