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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가능하면 지루 … 불확실함 속에 재미와 의미 있어

중앙선데이 2018.01.28 01:00 568호 28면 지면보기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인간은 사실로 판단하지 않는다. 사실에 대한 인식으로 판단할 뿐이다. 확률적 사실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 조너선 배런에 따르면 사람들은 확률을 1~100%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확실’ ‘가능성 있음’ ‘불가능’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가령 100%와 90%+10%의 객관적 가치는 완벽히 일치한다. 그런데 확실성을 담보하는 100%와 달리, 90%+10%는 불확실한 확률값의 결합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100%는 확실한 것, 90%+10%는 불확실한 것으로 범주화한다.
 
우리의 뇌는 불확실에 예민하다. 이로 인해 객관적 확률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익숙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모리스 알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게임을 제시했다.
 
<게임 1>
A. 500만원을 얻을 확률 10% + 100만원을 얻을 확률 89%
B. 100만원을 얻을 확률 100%
 
<게임 2>
C. 500만원을 얻을 확률 10%
D. 100만원을 얻을 확률 11%
 
 
사람들은 <게임 1>에서 A와 B, <게임 2>에서 C와 D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 실험 결과, 실험 참가자의 과반수가 <게임 1>에서는 B를, <게임 2>에서는 C를 선택했다. A는 500만원을 얻을 10%의 확률이 있지만 한 푼도 못 얻을 1%의 확률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금액이 적더라도 100만원을 확실하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B를 선택하려 한다.
 
반면 C와 D는 모두 낮은 확률이고 대안 간 확률 차이도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액이 큰 C를 선택하기 쉽다. <게임 1>의 1%는 확실성을 결정짓기 때문에 금액보다 먼저 고려한다. 그러나 <게임 2>의 1%는 확실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액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같은 1%라도 확실성을 보장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뇌는 다른 대접을 한다.
 
불확실은 위험을 동반하기에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확실한 것에 끌린다. 이익이 늘어도 불확실한 것보다 이익이 줄더라도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의 뇌는 확실하게 나쁜 예측보다 불확실한 예측을 더 싫어한다. ‘비 올 확률 100%’는 우산을 준비하면 된다. ‘비 올 확률 50%’는 우산을 준비할지 말지 선뜻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확실히 나쁜 사람보다 기분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더 큰 긴장과 불안감을 준다. 영국 직장인 3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직장인들이 꼽은 최악의 상사는 항상 화를 내는 ‘앵그리버드’형이 아니라 감정 기복이 심한 ‘지킬앤하이드’형이었다. 어쩌다 좋은 상사보다 성격이 모나도 예측 가능한 상사가 차라리 나은 것이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확실하다면 어떤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미래는 심적 안심을 주지만 지루함이 기다리고 있다. 불확실함은 그 자체로 고통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 나갈 때 비로소 자기다운 삶은 완성된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비 올 확률 0%나 100%보다 가장 불확실한 50%에서 탄생한다. 의미와 재미는 미지의 세계(the unknown world)에 숨어 있는 법이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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