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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가슴 뜨거웠던 1991년 단일팀, 2018년 단일팀엔..."

중앙일보 2018.01.28 10:51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지난 25일 처음 결성됐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을 이뤄 출전할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충북 진천선수촌에 모여 28일부턴 본격적인 합동 훈련에 돌입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결성되면서 자주 회자되는 건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남북 탁구 단일팀이다. 당시 분단 후 최초로 결성된 남북 단일팀은 한 달간의 합동 훈련을 한 뒤 대회에 출전해 여자 단체전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남북 탁구 단일팀의 주축 선수였던 현정화(49) 렛츠런 탁구단 감독이 중앙일보에 당시 감회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나설 후배들을 향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1991년 남북 단일팀 당시 현정화(왼쪽)-이분희. [사진 현정화]

1991년 남북 단일팀 당시 현정화(왼쪽)-이분희. [사진 현정화]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 대표팀이 결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27년 전 '코리아' 이름으로 한데 뭉쳤던 남북 탁구단일팀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3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 인생에선 어느 때보다 가장 가슴 뜨거웠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올림픽에서 처음 남북 단일팀이 결성돼 나간다고 하니 의미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단일팀 인원과 구성이 결정됐다. 당시 남북 탁구 단일팀이 결성됐을 때도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면이 있었다. 나를 비롯해 당시 탁구대표팀 선수들은 언론 보도로 '세계선수권에 남북 단일팀이 참가한다'는 말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가 '단일팀으로 대회에 나가니까 공항으로 나오라'고 우리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안기부 소양 교육을 받은 뒤에 그냥 무작정 나갔다. 갑작스러웠던 단일팀에 처음에는 '이걸 왜 할까'라는 생각이었다. 한 달 만에 호흡을 맞춰서 잘 되냐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했다. 당시 스물두살이었던 나는 많은 관심을 받고 지낼 때였다.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어릴 때부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입장에서 '단일팀원이 돼서 어떻게 하면 많은 국민들이 주신 사랑과 관심을 돌려드려야 할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단일팀원으로서 잘해야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세계선수권이 열린 일본 지바로 떠났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이분희(왼쪽)-현정화. [사진 현정화 감독]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이분희(왼쪽)-현정화. [사진 현정화 감독]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막 한 달 전부터 남북 선수들은 호흡을 맞췄다. 처음에 북한 관계자가 나보고 "당신이 잘해야 한다"고 할 만큼 북측 인사들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북측에서 봤을 땐 현정화가 필요했고, 반대로 남측에서 봤을 땐 북한 에이스 이분희가 필요했다. 남북 코칭스태프는 그렇게 서로 필요했던 둘이 하나로 합쳐지면 잘 될 거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남북의 주전이니까 서로 자존심도 안 상하고 싶었고, 그만큼 책임감도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대회 전 한 달이라는 시간은 충분했다. 남북 선수들 간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친해졌다. 처음엔 북한 선수 방에 가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그러나 30일 동안 그 지시를 따를 수만은 없었다. 밤에 몰래 서로의 방에 놀러 가서 얘기를 나눴다. 분희 언니와 내가 둘만 있을 때는 가슴 속에 있는 얘기도 다 털어놨다. 북한 선수들은 "너희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더 친해졌다. 연습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용어는 북한 선수들이 사용하는 우리말로 통일했다. 훈련량이 늘면서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
 
우리의 목표는 중국을 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기력과 북한의 경기력 모두 뻔한 것이었다. 따로 대회를 나가면 중국을 넘는 게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남북이 만나면서 시너지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나도 대회 직전에 컨디션이 나빴지만, 대회가 시작하면서 뭔가 모를 기운이 살아났다. 일단 결승에만 올라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북이 힘을 합친 우리에겐 남들이 갖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힘이 있었다. 그게 코리아의 힘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을 넘어 정상에 올랐다. 나의 '인생 경기'였다.
 
당시 나의 복식 파트너였던 분희 언니와의 인연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분희 언니가 몇 년 전에 인터뷰를 통해서 "현정화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도 분희 언니는 친언니 같은 분이다. 이번 평창 겨울패럴림픽 때 분희 언니가 조선장애인올림픽위원회 서기장 자격으로 올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온다고 한다면 난 무조건 만나러 갈 거다. 그리고 27년 만에 만나면 먼저 언니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우리는 마지막에 헤어질 때 서로 끌어안았다. 만나면 "정말 보고 싶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없는 둘만 있는 장소에서 다시 한번 진솔한 얘기를 나눌까 한다. 그런 감동이 남북 탁구 단일팀엔 있었다.
 


추진 과정에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매우 뜨겁다. 단일팀이 구성됨에 따라 평창올림픽에서 매 경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피와 땀을 흘려 4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고생한 사연들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단일팀이 된 상황에서 올림픽에 더 집중하고,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준비할 때다. 좋은 경기력을 펼치기 위해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1분을 뛰든, 10초를 뛰든, 이제는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얼마나 잘해야 할까'라는 마음을 갖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을 뛰어도 그 선수가 두 배로 뛰는 시간만큼 귀중하게 생각하고 뛴다면 나는 그 선수가 더 예뻐 보일 것 같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 현정화(오른쪽)풦M0122003403503.tif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 현정화(오른쪽)풦M0122003403503.tif

 
어차피 단일팀을 구성한 상황이라면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북한 선수들과 짧은 시간 안에 더 빨리 호흡을 맞추려면 많은 것들을 양보하자. 그런 배려심이 북한 선수들을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 경기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코리아와 일본의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 최종전은 '빅 이벤트'가 될 것이다. '일본을 이기자'는 목표로 덤벼들면 충분히 남북 선수들 간의 시너지도 더 생길 것이다.
 
현정화 감독. [연합뉴스]

현정화 감독. [연합뉴스]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은 항상 스포츠가 맡았다. 앞으로도 스포츠가 그런 역할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 단일팀은 꼭 필요하다. 내가 그 뜨거웠던 감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단일팀의 필요성을 꾸준하게 이야기해왔다. 단, 단일팀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시간도 필요하고, 그만큼 해당 종목 선수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엔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한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 모든 과정에서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합심해서 추진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의 응원과 지지를 받지만 이번엔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대회가 한 달도 안 남은 상태에서 충분한 소통 없이 갑작스러운 추진은 선수나 코칭스태프 입장에선 당하는 입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배려없는 추진은 안 된다.
 
이렇게 추진된 만큼 정부도 단일팀이라는 단순 이벤트로만 끝내지 말고, 여자 아이스하키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 어려운 생계에도 꿋꿋하게 도전하는 선수가 많단 이야기를 들었다. 단일팀이라는 단순한 이벤트로만 끝나지 않고, 많은 관심을 받는 선수들이 올림픽 후에도 생계 걱정 없이 꾸준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 단일팀을 추진하는 과정의 마음가짐처럼 선수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 남북단일팀 구성은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건 물론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그 결과 여자아이스하키 종목이 남북교류에 기여한다면 단일팀 구성의 가치는 기대 이상이라 할 만하다. 단일팀 구성을 통해 '1석 4조'의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현정화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현정화 감독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 (1991년 탁구 세계선수권 남북 단일팀 멤버), 정리=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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