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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ㆍ친노 vs MB’의 22년 악연

중앙일보 2018.01.18 17:51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하는 친노(親盧) 세력과 이명박(MB) 전 대통령과의 악연은 2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두 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맞붙은 것은 1996년 15대 총선이었다. 서울 종로에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이 전 대통령은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결과는 이 전 대통령의 승리였고 당시 국민회의 이종찬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한 노 전 대통령은 3등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듬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결국 항소심에서 400만원 벌금형이 내려지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8년에 실시된 종로 보궐선거에 재출마해 당선됐다.
 
 두 사람은 2002년 각각 대통령(노무현)과 서울시장(MB)에 당선된 뒤에도 줄곧 충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이었던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을 밀어붙였고 서울시장이었던 이 전 대통령은 이에 강력히 저항했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10월 행정수도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행정수도 이전은 제동이 걸렸다. 부동산 문제도 처방이 완전히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징벌적 과세논란을 야기한 종합부동산보유세(종부세)를 도입했지만, 이명박 시장은 서울에 ‘뉴타운’을 비롯핸 재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던 김수현 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이 전 대통령과는 강남 재건축에도 엇박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 이어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양측은 긴밀한 협의 과정을 거쳐 정권 교체기를 무난하게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겪은 뒤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을 향한 MB정부의 수사가 본격화됐다. 시발점은 대통령기록물이었다. 대통령 기록관에 이관한 자료를 노 전 대통령이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MB 정부가 거절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자료를 복사해가자 당시 정부는 이를 불법적인 기록 반출로 봤다.
 
 2008년 7월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서 “정치보복의 시작은 참여정부 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뒷조사였다”며 “노 전 대통령은 ‘나와 친분 있는 많이 기업이, 심지어 내가 자주 가던 식당도 세무조사를 당했다’고 했다”고 적했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와 이는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조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그해 12월 박 회장으로부터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를 구속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듬해 4월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러다 그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 전 대통령은 같은달 말 서울 경복궁 앞 뜰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했다. 분향을 하는 이 전 대통령 내외를 향해 당시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하느냐. 정치적인 살인이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5월 집권한 문 대통령은 백 전 의원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했다. MB정부 시절 추진된 4대강 사업에 대해선 정책감사를 지시했다. 대선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으면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MB정부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또다른 정치보복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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