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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화재참사에도 여전히 잠자는 소방 관련법…왜 늦어지나

중앙일보 2018.01.28 17:46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사망자가 28일 현재 38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대책 입법을 처리해야 할 국회의 책임방기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행정안전위는 ▶소방기본법 개정안 ▶도로교통법 개정안 ▶소방산업진흥법 개정안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등 소방안전 법안 5개를 통과시켰다. 불법주차로 소방차 진입방해시 과태료 부과, 소방안전관리자 실무 교육 미실시시 과태료 부과 등의 조항이 담겼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화재 참사 이후 20일 만이라 "소잃고 외양간 고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스프링클러 미설치 건물에 대한 대책 논의도 전무

제천화재 현안보고를 위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가 지난 10일 열렸다. 왼쪽부터 조종묵 소방청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 강정현 기자

제천화재 현안보고를 위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가 지난 10일 열렸다. 왼쪽부터 조종묵 소방청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 강정현 기자

 
20대 국회에서 소방안전 법안이 발의된 건 2016년 11월께다. 소방기본법 개정안의 경우 2017년 2월에 행안위에 상정돼 대체토론까지 거쳤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다 제천 참사가 터지자 성난 여론에 밀려 행안위가 부랴부랴 통과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회를 최종 통과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이들 5개 법안이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법사위에 계류 중인 데다, 법사위는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에 따라 2월 국회 일정에 맞춰 30일에야 개최된다. 법사위에서 처리가 된다고 해도 안건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다음 달 20일에 예정돼있다. 결국 이번 밀양 참사 이후 한 달 여가 지나서야 법령 손질이 완료되는 셈이다.
이는 현 법안처리시스템의 한계와도 관련된 문제다. 행안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행안위에서 소방안전 법안들의 시급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사위 차원에선 예산 법안과 연계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처리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법안 자체엔 아무 이견이 없어도 정치적 쟁점 등과 패키지로 엮이는 바람에 상임위→법사위→본회의로 이어지는 법안처리시스템이 곳곳에서 중단되기도 한다.
 특히 밀양 참사에서 인명 피해가 컸던 요인이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국회 차원의 논의 자체가 아예 없다.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이후 요양병원에 대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규정이 마련됐지만,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은 일반병원이라 이 법망에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2017년 1월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6층 이상 건축물의 경우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했다. 하지만 밀양 세종병원은 5층 규모인 데다 시행령에 기존 건물의 소급적용 규정이 없어 설치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아 현장감식 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재모 법안전과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아 현장감식 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재모 법안전과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이에 대해 제진주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건물보다 중소 건물에 안전시설 설치를 강제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정치권이 경제적 부담에 대한 반발을 더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방관계자들에 따르면 6층 건물 신축시 스프링클러 설치비용이 5000만~6000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만약 기존 건물에도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할 경우 건물주가 이 비용을 고스란히 임대료에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또 공사기간 중 건물 사용을 못하기 때문에 영업손실 등의 추가 비용도 발생한다.
제 교수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를 강제하기 전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투자 없이 안전을 100% 확보하겠다는 ‘공짜 심리’를 버리고 정부와 국회, 국민이 삼위일체가 돼 관련 규정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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