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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그건 당신 탓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2018.01.30 02: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한 달 전 이 자리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 힘들다고 썼었습니다. 도처에 도사린 위험을 피하려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아서 피곤하다고 했습니다. 자기 할 일은 안 하면서 말만 차고 넘쳐서 더욱 살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고마다 달려가 사과하는 대통령
책임은 의무 저버린 ‘나’에게 있다

알고 보니 이 땅에선 국민만 힘든 게 아닙니다. 최고권력자로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대통령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니 당연하달 수 있겠지만, 국민이 안 해도 되는 일도 해야 할 게 있으니 쉽지가 않습니다. 사고가 터지는 곳마다 달려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해야 합니다. 슬픈 표정을 짓고 때론 눈물도 흘려야 합니다. 자칫 늑장을 부렸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게 됩니다.
 
반대파의 공격에도 시달려야 합니다. 더 나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물어뜯습니다. 비난을 퍼붓고 죄를 물으며 희생양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전혀 틀린 게 아니라서 더 힘듭니다. 이 정부가 정권을 잡는 데는 세월호 참사의 반사이익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재난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미리 노력을 해야 했던 것도 당연한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인천 낚싯배 사고, 제천과 밀양 화재 참변처럼 똑같은 인재(人災)가 달마다 터지니 할 말이 없습니다. 달려가서 고개를 숙이는 게 우선은 상책입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위험과 함께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특히 그렇습니다. 모든 재난을 정권 탓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무책임한 사람들의 지청구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대비책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그렇다면 대책을 내놓지 왜 남 탓만 하고 있겠습니까. 특단의 대책이 있지만 정권을 잡을 때까지 아껴두겠다는 말입니까. 그런 허언에 귀 기울일 때가 아닙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정치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 책임입니다. 바로 내 탓이란 말입니다. 지금 이 땅은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세월호요, 우리 모두가 세월호 선장인 겁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나 하나쯤 하는 무신경으로, 또는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느라 의무를 뒷전에 내려놓습니다. 낚싯배와 목욕탕, 병원 말고도 곳곳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입니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고가 천재지변보다 큰 참사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피스트 철학자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는 거지요. “옳지 않은 짓을 하고 그래서 생긴 소득으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게 낫다. 우리가 올바르다면 신에게 벌 받지는 않겠지만 이득을 놓칠 것이요, 옳지 않다면 이득을 챙기고 일부를 신에게 제물로 바쳐 면책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를 논박한 소크라테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사고가 안 나길 바란다면 요행일 뿐이며, 하루를 무사히 넘긴다면 하루만큼 운이 좋을 따름입니다.
 
언제까지 운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피에로들의 집』이라는 윤대녕 소설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로 재구성된 가족 얘기입니다. 거기서 어머니 격인 ‘마마’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자신을 건사하지 못하는 인간은 남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야. 심지어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그 때문에 비난을 받는 순간에도 말이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무력할뿐더러 당신을 돕는 사람을 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당신일 수 있습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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