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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콧물에 토해도…전세계 뒤흔드는 韓 매운 라면, 왜

중앙일보 2018.01.21 00:01
지구촌 사이버 세상 뒤흔들고 있는 한국 매운맛 라면
 

2012년 출시된 삼양라면 불닭볶음면이 시초
'영국남자' 조쉬, 유튜브에 시식기 올리면서 글로벌 유행
삼양식품 수출 급상승의 90%가 불닭볶음면
농심, 팔도 등 국내 라면경쟁업체들도 유사 신제품 내놔
청양고추에 베트남, 멕시코 고추도 섞어 글로벌 맛 끌어내

20대로 보이는 외국인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이 카메라 앞에서 비빔면을 먹기 시작한다. “나는 매운 것이 싫어”라는 말과 함께 시식을 시작한 한 남성은 억지로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 “머리가 아프다. 목구멍에 불이 타오른다”고 호소하며 냉장고로 뛰어가 우유를 들이켠다. 매운 것에 자신이 있다고 다른 한 남성은 자신 있게 한 그릇을 비운 것까진 좋았으나, 매운 기운을 참지 못해 기침하다 콧구멍으로 라면 가락이 들어가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매운맛에 익숙한 듯한 여성은 두 남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지난해 12월 유튜브에 올라온 ‘2X NUCLEAR SPICY KOREAN FIRE NOODLE CHALLENGE’(엄청나게 매운 한국 불 라면 도전)라는 제목의 동영상이다. 한 달이 갓 지난 이 영상은 현재 조회 수 70만을 넘기고 있다.
 
한국의 매운맛 라면이 지구촌 사이버 세상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한국산 매운 봉지라면을 직접 사 조리법대로 시식해보는 형식의 동영상은 매운맛에 비교적 익숙한 동남아시아권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서양 국가들에서도 경쟁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유튜브에서 ‘fire noodle’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121만 개가 넘는 동영상이 검색된다. 이 중 대부분이 한국의 매운맛 라면 도전기들이다.  
 
한국 매운맛라면 도전기 열풍의 진앙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다. 2012년 4월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기존에 없는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틈새상품 기획이었다. 출시 초기 월 5억원 정도의 미미한 매출이었으나, 중독성 강한 매운맛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듬해부터 매출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2월 ‘영국남자’로 잘 알려진 유튜브 인기인 조쉬가 지인들과 함께 불닭볶음면을 먹고 매워하는 장면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이 700만에 가까운 조회 수를 올리면서 불닭볶음면의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영국남자 동영상처럼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미투(me too) 영상’도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삼양식품은 신제품 출시로 불닭볶음면 붐에 화답했다. 2016년 3월 서구인의 입맛에 맞춘 ‘치즈불닭볶음면’을, 8월에는 매운맛을 두 배로 강화한 ‘핵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이외에도 ‘불닭볶음탕면’ㆍ‘쿨불닭비빔면’ㆍ‘커리불닭볶음면’ㆍ‘마라불닭볶음면’ㆍ‘까르보불닭볶음면’등 특정 국가와 더 어울리는 제품들을 내놨다.
삼양 핵불닭볶음면

삼양 핵불닭볶음면

 
불닭볶음면 도전기의 세계적 유행은 수출 급상승으로 이어졌다. 삼양식품의 수출은 2015년 294억원에 불과했으나, 2016년 930억원으로 뛰어오르더니 지난해에는 2000억원으로 치솟았다. 특히 지난해 수출액 2000억원 중 90%(1800억원)가 불닭볶음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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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라면업계 3위인 삼양식품의 ‘대박’행진에 경쟁 라면업체들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비빔면의 원조인 팔도에서는 지난해 11월 삼양에서 가장 맵다는 핵불닭볶음면보다 더 매운 ‘틈새라면’을 내놨다. 오뚜기에서는 ‘열라면’을, 농심에서는 ‘진짜진짜맵다’로 응수했다.  
 
팔도 틈새라면

팔도 틈새라면

매운맛의 세기는 고추류에 포함된 캡사이신의 농도를 나타내주는 ‘스코빌지수’로 표시할 수 있다. 매운라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농심 신라면의 스코빌지수가 2700인데, 불닭볶음면은 배에 가까운 4404, 핵불닭볶음면은 8706, 틈새라면은 9413까지 치솟았다. 한국 비빔라면이 갈수록 매워지고 있지만, 세계 유투버들의 도전은 식지 않고 있다. 눈물ㆍ콧물을 흘리고 토하기까지 하면서도 도전하는 동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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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매워서 잘 찾지 않는 매운라면에 외국인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열광하는 비결이 뭘까. 
삼양라면 측은 소스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전영일 삼양식품 식품연구센터장은 “중독성 강한 불닭매운맛의 비결은 매운 고추와 그릴 치킨맛의 조화”라며“고추도 한국의 청양고추만 쓴 게 아니라 베트남과 멕시코의 전통고추인 땡초와 하바네로 고추가 적정비율로 배합됐다”고 말했다.
 
매운맛라면은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김 사장은“우연히 명동의 매운 불닭 음식점 앞을 걷다가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보고 강렬한 매운 맛도 라면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매운맛·닭·볶음면을 모티브로 마케팅 부서, 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전국의 유명한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들을 탐방·시식했다. 또 세계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매운 고추도 연구했다. 이렇게 1년 이상 걸린 연구개발(R&D)에는 매운 소스 2t, 닭 1200마리가 투입됐다.
 
이옥한 강원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고추의 매운맛 속에는 단맛 등 다양한 맛이 숨어있다”며 “여러 나라의 고추를 배합해 중독성 있는 글로벌한 맛을 찾아낸 데다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붐 덕에 외국인들이 K푸드의 하나로 매운맛 라면에 열광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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