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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인생을 늪에 비유했다고 판금"

중앙일보 2018.01.21 16:19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유명한 김광규 시인이 77세 희수를 맞아 시선집을 냈다. 지금까지 펴낸 11권의 시집에 실린 800여 편 가운데 200편가량을 가려 뽑은 대표작 모음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유명한 김광규 시인이 77세 희수를 맞아 시선집을 냈다. 지금까지 펴낸 11권의 시집에 실린 800여 편 가운데 200편가량을 가려 뽑은 대표작 모음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김광규씨가 올해로 77세, 희수(喜壽)를 맞았다. 달리 표현하면, 그의 1979년 대표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쓰인 지 4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에 맞춰 시인이 시선집을 냈다. 지금까지 출간한 11권의 시집에 실린 800여 편 가운데 200편가량을 추린 『안개의 나라』(문학과지성사)다. 
 시인은 오래도록 '희미한…'으로 기억되겠지만 시선집에는 당연히 그 시만 있는 게 아니다. 흔히 일상성에 대한 관심으로 요약되는 시인의 세계에 어울리는, 한껏 몸을 낮춘 알기 쉬운 시편이 그득하다. 하지만 쉽다는 게 얄팍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슬그머니 공감이 가는 문장들, 묘한 의미의 흐름이 문면(文面) 아래 비쳐 보이는 작품이 많다. 

77세 맞아 시선집 『안개의 나라』낸 김광규 시인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시로 꾸준히 사랑받아
"시는 약하다. 과한 정치적 표현 피해야 오래 읽혀"

 17일 시인의 집을 찾았다. 같은 독문학자이자 시인의 독일어 번역자인 아내 정혜영 한양대 명예교수가 기자 일행을 반겼다. 시인은 "새벽 한두 시까지 전국의 시인들이 보내오는 시집이나, 문예지에 실린 독문학 관련 글을 챙겨서 읽는다"고 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4ㆍ19 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히 늪으로 발을 옮겼다

 
-한국은 난해시가 강세인데, 독일은 어떤가.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기야 독일시가 어려운 건 독일 현대시의 선구자인 릴케부터다. 릴케 시가 쉬워 보여도 깊이 들어가기는 어렵다. 릴케 해설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다."
-시가 자꾸 어려워지면 결국 독자가 외면하는 거 아닌가.  
"난해한 시를 쓰는 사람들이 억지로 그렇게 쓰는 건 아닐 거다. 시대현실이나 자기체험이 그렇게 만든 거다. 사실 누가 읽어도 이해 못 할 어려운 텍스트를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언어로 쓰인 거기 때문에 누군가 이해하게 되지, 아무도 이해 못 할 텍스트는 없다. 나는 어려운 시를 쓰는 사람들을 존경까지는 아니지만 인정은 한다. 오죽하면 저렇게 쓰게 됐을까. 그러나 결국 돌아올 것 같다. 계속해서 어려워져 아무도 시를 안 읽게 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시선집을 살펴보니 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이후 작품 세계가 정말 한결같은 것 같다. 
"그 시집은 79년에 만들어졌지만 80년에 세상에  나왔다. 신군부가 판금시켰다. '희미한…' 역시 원래 79년 문예지 '창비' 가을호에 투고해 인쇄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신군부가 잡지까지 폐간하는 바람에 결국 시집에 실려 독자를 만나게 됐다."   
 시인은 "부산대 교수 시절 하숙집에서 '희미한…'을 썼다"고 소개했다. 시에 나오는 것처럼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시며 신군부에 대한 소문을 주고받던 시기다. "정작 4·19 시는 신동문·김수영·김춘수 같은 시인들의 시였는데, 한참 후에 4·19에 대한 회한과 부끄러움을 담아 쓴 내 시가 인기를 얻으며 마치 4·19 대표시처럼 되버렸다"고 했다.  
-4·19 때는 실제로 시위에 참가했나. 
"당시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 문리대를 빠져나와 스크럼을 짜고 연건동 사거리까지 진출했다가 나중에는 경무대(지금 청와대) 앞까지 몰려갔다. 경찰들이 설마 때리랴 싶었는데 무척 아프게 때리고 설마 총을 쏘랴 싶었는데 총소리가 들리더라. 허리를 다쳤는데 목숨은 보전해야 하니까 서촌 집으로 도망갔다. 집 근처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너 이놈, 데모했구나' 그러더라."
『안개의 나라』. '언제가 안개가 짙은…'으로 시작하는 시 구절이 표지에 인쇄됐다.

『안개의 나라』. '언제가 안개가 짙은…'으로 시작하는 시 구절이 표지에 인쇄됐다.

 
-'희미한…'이 들어 있는 시집이 판금된 이유는. 
"나 같이 온건한 작품을 쓰는 사람에게 빨간 줄을 칠 게 뭐가 있나. 육군 장교인 검열관들이 '희미한…'의 맨 마지막 문장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에 빨간 줄을 쳐놨더라. 친구들끼리 모여 술 마시고 헤어졌으면 집으로 가야지 왜 늪으로 간다고 썼냐는 거였다. 인생 40되면 자꾸 후줄근해지고 늪에 빠지는 거 같지 않나. 헤어날 수 없는 삶의 늪에. 전비(前非, 이전 잘못)가 있는 사람들이 색안경 쓰고 보니까 별게 다 이상하게 보였던 거다. 얼마나 웃겨."
-어쨌든 이후 조심해서 쓸 수밖에 없었겠다. 
"시인들끼리만 '아, 이건 욕한 거로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검열관에게는 무해하게 보이도록 썼다. 검열 피하려 꽈서 쓰다 보니 한국시가 어려워졌다는 농담도 있지 않나. 한편으로는 당국에 걸리지 않으면 나중에 뭐라고 말할 거냐, 걸리도록 쓰는 게 당연하다, 시대의 알리바이라고 할까 그런 심리도 있었다."
-시가 대체로 쉽게 읽힌다.  
"노력해서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시를 쓴다. 내가 김소월, 한용운 같은 공감 가면서 알기 쉬운 시를 자꾸 읽으며 자수성가해 시인이 된 영향도 있을 거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쓰는 건 아주 무책임한 거다. 어떻게든 소통의 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미국 일리노이 주 교과서에 영어번역돼 실린 김광규 시인의 시. '어느 돌의 태어남'이라는 작품이 'The Birth of A Stone'으로 번역돼 실렸다. 쉬운 김씨 시는 10개국 이상에 번역 소개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국 일리노이 주 교과서에 영어번역돼 실린 김광규 시인의 시. '어느 돌의 태어남'이라는 작품이 'The Birth of A Stone'으로 번역돼 실렸다. 쉬운 김씨 시는 10개국 이상에 번역 소개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쉽게 쓰는 비결이 있다면. 
"쉽게 쓰기 쉽지 않다. 내 시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대개 실패한다. 내면의 깊이가 있으면서 쉬워야지 덮어놓고 쉽게 쓰는 게 아니다. 나는 굉장히 많이 고쳐 쓴다. 썼다가 넣어뒀다가 다시 꺼내 고쳐 쓴다. 몇 년씩 묵힌 것도 있고, 평균 스무 번 정도 고친다."
-기교나 화려한 수사는 일부러 피하나. 
"일부러 피한다. 쉽게 읽히도록 쓰는 게 내 수사학인 셈이다."
-가끔 격한 작품도 있는데. 
"아마 드물 거다. 끓는 나를 가라앉히려고 써뒀다가 고치고 하기 때문이다."
-시선집에 실린 '새 문' 같은 작품은 구호가 등장하던데.  
"그건 아주 드문 경우다. 전두환 시절 쓴 작품인데, 외국 청중에게 소개해도 대번 분위기를 알아보더라."
-서슬 퍼렇던 시절인데 그런 시를 썼다. 
"참다못해 썼다. 지금도 청와대 가면 큰 문은 장관급이나 드나들지 보통 사람들은 옆에 샛문으로 다니지 않나. 그런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거다."
-시선집 표제작인 '안개의 나라'도 비판적인 작품인데. 
"인간이 존재하는 상황 자체가, 가령 요즘 우리의 정치나 경제 현실을 봐도 안개 속을 헤매며 사는 거 아닌가. 그 시가 환기하는 바가 지금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정보의 홍수에 살지만 너무 많다 보니 정보의 안개라는 말도 되지 않나. 우리 삶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타당성 있는 제목을 고른 거다."
 
시인은 "변화를 싫어한다"고 했다. 수십 년은 돼보이는 낡은 책상을 여전히 사용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은 "변화를 싫어한다"고 했다. 수십 년은 돼보이는 낡은 책상을 여전히 사용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년 촛불 시위는 어떻게 봤나. 
"386세대가 거리로 나온 87년 내 또래는 이미 상당히 늪에 빠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넥타이 부대로 현장에서 구경이라도 했었다. 그 이후로는 못 나갔는데, 누군가 시위 총연출을 잘한 것 같다. 촛불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내는 거 아닌가. 조직도 잘한 것 같고. 그래서 결국 대통령을 감옥에 가뒀으니 혁명을 한 거다. 우리가 데모 1세대인데 책가방 끼고 스크럼 짜 거리로 나서던 때와 시위문화가 얼마나 달라졌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시선집 낸 감회는. 
"70을 넘으니 급격히 노쇠하더라. 산책하다 넘어지는, 그 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긴다. 심장 맥박이 1분에 40회 이하로 떨어져 계단 오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난해 말 심장박동기를 다는 수술을 받았는데 바깥에서 맥박 수를 조정할 수 있고, 그 부분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 로봇인간인 거지. 시선집 정리 잘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아내와 결혼한 지 50주년, 금혼식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시는 이래야 한다, 그런 게 있나. 
"나는 변화하는 타입도 투쟁하는 타입도 못 된다. 인생을 그렇게 살았고 시도 그렇게 썼다. 정언적 명제를 이야기할 처지가 못되지만, 용감하고 투쟁적인 사람은 시를 투쟁의 무기로 삼을 게 아니라 진짜 무기를 잡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한다. 과거 정치적 검열이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 문학작품이 정치적 선언문이 돼서는 안 되겠구나, 그런 자기 검열도 있었다. 그런 걸 떠나야 시가 오래 읽힌다. 시는 약한 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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