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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이창호 “유행에 뒤처져도 지금의 내가 좋다”

중앙일보 2018.01.25 01:09 종합 19면 지면보기
최근 단체전에서 맹활약 중인 이창호 9단은 ’아직은 승부 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최근 단체전에서 맹활약 중인 이창호 9단은 ’아직은 승부 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전설’은 영원하다.
 

국내외 단체전서 활약, 우승 견인
“점점 실수 잦아져 장고바둑 선호”
매년 책 100권 읽기 목표로 세워
“KB리그서 좋은 활약 보여줄 것”

개인 통산 140회 우승에 빛나는 이창호(43) 9단이 부활하고 있다. 이번엔 단체전을 통해서다. 이 9단은 19~20일 중국에서 열린 ‘진리배 한·중 바둑리그 우승팀 대항전’에서 2연승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 대회는 지난해 한국과 중국 바둑리그의 우승팀끼리 맞붙어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다. 한국은 정관장황진단(감독 김영삼), 중국은 중신베이징이 각각 출전했다. 이 9단은 한이저우 7단과 ‘최강자’ 퉈자시 9단을 연파하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창호 9단은 지난달 2017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강력한 한 방으로 절박했던 팀을 구해냈다. 챔피언결정전 최종 3차전에서 팀이 2연패로 몰린 상황에 등판한 이 9단은 극적인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결국 창단 후 첫 우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단체전에서 성적이 좋은 이유를 묻자 이 9단은 “사실 단체전보다는 개인전을 둘 때 마음이 더 편하다. 그래도 단체전은 후배 덕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거 같다”며 웃었다.
 
‘한·중 바둑리그 대항전’에서 퉈자시 9단을 꺾고 팀 승리를 이끈 이창호 9단(왼쪽). [연합뉴스]

‘한·중 바둑리그 대항전’에서 퉈자시 9단을 꺾고 팀 승리를 이끈 이창호 9단(왼쪽). [연합뉴스]

한 때 ‘천재 소년’으로 불렸던 이창호 9단도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KB(퓨처스 포함)리그에서 뛰는 72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같은 팀(정관장황진단) 동료인 신진서(18) 8단과는 나이 차가 무려 25살이나 된다.
 
나이가 들어 어린 선수들을 상대로 승부를 겨루는 데 대한 어려움을 묻자 이 9단은 “나이가 들면 확실히 순발력이 떨어지고 끝내기 단계에서 실수가 잦아지는 것 같다. 특히 속기 바둑을 둘 때 실수가 잦아져 개인적으로는 장고 바둑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바둑 트렌드에서는 속기 바둑을 피하긴 어려운 거 같다”고 대답했다.
 
요즘 바둑의 또 다른 트렌드인 인공지능(AI) 바둑에 관해 묻자 이창호 9단은 “AI와 대결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AI는 실수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짧아질수록 사람이 불리하다. 지금은 AI와 사람의 실력 차도 커졌기 때문에, 속기라면 사람이 AI한테 2점을 깐다 해도 불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AI와 대결해볼 의사가 있는지 묻자 “이미 사람과 실력 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라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우회적으로 거절했다.
 
이창호 9단은 사실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대표적 아날로그형 인물이다. 그는 아직도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지만, 통화와 문자 등 기본적인 기능 외에는 사용할 줄 모른다. 심지어 카카오톡도 사용해본 일이 없다. 이 9단은 “인제 와서 나를 바꾸기에는 나와 세상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진 것 같다. 더구나 세상의 변화 속도도 너무 빨라서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호 9단은 한가한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 매년 100권 읽기를 목표로 삼을 만큼, 책 욕심이 많다. 이 9단은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꼽았다. 이 9단은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감명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TV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JTBC ‘차이나는 클라스’는 즐겨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산책을 한다는 이창호 9단은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라 항상 훈련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산책을 하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별명인 ‘석불(石佛·돌부처)’다운 대답이다.
 
이창호 9단은 새해 목표를 KB리그 10승으로 정했다. 그는 “바둑에도 유행하는 포석이 많은데, 요즘 포석을 모두 따라잡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새해에는 바둑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KB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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