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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 재계 확산…"근무 현실 감안하면 쉽지 않아요"

중앙일보 2018.01.24 15:53
문재인 정부의 핵심 노동 정책 중 하나인 근로시간 단축제(주당 68시간→52시간)의 7월 시행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이 ‘예행연습’에 분주하다. 정책 시행에 앞서 시범 운영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스스로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모든 업무에 일괄적으로 주 52시간을 적용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 7월 시행 앞서 예행연습
현대차·LG전자 등도 준비중, 전 산업 확산 분위기
R&D·디자인 담당은 제품 출시 임박 야근 불가피
고객 접점, 건설현장은 성수기 수요 맞추기 힘들어
재계 "탄력 근로시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달라"

SK하이닉스는 다음 달부터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 시범운영에 나선다고 24일 밝혔다. 회사는 임직원의 근무시간을 점검한다. 또 정보기술(IT) 시스템 개선, 통근 버스 시간 조정 등도 보완할 계획이다. 아울러 업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모든 부서로 확대하기로 했다. 임직원은 ‘하루 4시간 이상, 주 40시간 근무’라는 기본 틀 안에서 개인의 생활패턴ㆍ업무상황에 맞게 알아서 일하면 된다.  
 
문유진 SK하이닉스 HR 담당 상무는 “오는 7월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 대비하는 차원”이라며 “세대가 달라지면서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이달부터 근태 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비(非) 업무시간의 근로시간 배제’다. 식사ㆍ흡연ㆍ커피를 즐기는 시간은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에서 제외한다. 실제 일하는 시간을 철저히 52시간으로 관리,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팀장과 파트장에게는 ‘팀원들이 52시간 이상을 근무할 경우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내용도 전달했다.  
 
현대차ㆍLG전자는 물론 주요 분야 대기업들도 비슷한 내용의 시범운영 방안을 준비 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 폭이 큰 만큼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까지 대부분의 산업에서 자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조치는 비효율적인 근무시간을 줄이고 휴가권리를 권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나아가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산업계 전반의 근로조건 향상에도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계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발적으로 사회적 요구에 응하면서 기업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되레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찮다.  
 
연구개발(R&D)이나 디자인 담당 부서는 업무 특성상 제품 개발 막바지에 일이 몰릴 수밖에 없고, 해당 업무를 다른 사람이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 자칫 주 52시간을 지키다 보면 개발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예전에 '7ㆍ4제(오전 7시 출근ㆍ오후 4시 퇴근)'를 도입했지만 결국 출근 시간만 빨라지고 퇴근 시간은 변화가 없어 유명무실해졌다"며 "추가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오히려 상사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감이 몰리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생산현장도 고민이 크다. 예컨대 에어컨의 경우에는 성수기에는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해도 수요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 및 플랜트ㆍ기계설비ㆍ조선업계 등은 납기에 따라 업무량이 변동된다. 근로시간을 준수하다 보면 여러 하청에 숙련도가 떨어지는 새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작업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와의 접점에 있는 대리점도 비상이다. 이동통신업계 단말기 판매 대리점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약 10시간 운영되고 있다. 운영시간을 단축하면 사용자 방문이 줄면서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고객들도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단말기를 개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30분은 걸린다”며 “평일 퇴근 후 매장을 찾는 고객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자동차업계는 휴일 근로 중복할증이 ‘뜨거운 감자’다. 노동계의 요구대로 통상임금의 200%로 인상되면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현재 휴일근로 수당을 주중 연장근로와 동일하게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고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는 최근 주중에 부분 파업을 벌인 뒤 주말에 특근하려는 행태를 보였다”며 “휴일 연장근로 할증률이 높아지면 이런 행태가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현재 최대 3개월까지 허용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으로 확대해달라”고 건의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사가 합의하면 주 최대 법정 근로시간의 제약을 일정 기간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1년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추는 것을 조건으로 특정 기간에는 최대 64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고용 유연화를 통해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케 하는 식으로 노동시간을 낮췄다”며 “한국처럼 노동시장인 경직적인 국가는 근로시간 단축 시 추가 고용을 하기보다는 생산량만 감소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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