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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활짝 핀 취향의 시대 … 국가보다 개성이다

중앙일보 2018.01.20 00:02 종합 22면 지면보기
  부족의 시대             미셸 마페졸리 지음         박정호·신지은 옮김          문학동네

부족의 시대 미셸 마페졸리 지음 박정호·신지은 옮김 문학동네

 

프랑스 사회학자가 본 현대인
경험 공유하는 신인류 늘어나

정치·종교·문화·스포츠 곳곳서
관심사에 따라 뭉치고 흩어져

『부족의 시대』 서평
 
프랑스 사회학자 마페졸리의 『부족의 시대』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1988년 출간된 이래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광풍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제 뒤늦게나마 한국어로 나왔으니 독자로서 좋은 일이다.
마페졸리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철저히 프랑스스럽다. 우선 대개 프랑스 책답게 현란한 문체와 난해한 형이상학적 논의에 홀려 길을 잃기 십상이다.
몇 가지 핵심 개념을 파악하면 그나마 낫다. 먼저 ‘권력’으로 번역된 'pouvoir'와 ‘역능’으로 번역된 'puissance'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권력은 개인이 미래를 위해 살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중앙집중화되고 관료제화된 외부의 정치적 힘이다. 역능은 다양한 부족들이 정치를 뛰어넘어 자신들을 위해 살아가도록 만드는, 분산되고 지역화된 내부의 문화적 힘이다. 짧게 말하면, 근대에는 권력이 역능을 지배했다면 탈근대에는 역능이 권력에 반격을 가한다.
 
축구경기 응원은 강렬한 집합 감정에 휩싸여 공동체 정신을 맛보는 ‘신부족 현상’의 사례다. [중앙포토]

축구경기 응원은 강렬한 집합 감정에 휩싸여 공동체 정신을 맛보는 ‘신부족 현상’의 사례다. [중앙포토]

다음으로는 ‘근접성’으로 번역된 'proxémie'다. 근접성은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난 원자화된 대중을 다시 '환경'에 둘러싸인 인간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개념이다. 이 환경은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적이고 더 나아가 우주적이다. 이는 고대 도시국가에서 잘 드러난다. “도시국가는 영토와 공통의 신화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동네, 민족집단, 단체, 다양한 부족 등과 같은 종류의 여러 실체를 안에 감추고 있다.” 나름의 ‘신화’를 가진 다양한 집단들은 하나의 단일 ‘역사’로 통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접한 공간에서 일상의 삶과 체험을 공유하면서 만들어진 공동의 감정에 의해 함께 묶인다. 다시 짧게 말하면, 근대의 차가운 공간구획이 제거한 근접성이 탈근대 시대에 되살아나고 있다는 게 마페졸리의 진단이다.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가? 내가 존재하는 근거를 절대신이나 전통이 아니라 나 개인의 합리적 의식에서 찾은 데카르트의 나라가 아닌가? 사회는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원자화된 개인들 사이의 자율적인 계약에서 출발하며, 정치는 이러한 계약이 실제 실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관료제적 실행이다. 대의민주주의는 합리적 개인들이 정치가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개인은 국민국가가 설정한 장기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인간, 즉 국민이 된다.
 
마페졸리는 그런 개인이 이제 끝나가고 신부족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개인은 국민국가가 설정한 장기 목적이 아니라 그저 ‘함께-하기’ 위해 만난다. 근접한 공간 내에서 수많은 신부족들이 함께 하면서 공유된 감정 윤리를 만들어낸다. 아무리 국민국가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지역적 윤리라는 특유의 역능을 통해 걸러낸다. 신부족은 공통의 가치와 인지 틀을 공유한 전통 공동체와 다르다. ‘미학적 함께-하기’가 핵심이다. 잠시 운집했다 덧없이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감각과 감정의 성운(星雲) 같은 것이다.
 
신부족은 일종의 종교적 모임이다. 종교란 연결된다는 의미다. 좁은 자기를 벗어나와 타자와 연결되려는 삶의 의지가 온갖 종류의 감각과 감정의 신부족을 만들어낸다. 이제 사람(persona)은 한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족을 오가면서 다양한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특정한 물리적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새로운 텔레커뮤니케이션이 큰 몫을 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문화사회학자 대구대 박정호 교수와 부산대 신지은 교수가 함께 옮겼다. 한국어가 썩 좋다. 술술 읽힌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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