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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를 사랑한 여자, 박물관장이 되다…여송하 휴르 관장

중앙일보 2018.01.30 10:20
부엉이 박물관 '휴르' 여송하 관장이 부엉이 그림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부엉이 박물관 '휴르' 여송하 관장이 부엉이 그림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우리 속담에 '부엉이 곳간'이란 말이 있다. 부엉이가 둥지에 먹이를 많이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는 데서 비롯한 속담이다. '없는 게 없는 곳'이란 뜻이다.

부엉이에 담긴 깊은 뜻 알고부터 매력 푹 빠져
전 세계에서 모은 부엉이 관련 물건 1000여점
대구 수성구 범어동 부엉이 박물관 '휴르' 오픈

 
부엉이 접시, 부엉이 화로, 부엉이 가면….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가면 사방이 부엉이로 둘러싸인 부엉이 곳간이 있다. 부엉이 관련 물품 1000여 점을 한데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지난해 12월 23일 문을 열었다. 박물관 이름도 부엉이를 뜻하는 순우리말 '휴르'다.  
 
휴르에는 전 세계 부엉이 관련 물건이 2개 층에 걸쳐 전시돼 있다. 집안의 도움으로 연면적 265㎡ 규모로 신축한 건물이다. 부엉이 그림부터 조각, 장식, 수공예품, 장난감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히 부엉이 조각이나 그림 정도가 전시돼 있을 걸로 예상하고 온 이들은 다양한 종류에 깜짝 놀라기 일쑤다. 
 
전시품을 모은 주인공은 휴르 박물관장인 여송하(37·여)씨다. 20살 때부터 부엉이에 관심을 갖고 하나둘씩 부엉이 관련 물건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째서 다른 동물도 아닌 부엉이가 그의 수집욕을 자극했을까.
 
"처음에는 귀여워서 부엉이에 관심을 가졌어요. 저와 얼굴이 닮기도 했고요. 하지만 부엉이가 가진 상징적 의미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부엉이를 깊이 사랑하게 됐죠."
 
여씨는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미술 공부를 하면서 도자기 겉에 새겨진 여러 문양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부엉이에 매력을 느꼈다.
부엉이 박물관 '휴르' 여송하 관장이 부엉이 모양 자명종을 들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부엉이 박물관 '휴르' 여송하 관장이 부엉이 모양 자명종을 들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부엉이 박물관 '휴르' 여송하 관장이 부엉이 모양 자명종을 들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부엉이 박물관 '휴르' 여송하 관장이 부엉이 모양 자명종을 들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처음엔 가벼운 관심이었다. 하지만 부엉이가 철학과 연관이 깊다는 점을 알면서 여씨는 부엉이에 주목했다. 여씨는 "'관세음보살' 첫 글자인 '관(觀)'은 부엉이 환(雚)자와 볼 견(見)자를 합친 글자다. 마음이 머무는 대상을 지혜로서 관찰하는 것(觀)에 부엉이처럼 밝은 눈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이런 의미를 알고부터 부엉이는 내게 그저 귀여운 새로만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씨는 30대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부엉이 관련 물품 수집에 나섰다. 미국과 프랑스, 중국, 베트남, 스위스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들였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도 수시로 드나들며 쓸 만한 부엉이 물건이 올라오는지 살펴봤다. 본의 아니게 국내외 내로라하는 골동품 매매업자나 역사학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됐다.
 
"외국 벼룩시장에 가 보면 부엉이 관련 물품이 하나씩은 있어요. 가끔 주인이 귀한 물건에 잡동사니 가격을 매긴 채로 내놓은 경우가 있죠. 그땐 기쁜 표정을 최대한 숨기고 사야 하는 것이 노하우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여씨 손에 들어온 물건이 자그마치 1000여 점. 이 중엔 기원전 3000~4000년 고조선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부엉이 모양 옥기(玉器)도 있다. 한 중국인이 경매 사이트에 올린 물건을 어렵게 구했다. 국내에서 흔치 않은 부엉이 모양 놋쇠 화로도 소장 중이다. 
 
'혼자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여씨를 박물관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박물관을 차리기로 하고 4년을 준비했다. 여씨는 "세계 어디를 가도 작은 박물관이 많은 데 한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 가지 주제를 밀도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작고 편안한 공간을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 박물관을 건립했다"고 했다.
 
박물관에선 1830년대 영국 빅토리아시대 새장, 1890년대 유럽 한 호텔에서 사용한 부엉이 모양 자명종, 180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부엉이 모양 경대(鏡臺), 1900년대 후반 콩고에서 만들어진 부엉이 얼굴 모양 나무 가면 등을 볼 수 있다. 어린이 관람객들이 부엉이 장난감이나 가면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 교육실도 있다.
 
여씨는 앞으로 박물관에서 다양한 기획전시를 열 계획이다. 지금은 개관 특별전 '제1회 부엉이 곳간전'을 진행 중이다. 물론 전 세계 부엉이 관련 물품 수집도 계속된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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