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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정의와 오만

중앙일보 2018.01.22 01:5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몽상가와는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라는 팝송이 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가수 케니 로저스와 킴 칸스가 듀엣으로 불렀다. 노랫말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당신을 속이니까요. 당신이 그를 바꿔놓았다고 믿는 순간 그는 당신을 또 떠날 겁니다. 그는 늘 당신을 아프게 해요.”
 

체념 속 불의 못 참는 젊음들
오만 덮인 정의로는 못 달래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소란을 보면서 이 노래가 떠오른 건 꿈꾸는 정부가 자신을 사랑했던 젊은이들을 아프게 하는 모습과 포개지는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20, 30대의 80% 이상이 단일팀을 반대하다 못해 깊은 좌절과 거친 실망감을 토로하는 걸 보면 정말 아팠나 보다. 정부도 크게 당황하는 눈치다. 가상화폐 발길질에 이어 두 번 연속 예상치 못했던 2030의 거센 분노에 직면하니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부랴부랴 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위로했지만 그다지 먹힌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정부의 필살기인 감성정치도 2030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30을 요약하는 키워드는 ‘정의’다. 민주화 이후 세대인 그들은 온갖 부정과 비리를 보고 자란 위 세대와는 다르다. 여기에 절망적인 현실이 겹치며 정의는 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정규직이란 타이틀 자체가 감지덕지한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체념하지만, 그것이 정의롭지 못한 탓이라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금수저’와 ‘갑질’ 같은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몇 안 되는 기회마저 부당하게 빼앗기는 박탈감 탓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 정부의 키워드 역시 정의란 사실이다. 불의한 정권을 심판한 민주혁명을 성공시킨 국민이 선택한 정부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정부의 정의는 “내가 곧 정의”라는 오만으로 변색됐다. 스스로 혁명정부로 착각한 까닭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건 모두 적폐요, 내가 정하면 청산 대상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이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달랐다. 2030에 북한은 ‘ 금수저 갑질’ 김정은의 왕국일 뿐이다. 그런 그들과 단일팀을 만든다고 우리 선수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빼앗는 것은 정부의 뻔뻔한 ‘갑질’이었다. 북한에 환상을 가진 ‘몽상 정부’는 자기가 결정하면 당연히 따라줄 줄 알았다. 분노에 당황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믿었다. 속내가 실린 실언들이 그래서 쏟아졌다.
 
“여자아이스하키가 메달권 밖이니 문제 되지 않는다”는 총리의 말은 희망을 품는 것조차 사치인 젊음들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비정규직은커녕 알바로 전전하는 메달권 밖 인간들의 기회는 빼앗아도 된다”는 내 얘기였다. “단일팀 경기는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는 대통령 말도 “내가 곧 정의”라는 오만과 다름 아니었다. 북한 선수가 경기하는 장면은 참전 기회를 박탈당한 선수(나)에게는 최악의 장면이 될 터였다.
 
진짜 최악은 “지난 10년 보수 정권의 교육이 잘못된 탓”이라는 여당 인사의 말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좋은 교사는 북한이었다.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했으며 목함지뢰를 설치했다. 수많은 2030 청춘이 목숨을 앗기고 다리를 잃었다. 그러면서 개발한 핵과 미사일은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단일팀이 참가한 올림픽이 끝나면 또다시 미사일을 쏘아댈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학습효과가 없다면 그건 몽상을 넘어 망상에 가깝다.
 
2030들의 분노를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의에서 오만의 거품을 걷어내야 몽상에서 깰 수 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청와대 참모들이 오늘 2030들의 좌절의 깊이를 얕봤다가는 그들의 대학 시절 히트한 팝송 가사처럼 사랑을 잃고 버림받게 될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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