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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팀에 뿔난 2030 "사람이 먼저라더니 北이 먼저냐"

중앙일보 2018.01.18 17:08
단일팀에 뿔난 2030세대, "사람이 먼저라더니 북한사람이 먼저냐"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하고 남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북은 이날 실무회담을 열고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하고 남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북은 이날 실무회담을 열고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람이 먼저라더니 북한 사람이 먼저냐."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소식이 알려진 뒤 한 네티즌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단 댓글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을 20여 일 앞두고 난데없이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는 데 대해 국민, 특히 2030세대가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의장실·SBS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72.2%가 '단일팀을 무리해서 구성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20, 30대가 가장 크게 반발했다. 19~29세 응답자 중 82.2%, 30~39세 응답자 중 82.6%가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정유라에 대한 각종 특혜에 반발하며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젊은층이 남북 단일팀 추진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II 그룹A 북한과 호주의 경기가 지난해 4월 2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렸다. 남북공동응원단이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강릉=임현동 기자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II 그룹A 북한과 호주의 경기가 지난해 4월 2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렸다. 남북공동응원단이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강릉=임현동 기자

 
정부는 우리 선수 23명은 그대로 유지되고 북한 선수를 추가하는 '23+알파(α)' 안을 추진 중이다. 엔트리가 늘어도 경기 당일 출전 엔트리는 22명 그대로 유지돼 결국 우리 선수 중 뛰지 못하거나 출전시간이 줄어드는 선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부는 선수들과 사전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과는 달리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불공정하다" 등의 비난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II 그룹A 북한과 호주의 경기가 지난해 4월 2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렸다. 북한 선수들이 2대1로 패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릉=임현동 기자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II 그룹A 북한과 호주의 경기가 지난해 4월 2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렸다. 북한 선수들이 2대1로 패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릉=임현동 기자

 
피아니스트 출신 한국 대표팀 공격수 한수진은 2011년 아이스하키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스틱을 잡았다. 방 월세를 내기 위해 1500만원을 대출받아 이를 갚는 데 3년이 걸렸다. 일본에 0-29 대패를 당했을 때 유효슈팅 136개를 맞아내며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던 골리 신소정은 본고장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 대학에 자비로 유학을 갔던 경우다. 캐나다 세인트 프란시스 제이비어 대학을 거쳐 미국 여자아이스하키리그 뉴욕 리베터스에 입단했다. 연봉은 고작 1500만원이었지만 올림픽 출전만을 바라보며 고생을 참아냈다.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능선수촌 빙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신인섭 기자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능선수촌 빙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신인섭 기자

 
20, 30세대는 이념과 지지 정당을 떠나 온갖 고생을 견뎌내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워 온 선수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꿈이 좌절될 위기에 몰린 데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들은 또 여자대표팀 선수들을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받아들이면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층은 단일팀 추진 과정에서 선수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2030세대는 수평적 문화와 소통을 중시하는데 이번 사안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이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툭하면 전쟁하겠다고 위협하는 북한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거엔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남북관계보다는 우리 구성원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박린·김원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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