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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한·중 FTA ‘쌍끌이’ 파고가 몰아친다

중앙선데이 2018.01.28 01:00 568호 15면 지면보기
미·중에 치여 샌드위치 신세
한국 경제에 엄청난 파고를 몰고 올 미국·중국과의 ‘쌍끌이’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협상이 본격적으로 개시된다. 2012년 발효된 한·미 FTA의 개정 협상과 2015년 한·중 FTA 타결 당시 미뤄왔던 서비스·투자 분야의 시장 개방을 논의하는 추가 협상이 31일부터 잇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를 휘감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광풍으로 협상 분위기는 벌써부터 얼어붙고 있다.  
 
기세등등한 미국
이미 타결된 한·미 FTA를 개정해야 한다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은 ‘힘 앞에 규범’이 아니라 ‘규범 앞에 힘’이라는 말로 상징된다.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리고 ‘공정무역’을 들고나온 트럼프 행정부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양자협상’을 통해 자국 이익을 쟁취하겠다는 패권국의 면모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80~90년대 수퍼 301조를 ‘전가의 보도’로 내세워 마구잡이로 통상압력을 가했던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1980년대 일본을 압박하며 징벌적 관세를 주도했던 통상 변호사 출신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임명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당시 일본산 자동차·반도체에 대해 일종의 수출 쿼터인 수출자율규제(VRA)를 이끌어내면서 ‘관리무역의 신봉자’라는 악명으로 유명했던 강경파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도 변수다. 멕시코 등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만만한 한·미 FTA를 대신 골랐다는 분석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대미 무역 흑자국 중 8위에 불과한 한국을 유독 겨냥하고 있는 것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조기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얻어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무역촉진권한(TPA)에 명시된 의회 통보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협상을 시작한 것 역시 미국의 본심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협상 권한을 위임받아 통상 현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TPA는 협상 개시 90일 전 의회 통보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TPA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미 국내법의 개정이 필요한 한국의 요구사항은 의회에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최석영 전 통상교섭본부 FTA교섭대표는 “행정부 권한만으로 가능한 관세율·원산지 규정 수정 등의 ‘좁은’ 대상만을 협상에서 양보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가장 밀어붙이는 분야는 자동차다. 미국이 NAFTA 개정 협상에서 제시한 미국산 부품 의무사용 비율 확대(50% 이상) 요구가 한국에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일본을 압박했던 자율 쿼터를 들이밀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현행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국내에 수입할 수 있는 미국산 자동차 수입 쿼터(2만5000대)를 대폭 확대하는 것을 비롯, 자동차 수리 이력 고지, 배출가스 인증 기준 등 국내 제도를 미국에 맞게 개선하라는 요구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도 정교한 맞춤형 협상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진 김앤장 변호사(국제경제법학회장)는 “(미국이) TPA 를 거치지 않고도 제도를 고칠 수 있는 투자자-정부 제소권(ISD)의 개정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ISD는 해외 투자가가 상대국에 의해 손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 남용 가능성 때문에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혔었다.
 
한·미 FTA 타결 당시 약속해놓고도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전문직 비자(H-1B) 쿼터의 확보도 과제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소규모로 조기 타결이 가능한 패키지를 먼저 제시하는 역공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7년 협상 당시 한국은 쌀 시장 개방을 미국이 요구하자 미국 내에서 미국산 선박만 사용토록 하는 존스법의 개정을 앞세운 맞받아치기 전략으로 개방 압력을 끝내 막아낸 바 있다. 정인교 교수는 “미국이 11월까지 협상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협상 주기를 늦추는 지연전략과 한국 내 반대 여론을 지렛대로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만디’전략 펴는 중국
한·중 FTA 추가 협상은 2015년 상품분야 협상 타결 당시 서비스·투자 분야를 2년 뒤 협상키로 한 합의에 따른 것이다. 사드 배치 후폭풍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관광·유통업계 등의 돌파구가 마련되느냐가 협상 관전 포인트다. 중국이 완전 개방한 서비스 시장은 컴퓨터 설비·자문, 데이터 프로세싱 등 6개 분야에 불과하다. 일부 개방한 환경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등 84개 분야와 병원 서비스 등 65개의 미개방분야를 대상으로 중국 시장의 문을 얼마나 열어젖히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협상에선 시장 개방 범위에 있어 중국이 그동안 고수해오던 포지티브 방식(명문화한 분야만 개방) 대신 네거티브 방식(명문화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에 동의해 결과가 주목된다. 시장 개방 범위가 좀 더 넓어질 수 있는 만큼 꼼꼼한 협상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쟁점은 중국 내 자유로운 영업과 현지 법인 설립의 보장 여부다. 현재 미국·독일·일본에게만 허용된 여행사의 현지 영업(아웃바운드)과 온라인 쇼핑, 증권사·보험사 100% 독자 설립 등은 우리가 얻어내야 할 목표다.  곽노성 교수는 “과거 백두산 호텔 철거나 롯데마트 폐쇄 조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투자 투명성 강화와 보호 장치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바일 게임 등의 출시허가인 ‘판호’(출시허가)나 황금시간대 한국산 프로그램 방영 금지 등의 규제 장벽도 개선돼야 할 분야다. 정영진 변호사는 “명목상 개방 수준의 균형을 이루기보다 중국 내부에서 사업이 가능하도록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중국의 협상 태도다. 한국보다 시장 경쟁력이 취약한 중국은 “바쁠 게 없다”며 느긋한 입장이다. 추가 협상 개시도 2년이 다 되도록 응하지 않으면서 업계 자율조치라는 명목으로 비관세 장벽을 계속 쌓아갔다. 정인교 교수는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상품 분야가 개방된 만큼 농산물 추가 개방 카드를 내밀며 서비스와 묶어 일괄타결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적극적인 대비를 당부했다.
 
협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밀주의 협상 관행을 버리고, 다양한 전문가를 적절하게 활용하며 업계의 이익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노력이다. 과거 칠레가 미국과 FTA 협상 당시 협상장 옆방에다 국내 이해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협상 경과를 설명하며 설득했던 ‘옆방 정책(room next door)’은 양대 협상을 앞둔 우리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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