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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는 흰색으로 뭉쳤다 … 팝스타도 ‘미 투’

중앙일보 2018.01.30 01:01 종합 21면 지면보기
2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케샤(첫줄 왼쪽에서 셋째)와 비비 렉사·신디 로퍼·카밀라 카베요·안드라 데이·줄리아 마이클스가 함께 노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케샤(첫줄 왼쪽에서 셋째)와 비비 렉사·신디 로퍼·카밀라 카베요·안드라 데이·줄리아 마이클스가 함께 노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엔 검은 물결 대신 흰 장미가 넘실댔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제60회 그래미 시상식에는 가슴에 흰 장미를 단 가수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올해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검은 드레스 차림을 주도, 화제가 된 성폭력 근절 단체 ‘타임스 업(Time’s Up)’에 연대와 지지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외신들은 음악인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모임 ‘보이시즈 인 엔터테인먼트(Voices in Entertainment)’가 사전에 편지로 “흰 장미는 역사적으로 희망과 평화, 동정과 저항을 상징한다”며 참여를 독려했다고 전했다.
 

제60회 시상식 뉴욕서 열려
보수적 대중음악계 변화 조짐
브루노 마스 ‘올해의 앨범’ 등 6관왕
힐러리 깜짝 동영상 출연도

올해 60돌을 맞아 15년 만에 LA대신 뉴욕에서 열린 그래미는 장소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백인 편향적”이란 세간의 평가를 의식이라도 하듯 브루노 마스(33)에게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본상 4개 중 3개를 안겼다. 팝·록·포크·컨트리 등 백인 중심 음악에서 벗어나 R&B를 부르는 푸에르토리코·필리핀 혼혈로 하와이 태생인 가수를 택한 것이다. 지난해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비욘세나 2016년 11개 부문 후보였던 켄드릭 라마가 본상 수상에 실패한 것과 확연히 다른 결과다. 지난 60년 동안 그래미 본상을 받은 흑인 가수는 스티브 원더, 마이클 잭슨 등 극소수다.
 
브루노 마스. [AP=연합뉴스]

브루노 마스. [AP=연합뉴스]

2016년 11월 발매된 3집 ‘24K 매직’으로 ‘베스트 R&B 앨범’, 타이틀곡 ‘댓츠 왓 아이 라이크(That’s What I Like)’로 ‘베스트 R&B 송’ 등 이날 6관왕을 차지한 브루노 마스는 “15살 때 하와이에서 노래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 1000여 명이 즐겁게 춤추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앨범으로 그때처럼 사람들을 기쁨에 넘치게 하고 싶었다. 이 상을 그분들에게 바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연설자로 나선 자넬 모네. [로이터=연합뉴스]

연설자로 나선 자넬 모네. [로이터=연합뉴스]

‘음악의 장’을 넘어 ‘정치의 장’이 된 올해 그래미에는 다양한 이슈가 화두에 올랐다. 케샤를 소개하러 무대에 오른 자넬 모네는 “우리가 힘이 약하다고 발언권을 빼앗던 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여성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 함께하자”고 강조했다. 음악 프로듀서 닥터 루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맞고소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케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성추행·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는 미 투(Me Too) 캠페인처럼 이날 케샤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프레잉(Praying)’을 부르다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 곁에선 화이트 수트·드레스를 차려 입은 신디 로퍼·카멜라 카베요·줄리아 마이클스·안드라 데이 등 다양한 연령대 여성 뮤지션이 서로 끌어안으며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바나(Havana)’로 라틴팝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카베요는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U2를 소개하며 “미국은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나라”라며 “저도 쿠바에서 아무것도 없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왔고 자랑스럽게 여러분 앞에 서 있다. 저 같은 어린이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흰 장미를 물고 있는 마일리 사이러스. [AFP=연합뉴스]

흰 장미를 물고 있는 마일리 사이러스. [AFP=연합뉴스]

화려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레이디 가가와 핑크 역시 절제된 무대를 선보였다. 백조처럼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가가는 피아노 앞에서 ‘밀리언 리즌(Million Reasons)’ 등을 연주하며 노래했고, 핑크는 여성 인권을 다룬 ‘와일드 하트 캔트 비 브로큰(Wild Hearts Can’t Be Broken)’을 수화와 함께 선보였다. 여성·흑인·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를 위한 무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낭독하는 코미디 영상에서 정점을 찍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이 등장해 “그는 오랫동안 독살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가 맥도날드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등 책 내용을 읽으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트럼프의 정책을 조롱했다.
 
켄드릭 라마. [로이터=연합뉴스]

켄드릭 라마.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4:44’로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제이지와 ‘댐(DAMN.)’으로 7개 부문에 오른 켄드릭 라마가 본상 수상에 실패하면서 ‘반쪽짜리 변신’이란 비판도 나온다. 당초 두 사람의 접전이 예상됐으나 제이지는 무관에 그쳤고 라마는 2016년에 이어 ‘베스트 랩 앨범’등 랩 5개 부문만 휩쓸었다. 지난해 유튜브 조회수 47억 뷰를 기록하며 전 세계 라틴팝 열풍을 이끈 ‘데스파시토(Despacito)’의 루이스 폰시도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은 실패했다.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올해의 음반’ 후보 5팀 중 힙합이 3팀, R&B가 1팀이다. 그만큼 주류 음악에서 흑인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라며 “그럼에도 계속 수상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데이비드 샤펠은 “아직도 미국에선 흑인 청년이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며 농담 섞인 우려를 표했다. 켄드릭 라마는 수상 소감에서 “랩 덕분에 무대에 서고, 가족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의미는 힙합 덕분에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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