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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에선 블루스에 취하고, 뉴올리언스선 재즈에 빠지고 …

중앙선데이 2018.01.21 01:26 567호 23면 지면보기
[내가 짜는 힐링 여행] 미국 남부 음악 투어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B. B. 킹이 만든 멤피스의 블루스 클럽에서 열정적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마이클 엘리엇]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B. B. 킹이 만든 멤피스의 블루스 클럽에서 열정적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마이클 엘리엇]

지난여름 아버지와 함께 미국 남부 음악 탐방을 하게 됐다. 음악의 천국을 돌아본 느낌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았던 그레이스랜드와 최초로 로큰롤 음악을 녹음한 선 스튜디오를 하루에 둘러보고, 다음날 블루스의 탄생지인 테네시 주 멤피스로 가서 라이브 블루스 음악을 감상한 뒤 같은 주에 있는 내슈빌에서 컨트리 음악을 만났다.

엘비스 프레슬리 고향마을 들르고
컨트리 음악 수도 내슈빌도 거쳐

어디 가든 즉석공연·라이브 음악
남부 색다른 풍광에 싼 물가는 덤

 
미국의 고유한 음악 장르는 거의 다 남부에서 탄생했다. 미시시피 델타(삼각주)에서 생겨난 블루스의 중심가는 멤피스다. 로큰롤의 첫 음반이라고 알려진 ‘댓츠 올 라잇, 마마(That’s All Right, Mama)’도 1954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멤피스에 있는 선 레코드 녹음실에서 녹음했고, 초기 록의 선구자들도 선 레코드에서 작업했다.
 
멤피스에서 동쪽으로 가면 컨트리 음악의 수도인 내슈빌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블루글라스 음악의 탄생지인 푸른 애팔래치아 산맥을 만난다. 멤피스 남쪽엔 재즈 음악의 탄생지 뉴올리언스가 있다. 비교적 좁은 이 지역에서 20세기 미국 대중문화를 이끈 음악적 흐름이 다 생겨났다는 게 신기하다.
 
남부에는 진정성이 있다. 남부에서 개발된 음악과 식문화(재즈·블루스·프라이드치킨·바비큐 등)를 상품화해 돈을 버는 데는 LA나 뉴욕이 뛰어나지만, 그것은 모방에 불과하다. 모방과 재현이 아닌 정통 미국 음악을 만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우리가 밟았던 음악 여정을 정리해 보았다.
 
 
인구 1만 소도시에 공연장만 50개
우리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해 미시시피와 테네시 주를 거쳐 내려가는 여정을 택했다. 기복이 많은 언덕 속에 있는 오작호수(Lake of the Ozarks)에 들르면 호숫가에서 그날 잡은 신선한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다. 거기서 아칸소 주로 넘어가기 직전에 브랜슨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브랜슨의 인구는 만 명밖에 안 되는데 연극·뮤지컬·디너쇼 등을 매일 올리는 공연장이 50개 넘게 있다. 이들 관객석을 다 합치면 5만7000개 정도로 뉴욕의 브로드웨이보다 많다. 일반인 대 엔터테이너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어느 때 가더라도 무슨 취향이든 맞출 수 있는 수십 개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밀리언 달러 쿼텟(Million Dollar Quartet)’을 추천하고 싶다. 엘비스 프레슬리, 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와 조니 캐시 등 당대 최고 뮤지션들이 선 레코드 녹음실에서 만나 즉흥적으로 노래하며 유쾌하게 녹음한 일을 재현한 뮤지컬이다.
 
브랜슨에서 출발해 아칸소 주로 내려가다 보면 모든 게 잘 정돈된 미드웨스트에서 남부로 기후와 문화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척박한 붉은 흙, 덩굴로 뒤덮인 외양간이 보이면 자연환경이 더 맹렬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더 열정적인 남부로 들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음악 체험이 시작된다.
 
 
엘비스 탔던 전용기에 침실도 보존
아칸소 주 유레카 스프링스에 있는 공연장에서 스티프 캐년 레인저스가 블루글라스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마이클 엘리엇]

아칸소 주 유레카 스프링스에 있는 공연장에서 스티프 캐년 레인저스가 블루글라스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마이클 엘리엇]

먼저 아칸소 북부의 매력 넘치는 마을인 유레카 스프링스(유레카 온천)에 들러본다. 아칸소 산속은 블루글라스(반조·기타·피들·배스와 만돌린으로 구성된 미국 전통 민요) 음악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 어머니는 유레카 온천에서 멀지 않은 아칸소주립대 대학원을 다녔는데 가장 색다른 경험은 주변 산속 마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음악회를 보는 거였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의 ’달동네’에 사는 가난한 백인층은 ‘힐리빌리(hillybilly)’라고 불렸고, 이 사람들이 만든 음악은 컨트리나 블루글라스라는 명칭이 생기기 이전에는 그냥 ‘힐리빌리 음악’이라고 했다. 이들 중에는 악보를 읽을 줄 모르고 음악 이론도 전혀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피와 살로 느껴지는 음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연주 실력도 세계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유레카 온천에서 블루글라스 음악제가 1년에 몇 차례 열리고 평소에도 연주가 있는 날이 많다.
 
다음으로 페이옛빌에 내려가서 미국 대학교 미식축구 인기 1위인 아칸소 팀 경기를 봐도 좋을 것이다. 아칸소는 인구와 경제 규모가 작아서 프로팀은 없지만, 주민 모두가 아칸소대학교 미식축구팀의 열렬한 팬이다.
 
다음 여행지는 멤피스! 동쪽으로 40번 고속도로들 타면 세인트루이스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미시시피 강을 다시 만나게 된다. 미시시피 강을 건너자마자 블루스의 도시인 멤피스에 도착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 그레이스랜드를 투어하는 건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전 세계 엘비스 프레슬리 팬이라면 꼭 한번 성지순례 하듯이 와 보는 곳이다.
 
미시시피 주 투펄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담은 엘비스의 흑백 사진도 보고, 엘비스가 탔던 전용기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도 구경할 수 있다. 이 집의 거실과 침실들은 엘비스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하에 있는 ‘TV 룸’은 특히 흥미롭다. 그레이스랜드 게스트하우스라고 불리는 호텔에서 하루 숙박하는 것도 추천한다.
 
초기 로큰롤 음악을 처음 녹음한 멤피스 시내의 선 스튜디오에 가면 ‘마술의 현장’을 볼 수 있다. 엘비스는 어머니한테 드릴 늦은 생일 선물로 1953년 음반을 만들었다. 그런데 예전부터 ‘흑인 음악을 잘하는 백인 가수’를 찾고 있던 녹음실 PD가 가난한 미시시피 시골 마을에서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엘비스 특유의 음색과 박자감에 반했다. 그래서 따로 음반을 녹음할 기회를 줬고 그것이 엘비스의 화려한 가수 경력의 시작점이 됐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장면이 눈앞에
내슈빌에서는 남부 바비큐와 컨트리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사진 마이클 엘리엇]

내슈빌에서는 남부 바비큐와 컨트리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사진 마이클 엘리엇]

저녁이 찾아오면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Beale Street)는 ‘음악의 중심가’가 된다. 길 양쪽에 라이브 블루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술집이 즐비하다. 다양한 버스킹(거리공연)도 펼쳐진다. 유명한 블루스 가수였던 B.B. 킹이 만든 클럽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고 음식도 맛있다.
 
멤피스에서 미시시피 강을 왔다 갔다 하는 리버 보트를 타고 미국 내전 전부터 있었던 남부 갑부들의 아름다운 집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경치가 눈앞에 펼쳐지는 나체즈(Natchez)도 놓치면 안 된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유럽식 음악, 흑인 블루스 음악, 래그타임 음악과 아프리카식 박자가 합쳐져 100년쯤 전에 재즈 음악이 탄생한 뉴올리언스에 도착한다. 프랑스 식민지 건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프렌치 쿼터도 돌아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정통 재즈 음악을 들으며 뉴올리언스의 대표 음식 크리올과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케이준을 맛볼 수 있다.
 
멤피스에서 동쪽으로 가면 ‘음악의 도시’ 내슈빌이 나온다. 컨트리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들이 거의 매일 나오는 그랜드 올레 오프리(Grand Ole Opry)라는 큰 공연장도 있고 시내에 가면 라이브 컨트리 음악을 매일같이 들을 수 있는 바와 식당들이 수십 개 있다. 컨트리 음악이라면 무슨 곡이든 연주할 수 있는 가수들도 많다.
 
이곳에서 특히 ‘조니 캐시 박물관(Johnny Cash Museum)’이 기억에 남는다. 록과 컨트리 장르를 구별하지 않았던 먼 옛날부터 50년 동안 미국의 노동자층, 농부부터 심지어 감방에 갇힌 죄수들을 위해서도 공연한 조니 캐시, 가사를 통해 소외된 계층을 응원했던 조니 캐시에 대한 정보와 옛날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전시물은 옛날 음반들이다. 이곳에는 수백 개의 아이패드가 배치돼 있는데 이를 통해 초기 컨트리 음악을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다.
 
멤피스에서 본 블루스 가수들은 전부 흑인이었고, 내슈빌에서 본 컨트리 가수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하지만 무대가 아니라 관객석을 향해서 바라보면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같이 춤추고 술 마시며 즐겁게 지내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남부 특유의 매력은 누구나 평생 한 번은 체험해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추상적으로만 알았던 음악 장르에 대해 남부 현장에 가서 ‘아, 이 음악은 이렇게, 여기서 생겼구나’라는 배움도 얻게 된다.
 
저렴한 물가에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남부 특유의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살아 숨 쉬는 미국 음악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남부다. 틀에 박힌 미국 여행을 탈피해 조금 더 깊이 미국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남부 음악 여행을 떠나보기를 권한다.
 
 
마이클 엘리엇
유튜브 ‘English in Korean’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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