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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일이 서럽기는요

중앙선데이 2018.01.21 01:00 567호 31면 지면보기
홍은택 칼럼
한국의 인사말이 가장 친절한 것 같다. “안녕하세요?” 한자로는 편안할 안(安)에 마음 평안할 녕(寧)이 합친 단어인데 한자를 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인사말로 쓰지 않는다. 명사로만 쓰인다. 중국에서는 안닝(安寧)이라는 이름의 도시도 있고 여배우도 있다. 그 배우는 옆 나라 한국에서 줄잡아 한 사람당 두번씩 매일 1억번 이상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중국의 인사말은 단출하게 ‘니하오’(너 좋냐?)이고 중국만 이런 것도 아니다. 영어만 해도 ‘너 어때?’(How are you?)나 ‘뭔 일 있어?(what’s up?)라고 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찾아보니까 신문기사로는 동아일보 1922년 1월16일 자 민우보의 연재소설 ‘무쇠탈’에서 “부인께서도 안녕하십니까?” 하는 구절이 나온다. 일제시대에도 썼으면 조선시대에는 어떨까 싶어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니 세종실록에 “안녕을 도모하였다”는 표현이 나오고 성종실록에서는 대비가 “안녕하셨다”고 해 안녕이 동사로 쓰인 사례가 나온다. 안녕이 특정한 상태를 가리키는 명사로 쓰이다가 동사로 진화한 뒤 언젠가부터 안부를 묻는 인사말로도 쓰인 것 같다.
 
간밤에 안녕을 확인해야 할 일들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그런 인사말이 생겼다는 설이 있지만 지금은 그 뜻을 담아서 인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인사 받는 사람도 ‘허리가 쑤시고 뒷골이 뻐근하고 마음이 어지럽다’ 이렇게 답하기보다는 그냥 안녕하시냐고 되묻는다. 만나자마자 안녕하거나 안녕하지 않은 이유를 늘어놓는다면 바쁜 생활의 리듬이 꼬일 수도 있을 테다.
 
그러다 보니 건성으로만 인사를 나누고 있는 건 아닌지…. 때로는 그 의미를 담아서 물어보고 들어주는 게 안녕을 물어온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상호작용이 가능한 온라인 서비스의 특성을 활용해 최인철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행복연구센터와 함께 안녕을 묻는 일을 시작했다. 물론 단순히 ‘안녕하세요’ 라고 묻지는 않는다. 삶에 대한 만족감과 의미감을 10개 질문으로 나눠 물어보고 안녕지수를 산출한다. 4개월 동안 하고 보니 인구통계학적으로 흠미로운 결과들이 나온다.
 
1920년생으로 올해 99세인 김형석 명예교수가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저서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60세와 75세의 사이로 꼽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주변에 살만치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 살로 돌아가고 싶어?’ 이런 말을 주고받는데 나를 포함, 모두 저 구간에 진입조차 못했다. 과연 그럴까. 안 살아봐서 그런지 살짝 미심쩍었다. 그런데 실제 100점을 기준으로 한 안녕지수에서도 60대 이상은 10대 미만을 제외하면 평균 61점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 분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이 지수만 보면 ‘나이가 드는 것도 서러운데’라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온라인에 접속해서 응답하는 60대 이상이 그 연령그룹을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정확히는 60대 이상으로 온라인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안녕감이 높은 편이라고는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전문적 분석은 서울대행복연구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다. 60대 다음으로 지수가 높은 세대가 10대로 60점인데, 20대부터 52점으로 급락하고 30대에 51점으로 바닥을 찍은 뒤 40대 53점을 거쳐 50대 57점으로 상승한다. 60대 이상과 10대의 두 봉우리 사이에 가파른 골짜기가 형성돼 항아리 모양의 곡선이 나온다. 이것은 인생이 종 모양과 같은 포물선을 그릴 거라는 선입견과 정반대다. 신체적 능력과 주관적 안녕감이 비례하지 않는다.
 
60대 이상의 지수가 높은 것보다는 20,30대의 지수가 낮은 게 뉴스라면 뉴스다. 왕성한 젊음이 전혀 부럽지 않은 항아리 곡선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내가 20대일 때는 안 그랬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은 청년실업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라고 덧붙인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에 차이가 있다. 시간은 기억을 편집한다. 나만 해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유학 시기가 지금은 달콤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40, 50대들도 자신들이 20, 30대였을 때 물어봤으면 안녕지수가 높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2~3점 높게 나오는 추세나 지역별로는 제주의 안녕지수가 58점으로 전국에서 제일 높은 것도 흥미로웠다.
 
안녕지수를 조사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안녕 상태를 환기하기 위함이다. 부탄이 1970년대 물질적인 부를 측정하는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총행복을 추구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2000년대 들어와 프랑스와 영국에서 국민안녕지수(National Well-being index)를 채택했고 유엔에서도 2012년부터 각국의 행복지수를 측정해서 발표하고 있다. 유엔조사에서 한국의 행복지수 순위는 56위. 하루 37명이 자살하는 나라,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13년째 부동의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로서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엔의 조사는 1년에 한번씩 2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과연 어떤 요인이 지수에 영향을 주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안녕을 물어보고 변화를 추적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까지 모두 40만 명이 참여해 누적 평균 54점을 기록하고 있다. 보통보다 조금 나은 상태다. 누적 평균이 54점이지, 숫자는 주가지수처럼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주말에는 점수가 올라가고 주중에는 내려간다. 추석에는 남자의 지수가 올라가고 여자의 지수가 하락한다. 올해에는 어떤 그래프를 그려나갈지 궁금하다. 국민의 안녕을 고민하는 정책 입안가들이나 정치인들에게 조그만 힌트라도 되길 기원해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삶의 만족감과 의미감에 응답하는 짧은 순간, 성찰하게 된다. 나는 안녕한가? 또는 왜 안녕하지 못한가?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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