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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 안 하는 블록체인 생태계도 가능

중앙선데이 2018.01.21 01:00 567호 10면 지면보기
[이슈추적] 블록체인 기술 그것이 알고 싶다 
케냐 몸바사 항에 정박한 국제 해운사 머스크의 컨테이너 선에 화훼 농가에서 재배한 꽃이 실리자 즉시 세관 당국과 사업자, 목적지인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의 세관이 블록으로 연결된다. 화물과 선박 정보는 수출·수입업자는 물론, 5개 기관이 동시에 공유한다. 5개 기관은 각각 통관 절차에 관련된 6개 종류의 문서 작업을 시작한다. 꽃을 재배한 농가 주인 이름에서부터 최종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한 눈에 열람 가능하다. 모두가 ‘원본’을 보유하고 있어 승인이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에 따리 200개의 문서 작업은 동시에 이뤄진다. 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 통관에 브로커가 붙어 해결하던 귀찮은 일이 모두 사라졌다.
 
상업 분야서 다양하게 활용
의료정보 확인해 보험금 자동 지급
화물 수출입, 사진 저작권도 관리
머스크와 IBM이 테스트하고 있는 물류 블록체인 기술의 일부다. 이처럼 상업분야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셀 수 없이 많다. 가령 런던증권거래소는 중소기업의 주주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블록체인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블록체인 기술로 지분의 변동을 추적하면 누가 언제 어떻게 거래했는지가 투명하게 볼 수 있다. 코닥은 사진 저작권 기록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누가 사진을 사용했는지 자동으로 알 수 있고 저작권 사용료 부과가 한결 쉬워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개인이 자신의 건강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병원에서 치료받은 정보에 따라 보험금을 자동으로 지급하는 일도 가능하다.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가치가 급등하면서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뜨겁다. 암호화폐 열병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시각이 엇갈린다. 암호화폐를 높이 평가하는 측에서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떼 놓고는 생태계 조성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가 포스트 인터넷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가로 막아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블록체인에서 반드시 암호화폐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서비스 따라 코인 발행 결정
“암호화폐, 효율적 거래 방식일뿐
블록체인에 필수 요소는 아니다”
블록체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은 자체 코인(암호화폐)을 발행한다. 거래 내용을 기록하고 검증하는데 컴퓨팅 파워를 제공(채굴)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로 코인을 주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주식 대신 코인을 발행(ICO)하는 것도 가능하다. 암호화폐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 과정을 통해 “권력과 기득권을 분산하고 대중의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블록체인이 철도나 인터넷 같이 세상을 바꾸는 범용기술(GPT)로 자리잡는다면 관련 코인을 지닌 사람은 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글이나 아마존, 네이버처럼 기술 패권을 잡고 있는 소수 기업이 몰락할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유통이나 의료 등 산업 부문에 응용되는 블록체인 기술중 상당 수가 퍼블릭이 아니라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한 사업자가 화물을 운반하는 데 이를 굳이 일반인 모두가 참여해 장부를 열람해야 할 필요는 없다. 관련자만 참여해 해당 체인 생태계에서 업무를 진행하면 된다. 한국 IBM 블록체인 기술 총괄인 박세열 실장은 “비즈니스 네트워크 참여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거래에 효율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일 뿐, 반드시 암호화폐와 함께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제한된 블록체인 내에서도 주고 받는 자산의 성격과 특징에 따라 암호화폐 기능을 얹을 수도 있다. 암호화폐 거래를 활발하게 해야 블록체인 생태계가 활성화하고,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술이 개발된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인 셈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 없어
인터넷 기술 뛰어넘을지 회의적
대중화되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
블록체인 생태계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존 서버-클라우드 서비스를 뛰어넘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중이 열광할만한 기술 진보는 아직 없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퍼블릭 블록체인 시스템은 갈수록 거래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는 약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는 “아직 블록체인은 일부 투자자와 얼리 어답터만의 관심을 받으면 인터넷 초기에 그랬듯‘돌아는 간다’ 수준”이라면서 “블록체인 기술의 대중화는 10년 이상의 장기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독자적인 코인을 쓰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리눅스 재단이 이끌고 인텔·IBM·바이두 등이 참여하는 ‘하이퍼레저 컨소시엄’이나 시티뱅크·골드만삭스가 주축이 되는 R3 컨소시엄이 이미 출범했다. 필요하다면 이런 컨소시엄에서 만든 플랫폼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협업하는 동시에 독자적 응용 프레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삼성SDS의 경우 양대 컨소시엄에 모두 들어가 있는 동시에 자체 프레임(넥스레저)도 구축하고 있다. 결국 블록체인은 어디에 적용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셈이다. 이런 새 솔루션의 구축과 이용에 필요한 비용을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보다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는 점도 블록체인 기술의 대중화 여부를 가늠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이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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