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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뚝이 영국 수상 된 게리 올드만..그 뒤엔 한국인 전문가

중앙일보 2018.01.22 10:35
영국 배우 게리 올드만이 영국 전 총리 윈스턴 처칠 역으로 골든글로브 드라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감독 조 라이트) 한 장면. [사진=UPI코리아]

영국 배우 게리 올드만이 영국 전 총리 윈스턴 처칠 역으로 골든글로브 드라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감독 조 라이트) 한 장면. [사진=UPI코리아]

 올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17일 개봉, 감독 조 라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에 취임, 고뇌에 찬 결단을 하는 윈스턴 처칠 이야기다. 호리호리한 주연 배우 게리 올드만이 배불뚝이 처칠로 감쪽같이 변신한 배경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fabricator, 특수의상 제작자) 바네사 리(49, 한국이름 이미경)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14년 간 ‘엑스맨’‘어벤져스’‘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헝거게임’ 등 100편 넘는 영화에 참여한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처음 시작했을 땐 크레딧에 이름이 못 올라가거나 하는 게 무척 서운했지만 지금은 배우들의 고맙다는 한마디가 더 보람되다”고 했다. 물론 가장 보람된 순간은 자신이 만든 특수의상이 "스크린에서 멋지게 표현될 때"를 꼽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1969년생).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에게 "예술작품"이라 극찬받은 특수 의상 '팻 수트'를 담당했다. [사진=바네사 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1969년생).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에게 "예술작품"이라 극찬받은 특수 의상 '팻 수트'를 담당했다. [사진=바네사 리]

-처칠의 체형도 유명한 인물인데 사전 준비를 어떻게 했나.  

할리우드 특수의상 제작자 바네사 리
'엑스맨''어벤져스'등 100여 편 참여
올해 개봉할 한국영화 '인랑'도

“특수분장을 담당한 카즈히로 츠지가 워낙 완벽주의자라 둘이서 몇 백 장 넘게 자료를 뒤졌다. 다행히 처칠경이 패셔니스타라서 그의 양복 사이즈가 남아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새로운 소재도 처음 사용했다던데.  
“폼 라텍스와 마이크로비즈를 쓴 건 물론 좀 더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려는 시도였다. 역시 굉장히 실제처럼 움직였다. 기존의 소파쿠션 폼은 일그러지고 뻣뻣해서 민감한 관객은 '팻수트(몸집이 커보이게 하는 특수의상) 입었네' 생각하게 되고 그럼 몰입에 방해가 된다. 배우도 역할에 녹아들기 힘들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1969년생).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에게 "예술작품"이라 극찬받은 특수 의상 '팻 수트'를 담당했다. [사진=바네사 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1969년생).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에게 "예술작품"이라 극찬받은 특수 의상 '팻 수트'를 담당했다. [사진=바네사 리]

-극 중 처칠의 차림이 나이트 가운과 정장, 크게 두 가지인데 팻수트도 다른가.  
“예리하다(웃음). 두 벌의 팻수트가 다르게 제작됐다. 나이트 가운용은 많이 힘들었다. 특수분장이 가슴까지 내려와 수트를 그만큼 잘라야하기 때문에 며칠 밤을 샌 걸로 기억한다. 고민하다 카즈히로에게 ‘안 될 것 같은데?’ 라고 e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딱 한마디 오더라. “MAKE IT WORK(가능하게 해).” 그래서 한바탕 크게 웃고는 결국 가능하게 했다. 물론 그래서 항상 카즈히로가 날 찾는거겠지만(웃음)."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1969년생).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에게 "예술작품"이라 극찬받은 특수 의상 '팻 수트'를 담당했다. [사진=바네사 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패브리케이터 바네사 리(1969년생).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에게 "예술작품"이라 극찬받은 특수 의상 '팻 수트'를 담당했다. [사진=바네사 리]

-새 의상을 만들 때 시행착오는 없나. 어느 영화는 특수의상에 바지 지퍼가 없어 배우가 화장실 갈 때마다 불편을 겪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그런 걸 배려하는 게 연륜의 차이인데, 나도 초창기에는 '화면에 멋지면 된다'는 주의였다. 딸아이가 연기를 전공하면서부터 좀 더 배우의 입장을 배려하게 됐다. 최고의 연기를 끌어낼 수 있고 보기도 좋은 옷을 만드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이게 됐다. 하지만 특수의상이 입기 쉽진 않다."
영화 트론 한 장면

영화 트론 한 장면

-뜻밖의 재료로 만든 특수의상도 있다던데.  
“’스타트랙’ 우주복. 양철수세미용 망사로 엮은 천으로 만들었는데 바느질이 정말 힘들었다. 집에 가면 어떻게 들어갔는지 속옷 안에도 철사 가루가 나오고. 너무 힘들어 이 직업을 그만둘 뻔 했는데 미술감독이 자기 평생 이렇게 예쁘게 카메라 받는 수트는 처음이라며 극찬을…(웃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면.  
“역시 '다키스트 아워'의 팻수트. 새로 연 스튜디오(지난해 그가 차린 특수의상 제작회사 '슈퍼수트팩토리') 첫 작품이기도 하다. 첫 번째 '토르' 수트도 있다. 그 팔에 붙인 네모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이 핑글핑글…. '트론'에 나오는 다프트 펑크의 조명 의상, '스타트랙' 우주복…너무 많다. "
영화 '토르' 한 장면.

영화 '토르' 한 장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대 초반이던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그가 번번이 직장을 잃고 낙심하자 어머니가 결단을 내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서 패턴사로 일하며 가정을 꾸린 그는 서른 넘어 우연히 구인광고를 보고 할리우드에 들어섰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실력으로 지금까지 왔다.  
-미국에서 ‘바네사’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 땐 조니 뎁을 좋아할 때라 당시 조니 뎁 와이프인 바네사 파라디의 이름을 훔친건데(웃음)."
-인종차별이나 장애·언어 등으로 인한 장벽은 어떻게 극복했나. 
"물론 여기도 인종차별은 있었지만 장애인 차별은 없던데.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물어보고 더 많이 웃어주면 되더라." 
-올해 개봉할 김지운 감독, 강동원 주연의 한국영화 '인랑'에도 참여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했나.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에서 영감을 받거나 차별화한 부분이 있나.   
“얼라이언스 스튜디오(미국 특스효과 회사)에서 디자인과 3D스컬핑을 진행했고 저에게는 전체 수트 제작을 해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원래 절친한 곳인데 한국영화라고 특별히 내게 제안을 한 거다. 원래 '인랑' 덕후였던지라 나도 무조건 맡겠다고 했고. 새로운 면도 있어야지만 원작의 느낌도 많이 안고 가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실루엣은 유지하되 디테일을 많이 넣었다. 게다가 테스트 샷을 보니까 강동원씨가 멋지게 옷맵시를 책임져줘서 아주 보람을 느꼈다."
-패브리케이터로서 흥미로웠던 한국영화라면.
"'인랑'에 기대가 크다. 그 외에 참 좋아했던 영화는 역시 '부산행'! 아직까지도 미국 사람들에게 권장하고 다닌다. 우리 좀비도 너희 못지 않다며."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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