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NN 기자, 인플레 4000% 베네수엘라서 6센트 인출에 4시간 걸려

중앙일보 2018.01.18 18:29
돈을 인출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은행 앞에 줄을 선 사람들.

돈을 인출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은행 앞에 줄을 선 사람들.

 
‘단돈 1달러를 인출하려고 4시간에 걸쳐 은행 3~4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손에 쥔 돈은? 6센트에 불과했다.’

“현지인 정부당국 신뢰 안해 암시장 환율 참고”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1년만에 무려 4000%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이 벌어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미국 언론 CNN 기자가 겪은 일이다. 
 한때 남미 최대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농지 국유화와 가격 통제로 식량 생산·유통 체계가 붕괴된데 이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외화 유입마저 차단돼 생필품 조달이 어려워졌다. 그 결과로 물가는 급등했다.
 
17일(현지시간) CNN은 프리랜서 기자인 스테파노 포 제본이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예금 인출을 하려고 ‘애쓴’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현지에서의 예금 인출 과정에 대해 “복잡할 뿐더러, 지루하고, 비현실적이면서 불가능에 가까웠다(it is complicated, tedious and surreal, or just impossible)”고 표현했다.
 
스테파노 포 제본 CNN 프리랜서 기자의 사진. [스테파노 포 제본 트위터]

스테파노 포 제본 CNN 프리랜서 기자의 사진. [스테파노 포 제본 트위터]

포 제본이 기사를 쓰던 당시(17일) 미국돈 1달러는 현지 돈으로 19만1000볼리바(베네수엘라 화폐 단위)였다. 일주일 전(달러당 15만1000볼리바)에 비해서도 크게 올랐지만, 1년 전(3100볼리바)과 비교하면 물가가 무려 2000% 오른 것이라고 제본은 전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현지 암시장에서 제시하는 달러/볼리바 환율을 참고한다고 한다. “대중 환율을 과대평가해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정부 당국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어 포 제본은 ‘1달러’, 즉 19만1000볼리바를 인출하기 위해 떠난 ‘반나절의 여정’을 설명했다.
 
 
◇첫 은행, “‘최소 한시간’ 기다려라”
 
포 제본이 ‘첫 은행’에 도착한 건 개장 전인 오전 9시30분. 은행 입구 앞에는 10여 명이 줄을 서고 있다. 현금을 인출하려고 줄을 선 이들을 두고 포 제본은 “미국인들이 ‘로또 대박’을 꿈꾸고 복권 판매점 앞에 줄을 선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은행 안에는 돈이 다 떨어진 ATM기 5대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은행이 개장하자 줄을 선 사람은 20여 명으로 불어났지만, 은행 직원은 단 한 명이었다. 바로 앞에 선 남성이 “최소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귀띔하자 낙담한 포 제본은 그 자리를 떴다.
 
불과 몇 블럭 떨어진 은행으로 움직인 포 제본. 역시나 ATM기는 돈이 다 떨어진 가운데, 은행 텔러 앞에 10명이 줄을 서 있었다. 
 
불과 1년 사이에 2000배 오른 베네수엘라 물가. [CNN 홈페이지]

불과 1년 사이에 2000배 오른 베네수엘라 물가. [CNN 홈페이지]

 
포 제본 옆에 서 있던 남성인 구스타포 바스케스는 3만 볼리바(18센트)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 돈으로 CLAP이라는 가방을 살 거예요.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 덕분에 저렴하게 구입하는 음식과 세면용품을 담기 위해서지요.” 그러나 정부 예산이 줄면서 가방 크기가 덩달아 줄거나, 아예 지급이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수십 분의 기다림 끝에 그는 텔러와 마주했지만 끝내 돈을 찾지는 못 했다. 텔러가 ‘현금 인출을 하려면 수표를 내라”고 한 것. 수중에 체크카드밖에 없던 그는 매우 격노했지만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수표를 챙겨 오기 위해서다.
 
◇‘너무나도 귀한 6센트’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이미 2시간을 허비한 뒤 첫 은행을 다시 찾은 그는 “사람들이 고요하고 조용한 점에 놀랐다”며 “마치 사람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현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텔러와 마주한 건 오후 1시23분. ‘첫 시도’ 약 4시간 만이었다. 하지만 텔러는 단 6센트를 내놓으면서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서 조달해오는 돈에 비례해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시중은행이 하루에 5000볼리바부터 3만 볼리바까지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약 4시간 뒤 포 제본은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셨다. 그가 마신 카푸치노는 3만5000볼리바. 인출한 1만 볼리바(6센트)의 ‘무려’ 3.5배였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