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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만 되면 같은 길을 간다

중앙선데이 2018.01.28 01:00 568호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칼럼
유영하 변호사의 인터뷰(중앙일보 1월 26일자 4, 5면)를 읽으며 착잡했다. 추운 겨울 영어(囹圄)의 몸이 돼 있는 분에게 더 무슨 말을 하겠나. 하지만 그게 박근혜 전 대통령만의 일이겠는가. 현재와 미래의 다른 대통령도 또 그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나.

국정은 단발성 선거공약과 달라
귀 열고, 국익 생각해 결단해야
공은 안 보이고, 과는 오래 남아
대통령이 방향 정해놓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면
다른 의견 말하기 어려워

 
박 전 대통령은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죄뿐’이란 항변으로 들린다. “내가 임기를 못 마치고 나올 줄 알고 그렇게 휴일도 없이 일만 했나 하는 생각이 요즘엔 가끔씩 든다”는 말까지 유 변호사는 전했다.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는 자리인가. ‘열심히’라는 게 대통령의 덕목은 아니다. 열심히 일할 사람은 많다. 장관도 있고, 비서관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열심히’ 일해 무엇을 남겼나. 휴일 관저에서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서 무엇이 달라졌나. 중간고사를 치르는 수험생이 아니다. 장관이라도 정책 과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큰 방향을 제대로 잡아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지나간 자리에 공(功)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과(過)는 오래 남는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후유증의 여파가 크다.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참모들과 의논하고, 나라 이익을 최대화하는 결단을 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단임으로 끝나는 건 정치적 이해를 떠나 오로지 나라만 생각하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26일 발표한 여론조사는 64%다. 2주 동안 9%가 빠졌다고 한다. 심지어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50%대(59.8%)로 떨어졌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특히 20~30대에서 두드러지게 떨어졌다. 대통령 취임 효과는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 치고 취임 초 지지율이 높지 않은 사람이 없고, 1년이 지나도 빠지지 않는 사람도 없다.
 
대통령에게 의욕적으로 일하라고 임기 초 밀어준다. 자칫 교만해질 수 있다. 이때쯤은 이것을 경계하려는 국민의 뜻인지 모른다. 정권으로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돌아볼 기회다. 그런 점에서는 먹기에 쓰지만 좋은 약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다. 문 대통령은 25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장관들을 질책했다. 청년 일자리는 가장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붙여놓은 것도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지지율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이 문제를 집어 든 것 같아 아쉽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9.9%였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을 포함하면 22.7%다.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실업을 포함하면 절반에 가깝다는 추정도 있다. 문제는 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말 국정의 중심에 놓고 전력을 다했는가.
 
새 정부 들어 손을 대는 일마다 심각한 상처만 남았다. 지난 정부에서 부담을 떠안은 일들을 다시 꺼내 악화시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는 중국의 기대감만 높여놓고, 미국에는 불신을 키웠다. 우리 기업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위안부 문제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일본과의 관계만 나빠졌다.
 
취임 초 종이컵을 들고 산책하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모습은 신선했다. 지난 정부의 불통과 선명하게 대비됐다. 그러나 보여주기만으로 국정이 굴러가는 건 아니다. 북핵 문제, 블록체인, 자사고 폐지, 강남 집값, 최저임금…. 어느 하나 안타로 기록하기가 어렵다. 신년사에서 “새해에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사고가 이어졌다.
 
더구나 국가 정책은 단발성이 아니다. 말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 공약과 다르다. 다른 부문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사고를 없애는 게 강남 집값을 올리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일자리를 줄이고, 영세사업자를 구조조정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실행 가능성을 높이려면 귀를 열어야 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도 들어야 한다.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빠진다고 한다. 온갖 정보가 내 책상에 올라오기 때문이다. 독단에 빠지는 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과 관련한 보고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왜 사람들이 나한테 아무도 그런 얘기를 안 해줬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정윤회 사건 때 이미 다 노출됐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사했을 때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를 해임했다.
 
문제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생 지만씨의 말조차 믿지 않았다. 대통령이 먼저 방향을 정해놓으면 다른 이야기를 못 한다. 반대편 의견에 대통령이 분노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딱지를 붙이면 누가 다른 이야기를 전하겠나. 객관적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도 다른 소리를 하면 할 말이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나에게 오는 보고서에 현철씨 문제는 한 줄도 없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이 화를 내니 아들 이야기는 하지 마라”고 말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야당 총재 시절부터 아들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게 했다.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라며 감쌌다. 결국 두 대통령은 그 문제로 레임덕을 겪었다.
 
대통령으로 성공하는 길은 다양하다. 그러나 실패하는 길은 비슷하다. 대통령이 되려 하는 정치인들도 다 안다. 그런데도 대통령만 되면 같은 길을 간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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