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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Picture]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놀라운 1년

중앙일보 2018.01.20 01:46 종합 25면 지면보기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오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이다. 그의 2015년 6월 16일 대선 출마 선언부터 지금까지 ‘트럼프 패러독스’ ‘트럼프 리스크’ ‘트럼프 효과’와 같은 표현들이 매체에서 쏟아졌다. 리스크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효과는 패자와 승자를 낳으며 패러독스는 상반된 현상들의 핵심을 생각하게 만든다. 앞으로 최소 3년은 더 트럼프는 논란을 유발할 것이다.
 

의외로 잘했지만 지지도는 바닥
‘즐겨 싫어하는’ 패러독스 대통령
의외로 문 대통령과도 궁합 좋아
북핵 문제에도 의외의 성과 기대

17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패러독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부제는 “이번 시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생산적인 한 해를 보냈다”였다. 기사는 미국 경제가 튼튼해지고 있으며 이슬람국가(IS)가 패퇴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트럼프의 1년차 공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CBS와 NPR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37%다. 그야말로 ‘트럼프 패러독스’다. 트럼프를 ‘잘 못하는 대통령(poor President)’로 보는 미국 국민·유권자의 볼멘 평가의 근거는 트럼프가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점이다.
 
‘트럼프 패러독스’는 미 언론과 진보진영에 얄궂은 효과를 낳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기자들을 기삿거리 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의 트위터만 모니터링해도 클릭수가 보장되는 기사를 쓸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기자들이 ‘싫어하기 좋아하는(love to hate)’ ‘즐겨 싫어하는’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트렸다. 일부는 트럼프 탄핵이나 사임을 꿈꾸게 됐다.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운동도 나름 활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트럼프 덕분에 오히려 진보 운동이 활성화 됐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또 일부 키보드 전사들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현실의 일상적인 세계와 격리된 ‘정치 폐인’이 됐다.
 
Big Picture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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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끔찍이 싫어한다. 미국 사람들이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궁금해서 미국인들을 만날 때보다 물어봤다. 종합하자면, 트럼프가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미국 대통령과 사뭇 다른 트럼프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한 미국 보수파 칼럼니스트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의외로(surprisingly) 잘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물었더니 “의외로 참사(disaster)는 없었다”고 답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애초에 트럼프를 왜 찍었을까. 백인 노동자층 못지않게 중요한 트럼프의 지지기반은 보수 성향의 기독교다. 미국에서 목회 생활을 하다 귀국한 목사에게 물었더니 “트럼프의 과거 행실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의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보기 때문”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수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야 하는’ 크리스천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 또한 패러독스다.
 
대한민국 국민·유권자의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패러독스요 미스터리다. 한국은 진보, 미국은 보수가 정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문재인-트럼프 궁합(chemistry)에 대해 우려나 ‘잡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걱정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과도 ‘의외로’ 잘 지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 방문을 통해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對北) 정책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이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전략적 우왕좌왕(strategic zigzagging)’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비전문가들이 보기에는 그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하겠다는 것인지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갈지자 행보가 어지럽다.
 
트럼프 취임 2년차가 내일 시작되지만 어쩌면 미국과 한국과 세계는 트럼프의 언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남길 정치적 유산(legacy)의 윤곽은 이미 어느 정도 그려졌다. 미국 헌정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맞는다면, 또 트럼프와 세계가 서로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리라.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언론인에게 “트럼프는 미국 정치사에서 에피소드인가, 아니면 앞으로도 비슷한 인물이 계속 나올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제2, 제3의 트럼프가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되건 한·미 관계가 ‘즐거운 놀라움(pleasant surprise)’을 낳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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