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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양극단의 비명과 중간자의 윤리

중앙일보 2018.01.23 02:07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이들이 있다. 정치, 젠더, 환경, 교육… 거의 모든 이슈마다 양쪽 극단에서 가장 큰 소리들이 쏟아져나온다. 중간에 있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공격적이고, 유연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고, 시끄럽지? 하지만 그 소음 속에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진짜 신호들이 있다. 그건 대부분 ‘힘들어 죽겠어…’ ‘아파…’ ‘억울해…’라는 비명이다.
 
성폭력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온건하고 예의 바르게 성차별과 혐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알바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젊은이가 어떻게 최저임금 인상이 거시 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걱정할 수 있을까.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노인이 어떻게 안보에 대해 지나칠 만큼 예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바마는 트럼프 현상을 비웃거나 한탄하지 않았다. 신경제로 이행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한 이들의 비명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오히려 연민의 목소리를 냈다.
 
일상有感 1/23

일상有感 1/23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성난 눈으로 부모를 노려보는 아이가 진짜 하고 싶어하는 말을. 감기는 고통스럽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신호다. 열이 펄펄 끓는 것도 우리 몸이 열심히 병과 싸우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은 실은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다. 국론 분열이 사회를 살리기도 한다. 중간자들이 제 역할을 다 한다면.
 
줄다리기는 양 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아니라 중간에 맨 손수건이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결과가 결정된다. 중간에 있는 이들이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으면 줄은 한쪽으로 확 끌려가고 만다. 중간자들은 성실해야 한다. 들어야 할 진짜 목소리를 듣고, 작은 한걸음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내디뎌야 한다. 양 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이를 악물고 외쳐대는 욕설 때문에 이들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결국 가장 먼저 넘어져 뒹굴고 흙투성이가 될 것은 양 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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