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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작심삼일(作心三日) 안 할 방법 찾습니다"

중앙일보 2018.01.20 02:00 종합 19면 지면보기
 #디자이너로 일하는 한성재(36)씨는 며칠 전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새해를 맞아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함께 배워보고 싶다”는 여자 친구의 권유가 가장 컸다.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세 번째 레슨을 받으러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한 곡을 열심히 연습해서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피아노 연주로 해볼까도 고민 중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 두려운 직장인들
이용시간 자유 선택 가능한 학원 등 찾아
야근, 회식 잦은 직장인들에 인기
제휴된 여러 업체 매번 바꿀 수 있는 앱도

#직장인 김혜경(28ㆍ여)씨도 새해 들어 성인 전문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어릴 때 잠깐 배웠던 피아노를 다시 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다가 ‘새해가 됐으니 생각만 하지 말고 이제 실천으로 옮겨보자’는 용기가 났기 때문이다. 아직 흰색 건반들을 누르는 게 어색하기만 하지만 퇴근 후 피아노 학원에 갈 때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  
 

서울 상수동의 한 성인 전문 피아노 학원에서 한 수강생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송우영 기자

서울 상수동의 한 성인 전문 피아노 학원에서 한 수강생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송우영 기자

 
새해가 밝으면 새로운 악기를 배우거나 헬스장에 신규 등록을 하는 등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려는 직장인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대부분 잦은 야근이나 회식, 약속 등 불규칙한 일상 때문에 야심 찼던 새해 다짐이 점차 무뎌진다. “결국 돈만 날렸다”며 후회하기도 한다.  
 
최근엔 이렇게 ‘뭔가를 배워보고 싶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은 두려운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곳들이 생겨나 인기를 끌고 있다. 매번 레슨이나 운동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곳들이다.

 

한씨가 등록한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성인 전문 피아노학원은 수강생이 매번 다음 레슨 날짜와 시간을 결정한다. 이번 주는 목요일 퇴근 후 오후 9시에 레슨을 받았지만 다음 주에는 회식을 피해 토요일 오후 2시에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 그 다음 주에 언제 수업을 할지도 자유다. 권민정(28ㆍ여) 비바피아노 원장은 “보통 한 달에 12명 정도가 새로 등록하는데 올 1월에는 며칠 만에 그 인원을 벌써 넘겼다. 문의 전화도 많이 오고 있는데, 등록 후 물어보면 ‘새해가 되니 무언가 배우고 싶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학원에는 경찰ㆍ간호사ㆍ소방관 등 교대 근무로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야근이 잦은 직장인과 화가ㆍ작가 등 생활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들도 있다.
 
서울 상수동의 한 1:1 필라테스 샵에서 한 회원이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있다. 송우영 기자

서울 상수동의 한 1:1 필라테스 샵에서 한 회원이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있다. 송우영 기자

 
‘새해맞이 다짐’의 단골 메뉴, 운동 역시 최근엔 원하는 시간에 개인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겨났다. 강사에게 1대1 지도를 받으면서 다음 수업 시간을 매번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1대1 필라테스 샵은 단체 수업보다 다소 비싼 가격에도 ‘새해맞이 수강생’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걱정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소개 페이지를 만든 것 외에는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새해 들어서만 서른 건이 넘는 등록 요청이 들어왔다. 이 필라테스 샵에서 다 등록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서정은(33) 온니필라테스 대표는 “등록할 수 있는 인원이 꽉 차 문의하시는 분들을 대기 명단에 올려드리고 있다. 다이어트와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싶다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36살의 직장인 A씨는 이달 초 “항상 앉아서 일하니까 허리가 아프다. 매년 생각만 하다가 올해는 더 늦기 전에 자세 교정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필라테스 샵을 찾았다. 6월에 결혼을 한다는 B씨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니 6개월 동안 등과 팔의 살을 빼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남자친구가 다리가 두꺼운 것 같다고 해서 열이 받았다”며 “선생님 같은 군살 없는 다리를 만드는 게 새해 희망이다”는 남다른 사연의 수강생도 있었다.  
 
이곳 역시 일상이 불규칙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이 많이 찾는다. 수업을 주 1회 할지, 주 3회 할지부터 무슨 요일 몇 시가 좋은지까지 수강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야근ㆍ회식 등의 사정이 생기면 당일에도 강사에게 연락해 수업을 취소하고 다른 날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서 대표는 “강남이나 광화문처럼 직장인들이 밀집한 지역에는 이런 1대1 필라테스 샵이 골목마다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이미 많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등 제휴된 여러 업체들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사진 TLX]

헬스장, 골프연습장 등 제휴된 여러 업체들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사진 TLX]

 

‘작심삼일’을 줄여주는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3개월 등록한 헬스장에 서너번 가보는 데 그쳐본 아픈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이런 서비스들은 헬스장ㆍ수영장ㆍ골프연습장은 물론 필라테스나 요가, 실내 암벽 등반 등 여러 운동을 배울 수 있는 업체들과 한꺼번에 제휴한 뒤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사우나ㆍ마사지방ㆍ네일샵 등과 엮기도 한다.
이용자들은 휴대폰 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업체들을 검색한 뒤 매번 어디에 갈지 선택하면 된다. 물론 집 근처의 헬스장 등 한 곳을 계속 다닐 수도 있다. 미리 지불한 금액에서 매번 업체별로 정해진 만큼을 차감하는 방식이다.
 
원하는 지역의 업체들을 검색해 본인이 지불한 금액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사진 TLX]

원하는 지역의 업체들을 검색해 본인이 지불한 금액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사진 TLX]

 
직장인 김민수(31)씨는 “헬스장만 등록해놓고 잘 가지 않은 경험이 있어서 등록했는데 제휴 업체가 꽤 많아 좋다. 헬스장에 다니다가 가기 싫어지면 회사 근처 수영장이나 필라테스 샵에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한 가지에 질려도 다른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여러 운동 중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서비스다”고 설명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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