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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은 포퓰리즘 정당發 복지 확대 물결

중앙일보 2018.01.30 06:00
포퓰리즘 정당이 이끄는 폴란드 정부는 둘째 아이부터 500즈워티(약 148달러)를 지급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이 이끄는 폴란드 정부는 둘째 아이부터 500즈워티(약 148달러)를 지급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90㎞ 가량 떨어진 마을에서 남편 없이 자녀 5명을 키우는 초인스카는 매주 사회지원센터에서 보내주는 도우미 혜택을 보고 있다. 혼자 아이들을 돌보고 숙제를 봐주는 일이 어려웠는데 도와줄 이가 생긴 것이다. 그는 식료품비와 임대료도 걱정하지 않게 됐다. 
 

난민 반대하는 폴란드 집권당 아동 수당 도입해 인기
헝가리 극우 집권당도 공공근로 프로그램 도입
3월 총선 치르는 伊 오성운동 "전국민에 기본소득"
중도정당 대안 제시 못하면 포퓰리즘 정당만 인기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보수 성향의 법과 정의당(PiS) 정부가 '가족 500 플러스'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한 덕분이다. 둘째 자녀부터 아동 한 명당 500즈워티(약 148달러)를 준다. 초인스카처럼 가난한 가정은 첫째 아이도 지원 대상이다. 초인스카는 매월 2500즈워티를 받는데, 세후로 중산층 수입과 큰 차이가 없다.
 
 지난 20년 동안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소득 불균형이 커지자 폴란드 교외 주민들은 빈곤을 겪었다. 진보 성향 시빅 플랫폼 정당이 이끈 정부가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여긴 이들은 포퓰리즘 성향의 PiS에 표를 줬다. 야당 정치인들은 당초 이 프로그램을 '예산 먹는 하마'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따라하기 바쁘다. 해당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데, 세계은행은 올해 폴란드가 4%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시빅 플랫폼은 첫째 아이까지로 수당을 확대하겠다고 공약 중이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신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신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역사적으로 영국과 북유럽의 노동당 같은 중도좌파나 독일ㆍ이탈리아의 기독민주당 등 중도우파 정당이 도입해온 복지 시스템을 포퓰리즘 정당들이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이런 제도는 과거에는 극단주의 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막는 장치로 작용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헝가리에서도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극우 정당 피데츠(Fidesz)가 뉴딜 스타일의 공공근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의 극우 민족전선(FN)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 개혁에 반대해 정규직 보호 조항을 옹호하고 있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

 
 네덜란드에선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극우 자유당이 정부의 건강보험 예산 감축을 비난하고 있다. 독일의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옛 서독지역에 비해 동독지역 거주자의 연금이 적은 것을 집중 비판하고 있다. 이와 달리 중도좌파 정당들은 유로존 위기 등을 거치며 복지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왔다. 네덜란드 노동당과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은 최근 선거에서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선 전후 복지국가 모델이 정점을 지났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유권자의 복지에 대한 요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4년과 2016년 실시된 여론조사 모두 EU 회원국의 정책 우선순위를 ‘사회적 평등과 연대'라고 답한 사람이 4분의 3에 달했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 [AP=연합뉴스]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 [AP=연합뉴스]

 
 서유럽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기존 복지 제도를 조정하기 시작한 것과 달리 동유럽에선 중도 정당들이 주춤한 사이 포퓰리즘 정당들이 미진했던 복지 강화를 내세워 표를 모으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폴란드 PiS의 지지율은 44%였지만, 야당 중 가장 높은 시빅 플랫폼이 15%에 그쳤다.
 
 1980년대 유럽에선 실업률이 치솟자 과도한 정부 지출을 줄이자는 물결이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필두로 시작됐다. GDP 대비 38% 수준이던 유럽의 복지 지출액은 27%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0년대 말에는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법이 시도됐다. 국가 사회보장 시스템과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을 엮어 유연성을 높인 형태다. 국가는 직업 훈련 및 알선 등에 적극 나서고 종일 근무하는 여성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동시에 실업자에게 구직 활동 의무를 부여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속속 이 같은 변화에 합류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근로자의 직업 보호에 여전히 공을 들였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 정부가 2003년 개혁을 시작하기 전까지 높은 실업률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는 당시 좌파의 반발로 개혁에 실패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도 경직된 노동 시장으로 고통을 겪어왔다.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의 시위 모습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의 시위 모습

 
 유럽 포퓰리즘 정당들은 복지 이슈를 이민과 연결시키는 특징도 보인다. 2015년 난민 위기 이후 스웨덴과 네덜란드, 독일의 포퓰리즘 정당은 기존 국민보다 난민이 더 큰 혜택을 받는다고 공격하는 배타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다. 프랑스 FN과 독일의 AfD, 폴란드 PiS 등도 복지 문제를 이민을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에선 기성 중도 정당들이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포퓰리즘 정당들이 복지를 약속하며 더 많은 국가에서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란드 정부는 은퇴 연령을 67세에서 65세로 낮추고, 여성은 60세로 낮췄다.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이들이 많고 출산율이 낮은 상황에서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는 구조이지만 국민 사이에선 인기다.
 
루이지 디 마이오(31) 오성운동 대표가 동부 해안 페스카라에서 당 대회를 열고 총선 후 집권 청사진을 담은 공약을 공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루이지 디 마이오(31) 오성운동 대표가 동부 해안 페스카라에서 당 대회를 열고 총선 후 집권 청사진을 담은 공약을 공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3월 총선을 치르는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전 국민에 780유로(약 100만원)를 주겠다는 기본소득 공약을 내놓는 등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하면 프랑스도 르펜이나 극좌 장뤼크 멜랑숑 같은 극단주의 정당이 집권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유럽의 포퓰리즘은 복지 확대와 맞물리면서 새 기로를 맞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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