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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선배 유니폼 빨던 '야구의 전설'

중앙일보 2018.01.21 01:03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⑨ 김성한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친구 무등을 탄 김성한(왼쪽 위).

중학교 졸업식에서 친구 무등을 탄 김성한(왼쪽 위).

1958년 5월 18일 전북 군산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군산 중앙초 4학년 때 야구부 감독님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일찍부터 야구를 시작해서 야구부 동료들과 자주 어울렸다. 중학교 때 부모님을 모두 여의어서 야구로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교때 기숙사 생활하던 김성한.

고교때 기숙사 생활하던 김성한.

군산상고 시절 야구부는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의 유니폼을 전부 빨아야 했다. 
 
세탁기도 없어서 손빨래했는데, 그 옆에선 3학년 선배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 연습을 했다. 그래도 군말 없이 열심히 빨래했다. 수돗가 요강이 눈에 띈다.

 
해태시절 김성한

해태시절 김성한

동국대를 거쳐 82년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멤버가 됐다. 그리고 95년 은퇴할 때까지 해태 유니폼만 입었다. 집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 돈을 벌려고 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받은 입단계약금 1200만원(작은 아파트 한 채 값)은 큰 형님의 사업자금으로 쓰라고 전부 드렸다.
 
내가 유독 프로야구에서 화제였던 건, 오리 궁둥이 타격폼 때문이었다. 엉덩이를 뒤로 내민 상태로 타격했는데, 이로 인해 오리 궁둥이란 별명을 얻었다.
 
2001년 KIA 타이거즈 김성한 감독.

2001년 KIA 타이거즈 김성한 감독.

만 37세에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부터 해태의 감독을 맡았다. 2001년 8월 팀이 KIA자동차 그룹에 인수돼 KIA의 첫 번째 감독으로 임명됐다. 2004년까지 KIA 감독을 지낸 후, 군산상업고 감독,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 등을 맡았다.
 
2009년 WBC 대표팀 김성한 코치

2009년 WBC 대표팀 김성한 코치

2009년에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며 준우승을 이룬 게 기억에 남는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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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기간: 2018년 1월 31일까지      
보낼 곳: theo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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