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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자동차 노사협상 9개월만에 겨우 마무리…독일서 배워라

중앙일보 2018.01.21 19:20
현대차 노사 2017 임단협 조인식 [중앙DB]

현대차 노사 2017 임단협 조인식 [중앙DB]

 
기아자동차 노·사가 지난 19일 2017년 임금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기아차는 19일 “국내 전 사업장 자동차 제조·정비·판매·생산을 재개한다”고 공시했다.

현대·기아·한국GM 등 3개사
노사협상에 200일 이상 소요
2016년(5개월) 대비 2배 걸려

파업 병행 관행 올해도 계속
임금 인상 수준이 결정적
산업 경쟁력 하락 우려 반복

 
이로써 국내 완성차 5개사의 2017년 노사협상은 모두 끝났다. 국내 5개 완성차 제조사가 노사 교섭을 모두 마무리하고 정상 조업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20일 이후 274일 만이다.
 
지난해 국내 완성차 노·사의 임금협상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볼 때 모두 낙제점이다. 일단 임금협상 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가장 오랜 기간 협상한 현대차 노·사는 272일이나 걸렸고, 5개사 중 3개(현대차·기아차·한국GM)나 교섭하는데 200일 이상을 소요했다.  
 
 
 
르노삼성차(130일)도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절대 협상 기간이 결코 짧지 않다. 1년의 75%라는 긴 세월 동안 협상하면서 한국 완성차 노·사는 최소 16회(쌍용차)에서 최장 42회(현대차) 테이블을 차려야 했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해를 넘겨 교섭을 겨우 매듭지었다.
 
파업 일변도의 후진적 노·사협상은 올해도 반복됐다. 현대차 노조는 24차례 파업해 1조8900억원(8만9000여대) 피해를 입혔고, 기아차도 “노조가 62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하면서 생산계획 대비 2만1035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2016년 631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한국GM의 노조도 지난해 다섯 차례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지난 12월 5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울산공장 본관 광장에서 올해 임단협 관련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중앙DB]

지난 12월 5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울산공장 본관 광장에서 올해 임단협 관련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중앙DB]

 
질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노조 등 주요 노조는 ‘사회적 파업’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임금 인상 수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 노·사가 지난해 12월19일 진통 끝에 도출했던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되자, 현대차 노조는 “임금 인상 수준이 예년 보다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노조원들은 20만원 상당 전통시장 상품권을 더 받아내면서 결국 2차 잠정합의안을 수용했다(찬성률 61.06%).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이후 현대차 노조가 파업한 횟수는 총 다섯 번. 이 기간 4140억원의 생산 차질이 추가로 발생했다.
 
 
임단협 찬반투표를 개표하는 현대차 노조. [사진 현대차 노조]

임단협 찬반투표를 개표하는 현대차 노조. [사진 현대차 노조]

 
임금인상에 집착하느라 정작 노사협상에서 다뤄야 할 내용이 빠졌다. 주요 자동차 노조는 근무형태·임금체계 논의안 등 노조원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합의안에서 제외했다. 노사협상을 진행하는 본질적 목표는 도외시한 셈이다. 
 
19일 ‘2018 중앙일보 올해의 차(COTY)’ 1차 심사에 참가한 윤대성 한국수입차협회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독일 출장 경험을 들려줬다. ‘탈탄소·전기차·내연기관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그는 독일 390만 금속노동자 단체인 독일 금속노조(이게메탈)의 예르크 호프만 위원장을 만난 일화를 들려줬다.
 
윤 부회장에 따르면, 예르크 호프만 위원장은 심포지엄에서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부무장관(당시 경제부장관·부총리)에게 “독일 일자리의 7분의 1이 자동차 산업”이라며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신기술이 자동차업계에 급격히 도입되면 국가적 문제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윤대성 부회장은 “당장 코앞으로 닥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주요 자동차 산업 현안에 대해, 한국 자동차업계도 ‘자동차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합심하는 독일 금속노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사협상이 오래 걸릴수록 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이미 학계에서 증명한 사실이다. 한국비교노동법학회가 100인 이상 178개 노조의 임금 및 단체협약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노·사 협상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업 실적은 하락했다. 논문에서 강성 노조는 노사협상에 평균 70.7일을 소요했는데, 이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52%에 그쳤다. 협상 기간이 강성노조의 절반(38.9일)인 기업은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5.17%였다.
 
실제로 지난해 완성차 제조사 실적은 노사관계와 다소 상관성이 존재한다. 가장 노사협상 기간이 길었던 현대차의 지난해 실적은 6.5% 감소했고, 가장 늦게 임금 협상을 타결한 기아차도 판매량이 7.8% 줄었다. 231일 동안 교섭을 진행했던 한국GM은 국내 완성차 제조사 중 판매량 감소 폭(-12.2%)이 가장 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면 국내 완성차 중 가장 빨리 노사교섭을 마무리한 쌍용차는 내수 판매량이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에 성공한 르노삼성차도 국내 완성차 제조사 중 유일하게 판매량이 증가했다(7.6%↑).
 
지난해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는 임금협상을 끝내자마자 다시 협상 테이블을 차릴 판이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9일 지난해 임금협상을 타결하는 조건으로 ‘2018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르면 다음 달 올해 교섭 테이블을 다시 차린다. 현대차 노·사도 오는 4월 2018년도 임금협상에 돌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문희철 기자

문희철 기자

 
또다시 시작하는 임금 협상은 케케묵은 ‘파업 관행’을 버리고, 국가 산업 경쟁력의 파트너라는 책임감을 갖고 협상할 필요가 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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