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액 유혹 뿌리치고 태극마크 단 스위프트·한라성 … 선짓국 즐기고 애국가 흥얼대는 15인 “난 대한민국 국대다”

중앙일보 2018.01.30 01:49 종합 4면 지면보기
귀화한 태극 전사들

귀화한 태극 전사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공격수 마이클 스위프트(31·하이원)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다. 그는 2016년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골리와 일대일로 맞대결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뒤 벤치로 돌아와선 실수를 자책하며 스틱을 바닥에 내리쳐 부러뜨려 버렸다. 2011년 한국 땅을 밟은 스위프트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대한 애착을 보여 준 일화다. 아시아리그에서 네 차례 포인트 왕에 오른 그는 거액을 앞세운 스위스 1부 리그 팀의 러브콜도 거절했다. 제2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좋은 조건을 뿌리쳤다.
 

남자 아이스하키 7명 가장 많아
지난해 월드챔피언십 승격 기적
스위프트, 스위스 러브콜도 거절

출산 뒤 러 대표 탈락한 프롤리나
한국 귀화해 바이애슬론 메달 선사
루지 주니어 2관왕 프리쉐 새 도전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은 ‘태극전사’가 설원과 빙판을 누비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은 144명. 이 가운데 10%가 넘는 15명이 귀화선수다. 종목별로는 아이스하키 10명, 바이애슬론 3명, 피겨스케이팅과 루지 각 1명이다. 국적별로는 캐나다 출신 8명, 미국 3명, 러시아 3명, 독일 1명 등이다.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엔 귀화선수라고 해 봐야 중국 출신의 쇼트트랙 선수 공상정이 유일했다.
 
그러나 2018년 대한민국은 다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이 넘는다. 다국적·다문화 시대를 맞아 해외 출신 선수를 대거 받아들였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스켈레톤을 빼면 한국 겨울스포츠는 여전히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다. 그래서 대한체육회는 귀화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2010년부터 체육 분야 우수 인재는 특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획득할 수 있다.
 
귀화한 태극 전사들

귀화한 태극 전사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5명 중 7명이 귀화선수다. 캐나다 출신 맷 달튼(32), 알렉스 플란트(29), 브라이언 영(32), 브락 라던스키(35), 에릭 리건(30)과 미국 출신 마이크 테스트위드(31) 등이다. 이들은 풀타임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리거는 되지 못했지만 유럽 무대에서 활약했던 베테랑이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고전하던 남자 아이스하키는 이들이 합류한 뒤 기량이 급성장해 지난해 4월 세계선수권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으로 승격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한국 이름 한라성(漢拏城)으로 불리는 골리 맷 달튼은 “돈을 원했다면 러시아 리그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의 골문을 막고 싶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내 경험을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귀화한 태극 전사들

귀화한 태극 전사들

여자 아이스하키에도 귀화선수가 3명이나 된다. 랜디 희수 그리핀(29), 캐롤라인 박(29), 대넬 임(25) 등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희수 그리핀은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듀크대 생물학과 석·박사 통합 과정을 이수했다. 유니폼에는 어머니 이름 ‘희수’와 등번호 37번이 새겨져 있다. 그는 1937년 태어난 외할머니를 위해 등번호를 37번으로 정했다. 몸이 편찮은 외할머니가 빙판 위에서 뛰는 손녀의 등번호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귀화한 태극 전사들

귀화한 태극 전사들

스키와 사격이 결합한 종목인 바이애슬론에도 러시아 출신 선수 3명이 활약 중이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여자 스프린트 4위 안나 프롤리나(34)는 2013년 출산한 뒤 러시아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2년 전 한국으로 귀화한 프롤리나는 지난해 한국 바이애슬론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메달(은·동메달)을 따냈다.
 
2012년 독일 국적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 2관왕에 올랐던 여자 루지 아일린 프리쉐(26)는 한국으로 귀화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에서 재미동포 민유라(23)와 짝을 이룬 미국 출신 알렉산더 겜린(24)은 한복을 입고 아리랑에 맞춰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스컨트리 종목의 김 마그너스(20)와 미국 입양아 출신인 스키 프리스타일의 이미현(24)은 이중 국적으로 국적을 회복한 경우다.
 
귀화한 태극 전사들

귀화한 태극 전사들

각 종목에 걸쳐 귀화선수가 10명을 넘어서면서 찬반 논란도 뜨겁지만 세계 각국에서 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캐나다 동포인 백지선 남자 아이스하키 감독은 “스포츠계에서 귀화는 국제적인 추세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개최국인 이탈리아는 캐나다와 미국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 11명을 발탁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 공격수 마이클 스위프트는 “7년 전 한국 땅을 밟은 뒤 1년 중 9개월 이상을 한국에서 지낸다. 이제 한국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 주장 박우상(33·한라)은 “귀화선수들의 장비엔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이들은 틈날 때마다 애국가를 흥얼거린다”며 “귀화선수들이 선지 해장국을 즐기는가 하면 종종 매운 음식을 찾는 모습을 보며 ‘이제 한국 선수가 다 됐구나’ 실감한다”고 전했다.
 
체육철학자 김정효(서울대 강사) 박사는 “기량이 좋은 귀화선수를 통해 노하우를 전수하는 한편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꾸라지 수조에 메기를 한 마리 넣으면 미꾸라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메기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반면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올림픽을 앞두고 급하게 합류한 귀화선수에게 국민이 과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메달을 딴다고 해도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